지난 2009년, 북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의 후계자 문제는 아버지 김정일만이 결정할 문제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공식 명칭을 쓰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한 나라의 정권이 부계중심으로 승계되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북한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극복을 표방하며 법적, 제도적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사회이며, 가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부계중심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남북한으로 나라가 나누어진 채 각기 다른 체제 속에서 서로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정과 사회, 나아가 국가를 지탱해 온 중요한 축을 여성이 담당하였는데요. 북한의 현실과 그 속의 사회문제는 남한 별개의 문제가 아닌 우리 공동의 문제라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부계중심의 국가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한 여성들은 과연 어떠한 대우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난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그들과 환희와 기쁨을 함께하며 한편으로는 통일된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는데요. 독일 통일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었습니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서독은 종래의 기본 체제의 큰 변화 없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복지국가의 이념에 따른 정책을 유지하였습니다. 반면 동독은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에 따라 생활양식과 가치관 등이 크게 변화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동독의 계획 경제 시스템은 시장 경제 체제로 바뀌었으며 경제 제도 이외의 제도들도 거의 서독식으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과정에서 동독인들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크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변화된 생활양식에 적응하지 못한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에 비해 가난했고, 이로 인해 동독과 서독 사이에 보이지 않는 민족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서독인과 동독인의 사회 갈등이 초래 되었으며 통일 이후 각종 사회 문제가 대두된 것입니다. 동독인들의 서독인들에 대한 열등의식, 통일을 후회하는 목소리, 서독 체제에 대한 불만, 구시대에 대한 향수 등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점을 보아 우리는 독일의 통일에서 갑작스러운 통일은 많은 부작용을 가져오게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형성된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 또한 한순간에 극복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 이후 초래될 사회적 혼란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북한 여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남북한의 차이를 접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북한 여성은 어떤 지위 변화 과정을 겪었으며 현재 어떠한 위치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북한 여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 아세아 여성문제연구소에서 나온 ‘남북한 여성의 사회의식에 관한 비교 연구 및 수렴 방안’에 따르면, 북한 여성은 정부수립 초기에 시행된 개혁입법으로 법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상이 급격하게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북한 여성의 정치 참여는 주로 여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법적으로 평등을 보장하여 제도상으로는 남한보다 우월해 보이는데요. 그러나 실제적으로 부계중심 사회 속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유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가부장 제도를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실질적인 제한이 가해졌으며, 또한 제도적으로 남녀가 평등한 듯 보였지만 경제 활동에 있어서 직업에 따른 성별분리정책을 통해 높은 임금과 각종 연급이 보장되는 중공업, 전문직 분야에는 남성을,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연금이 보장되지 않는 경공업 등의 분야에서는 여성을 배치하여 불평등을 초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북한의 경제 활동은 여성에게 많은 의존을 하고 있었는데요. 북한은 경제 활동에 있어서 여성을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한 축으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질적으로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경제활동에 이끌기 위한 노력이었는데요. 북한은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로 여성을 부를 정도로 여성 인구의 경제 활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탁아소, 유아원, 가사노동의 사회화 등의 복지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성의 경제 활동을 강조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노력을 통해 북한 여성들은 북한 경제를 이끌었으며, 이는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한 여성들은 전쟁 시기엔 전, 후방에서 많은 지원과 희생을 통해 북한을 지탱하였습니다. 1990년대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북한 가정 및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주체 또한 여성이었는데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여성들은 무능한 남편을 대신하여 장마당에서 억척스럽게 장사를 하며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북한 여성들의 의식 변화인데요. 1990년 대 경제난 이후 가부장제 속에서 남성에게 종속되어 살아오던 여성들이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통해 일부 시각의 변화를 보이고 있던 것입니다. 식량난 이후 미혼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가족 내 성불평등에 대해 반박하는 아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 여성들의 시각과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 여성의 현 위치와 지위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요. 그렇다면, 통일 이후 초래될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북한 여성’이라는 주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서울시립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던 류성금씨의 ‘북한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변화’에 따르면, 첫째, 통일의 과정에서나 통일 이후 남북한 여성의 상호 이해와 신뢰감 형성을 위하여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 한국의 미래는 남과 북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진정한 한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인데요. 그러나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순간 예기치 못한 이질감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기에 남북한 여성의 문화적 차이도 예외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내적인 통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둘째, 바람직한 통일 문화 형성을 위하여 남북한 여성 의식과 지위가 얼마나 다른지에 관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체제의 우월성, 이념적 선입관이나 편견을 지양하고 다양한 정보와 객관적인 이해를 추구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와 ‘다름’에 대해 ‘열린 자세’를 함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북한 여성에게 나타나는 문화적 이질성을 이해하고 바람직한 통일 국가의 여성정책 수립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측면에서 북한 여성은 실질적인 정치 참여에 대한 이해가 낮으며 정치 활동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가부장적 사회주의 국가 체제에 따라 위로부터의 명령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측면 뿐 아니라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도 북한 여성은 남한 여성과 다른 지위와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남북한 여성 간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여성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여성의 지위 향상과 직결되는 여성관련 정책이나 이슈를 중심으로 남북한 여성 모두에게 유리한 정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여성을 인간적인 신뢰와 존중의 자세로 대해야 할 텐데요. 북한 여성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과 삶의 모습을 비하하고 남한 여성들의 사고방식이 좀 더 우월하다는 식의 체제 우월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여성의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 집단주의와 순종, 헌신적인 사고방식을 열등한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여성들 사이의 의식의 거리를 인정하고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인 존중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반도가 지난 60여 년 분단의 세월 동안 다양한 부분에서 사회적 이질화를 겪어왔지만, 통일을 이루고 난 후에는 모든 이질화를 극복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남북한 여성의 문화 차이가 극복되고 남북한 여성이 하나로 화합되었으면 좋겠는데요. 지금부터 남북한 여성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건강한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사진>
-http://www.dailynk.com/korean/read_photo.php?cataId=nk03100&num=93369&page=15
-http://www.dailynk.com/korean/read_photo.php?cataId=nk03100&num=97674&page=3
-http://www.dailynk.com/korean/read_photo.php?cataId=nk03100&num=97759&page=3
<참고>
-북한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변화(2009): 류성금, 서울시립대학교 교육대학원
-남북한 여성의 사회 의식에 관한 비교 연구 및 수렴 방안(2000): 숙명여자대학교 아세아 여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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