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에서 1910년에 이르는 장구의 세월 동안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철학의 나라, 조선!
이 왕조는 500여 년의 치세 동안 많은 성리학의 대유(大儒)들을 배출, 동양 사상계에 큰 획을 그었는데요. 그 가운데 특히 걸출한 학자가 두 분 계셨으니 바로 우리에게는 각각 천 원권과 오천 원권의 주인공으로 더욱 친숙한 퇴계 이황선생과 율곡 이이선생입니다. 이 두 학자는 화폐의 인물로 선택될 만큼 남한에선 위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북한에서는 이 두 학자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북한에서도 이 두 학자를 위인으로 여기고 있을까요?
<화폐 속 퇴계 이황(아래)과 율곡 이이(위)> 두 학자는 화폐 속 인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두 학자 모두 남한에서는 위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우선 정답부터 말하자면 ‘둘 다 아니요!’입니다. 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북한은 공산주의에 의거한 주체사상의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역사라는 것이 가시적인 경제적 물질의 소유관계가 변천하게 됨에 따라 발전한다고 보며 아울러 신과 같은 관념의 존재는 인간이 우주에의 무지와 자신의 불완전함을 감추고자 창조해낸 허상이라 여기는 유물론적 시각의 사상이고 주체사상은 일인독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때문에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연결하고자 한 관념론적 시각과 함께 부당한 정권의 붕괴가 옳다고 여기는 왕도(王道)주의 그리고 임금과 신하의 화합을 주장하는 공치(共治)주의로 이뤄진 사상인 성리학과 그 학자들이 북한체제로부터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서 이황과 이이. 두 사람이 동일한 내용의 평을 듣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황은 반동분자의 대표적 수괴로 규탄을 받는 반면 이이는 그나마 유물론의 시초 격으로 여겨져 이황보다는 조금 더 나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두 학자가 같은 관념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한 것에서 기인합니다.
<태극> 성리학에서는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이(理)가 존재한다고 여겼다. 태극은 그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출처 : 위키백과
성리학에선 삼라만상이 우주만물의 보편적 원리인 이(理)와 각 개별 사물들의 형질을 이루는 요소인 기(氣)로 이뤄져있다고 말합니다. 즉 각각의 사물들이 기에 따라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를 띠고 있으나 형태를 결정하는 그 기라는 것이 모두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인 이에 의거하여 움직인 것이란 이야기이지요.
이러한 우주관에 대해서 이황은 그러므로 이가 모든 것의 공통된 원리이기에 이와 기는 함께 움직이며(理氣互發說 : 이기호발설) 동시에 개별 사물의 구성요소인 기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니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고 주장, 따라서 양반은 이에 속하고 상민은 기에 속하므로 이 두 신분의 구별을 철저히 하여야 한다는 주리론을 내세웠습니다. 1
반면 이이는 이라는 것은 기가 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것(氣發理乘一途說 : 기발이승일도설)인 만큼 기 역시 중요하다고 여겨 현실은 구체적 상황에 제한될 수 있으나(氣局 : 기는 국한됨.) 그 안에 보편적인 우주의 원리가 내재(理通 : 이는 통함.)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하여 양반과 상민의 구별은 실력과 덕의 유무에 따른 것이며 그 실력과 덕이라는 것은 개인이 얼마나 보편적 원리인 이를 잘 구현해내는가에 따라 달려있다는 내용의 주기론을 내세웠습니다. 2
정리하자면 퇴계 이황은 관념이 물질보다 앞서며 때문에 신분제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고 율곡 이이는 관념과 물질은 양분될 수 없는 것이기에 신분이라는 것은 올바른 관념을 잘 표현해내는 것에 달려있는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북한체제는 보다 관념론적이고 또한 신분제의 옹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이황을 반동분자의 대표적 인물로 규탄하고 이이에 대해선 그 사상이 유물론적인 사고에 가깝다고 하여 그나마 약간은 긍정적인 평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상당히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모두 이황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 평이자 아울러 이이의 학문에 대한 확대해석에서 기인한 평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북한체제는 자기 체제의 이념에 맞춰 객관적인 입장은 멀리 던져버린 채 조상들이 일구어낸 학문적 체계를 멋대로 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히 ‘인류의 지혜’로 불릴 만큼 우주적이고 수준 높은 조선의 성리학과 그것이 낳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걸출한 두 해석! 북한지역의 학계에서도 성리학과 두 대유의 해석에 대한 연구가 우리처럼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루빨리 통일 대한민국의 시대가 도래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참고문헌>
성리학은 반동적, 경향신문 (93.7.25)
청소년을 위한 한국철학사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우리 철학 이야기), 김윤경, 두리미디어 (1997)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 정재훈, 신구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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