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북한의 ‘녀성군인’에 대해 알고 있으신가요? 북한에서는 여군을 ‘녀성군인’이라고 말하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여 여러 종류의 사전들과 문헌들을 찾아보았으나 ‘녀성군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를 밝혀놓은 것은 특별히 없었습니다.
북한의 여군은 조선인민군의 창설 초기부터 군대의 중요한 일부분이었으며 그 후 계속해서 군대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커져 왔습니다. 따라서 북한 군대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북한의 ‘녀성군인’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여군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요. 따라서 오늘은 북한 여군의 형성과 체계화과정, 위상과 역할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 여군에 대한 체계적인 선행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관련 자료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이 부분을 조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북한 여군에 관련된 남한 문헌과 북한이탈주민의 문헌, 면접, 증언, 수기가 담겨 있는 백미경씨의 ‘북한의 녀성군인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많이 참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이용하여 많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가 있었습니다.
현재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불리는 ‘항일유격대’를 1932년 4월 25일에 창건한 데 이어서 항일무장투쟁시기인 1936년 4월 중국 두만강 부근 수림에서 조직한 여군중대가 북한 여군의 효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북한은 조선인민군의 정통성을 항일유격대의 경험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김정숙을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업적을 부풀려서 포장할 필요가 생겼기에 여군의 효시를 평양학원 여성중대가 아닌 조선인민혁명군 여성중대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평양학원 내에 최초의 여성 중대가 창설되어서 간부 300명을 배출하였는데, 실제로는 이들이 북한 여군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양학원 여성중대에서 시작된 북한 여군은 한국 전쟁시기 등 초기에는 군대를 보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감당하는데 그쳤는데요. 김일성은 한국 전쟁 시기의 경험을 되짚어보면서 ‘전민무장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특히 여군 육성의 필요성을 인지했으나 1960년대까지는 여군은 남성군인의 대체인력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초 김일성의 인민군대에 여군을 장려할 데 대한 ‘비밀 교시’를 내린 이후 군대에서 여군 및 여성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990년대 중반부터는 북한에 심각한 경제 위기가 찾아와 군 초모사업(병사 모집 사업)에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낮은 출산율과 군 복무 기피 현상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여군들로 메꾸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이 현역군인으로 입대하는 경우가 현저하게 증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여군 총 인원 수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서 정확한 통계는 알 수가 없으나 대략 10만 명 선에 이르는 여군이 북한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인구 증가율과 병력 증가율을 고려한다면 10여 년의 기간 동안에 엄청난 증가세를 보였는데 이는 정치, 사회적인 이유로 여성의 군 입대가 현저하게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북한 여군의 계급 구조는 2009년 대장 군사칭호를 수여받은 김경희를 비롯하여 현재 병사, 하전사, 위관, 좌관, 장령급까지 분류되어 5단계 20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성 준군사조직에는 붉은청년근위대, 지방군(교도대), 로농적위대, 대학생 교도대, 여성 고사총 교도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또한 여군을 정치, 사회적으로 활용했다고 하는데요. 김정일의 여군부대 현지지도(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현장에 직접 가서 행하는 정책지도 방법) 동향과 여군 주연 영화를 통해 북한의 여군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먼저 김정일의 여군부대에 대한 현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북한은 여군부대 현지지도에서 군사훈련을 보여줌으로써 여군들도 군대 대체인력이 아닌 정규군으로서 제 몫을 다 해내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선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선전을 통해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군 복무 기피현상을 타파하려고 했습니다. 둘째,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여군부대 현지지도를 정치적으로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화 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셋째, ‘인민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 자기희생’을 표현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인격적 리더십을 부각시켜 사랑을 보듬어 주는 어머니와 같은 이미지를 형상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민들은 여군을 통해 곧 강성대국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북한 당국은 여군 주연 영화를 통해 여군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군대의 대체인력이 아닌 정규군으로서 여군의 면모를 과시하여 여성들도 군대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솔선수범하는 선군시대의 본보기로서 일명 ‘여군 따라 배우기’와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주민들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강요하는데 여군이 적극 활용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여군에 대해 조금씩 살펴보았는데요. 그 결과 북한 여군이 세계 속 여군들과 마찬가지로 군대 대체인력으로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정규군의 일부로서 제 몫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특이성을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북한 여군을 직접 대상으로 한 문헌들이 양적과 질적으로 빈약하여서 많은 자료를 얻진 못했는데요. 앞으로 국내외에서 북한 여군에 대한 전문적 연구가 이루어져 심층적인 자료들이 다양하게 생기고,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향해 달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북한군사의 이해: 권양주, 한국국방연구원(2010)
-남북통일 후 여군 양성 및 활용방안: 김권순, 육군교육사령부(2002)
-북한의 ‘녀성군인’에 관한 연구: 백미경, 북한대학원대학교(2012)
<사진>
-http://www.lawfom.com/bbs/board.php?bo_table=gallery&wr_id=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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