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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한반도 통일의 묘안, 『동양평화론』

지난 1026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3주년이었습니다. 19091026일 오전 915분경, 안중근 의사는 만주 하얼빈 역에서 당시 추밀원 의장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함으로써 대한 독립의 의지를 세계 만방에 드날릴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인 25일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는 역사적인 하얼빈 의거 103주년을 기념하여 '안중근 동양평화론의 선양과 글로벌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의 학자들이 모여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가지고 있는 현재적 의의와 앞으로의 선양 및 글로벌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였는데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한 번 살펴보실까요?

 

동양평화론

먼저 <동양평화론>은 어떤 책일까요?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직후 심문과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한국의 독립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양 전체의 평화를 위해 이토를 처단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가 이토를 처단한 것은 침략적인 이토의 동양평화론(대동아공영론)을 폭로하고, 진정한 동양평화론을 설파할 목적으로 시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듬해인 1910326일, 32세의 나이로 순국하기 직전까지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한 권의 논고로 정리하고자 하였는데, 일제의 약속 위반으로 '서(序)'와 '전감(前鑑)' 등 일부만 집필한 채 미완성 논고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이 논고의 제목이 바로 <동양평화론>입니다. 그가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당시 국제정세의 변동 속에서 한국의 독립, 동아시아의 평화, 세계평화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 , 일 삼국의 평화를 꿈꿨던 동양평화론

이번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동양평화론>이 가지고 있는 현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현광호 고려대 외래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1990년대의 냉전 해체, 한중 수교, 북핵 위기, IMF 사태, EU 출범, 2000년대의 남북정상회담, 이라크 전쟁, 세계금융위기, 일본의 정권교체 등의 격변기마다 재조명의 대상이 됐다. 2012년 하반기 현재 한, , 일 삼국은 극심한 영토분쟁을 겪고 있어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 실현은 더욱 절실하다고 보여진다. 이는 <동양평화론>이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여진다."라고 <동양평화론>이 오늘날까지도 유효함을 설파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제시했을까요?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논고로 남았기에 구체적으로 그의 구상을 살펴보기는 힘들지만, 다행스럽게도 일본 관헌의 취조문서가 남아있어 그가 어떤 구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첫째, 뤼순을 한, , 일 삼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고, 각국이 이곳에 대표를 파견하여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해야 한다.

둘째, 원활한 금융을 위해 삼국 공동의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

셋째, 삼국의 공동 군대를 편성하고, 이들에게 2개국 이상의 어학을 가르치면 서로 우방으로 생각하게 되고 형제의 관념도 높아질 것이다.

넷째, 한국과 청국 두 나라는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의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한국과 청국, 일본 세 나라 황제가 로마 교황을 방문하여 협력을 맹세하고 왕관을 받는다면 세계 민중의 신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주장한 구상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나요? 바로 유럽연합(EU)이 그것입니다. 유럽은 1992년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조약의 체결로 하나의 공동통화정책을 채택하였으며, 그 조약의 발효로 마침내 유럽연합이라는 유럽 국가 공동체가 탄생하였습니다. 그 뒤 유럽중앙은행(ECB)의 설립, 공동통화인 유로(Euro)의 발행 조치가 이어졌고, 2002년 마침내 유럽은 단일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EU는 이후에도 발전하여 의회, 군사기구, 대학, 은행, 화폐를 공유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유럽의 평화에 크게 기여하며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놀랍게도 유럽연합이 실시한 이와 같은 조치들은 안중근 의사가 주장한 <동양평화론>의 방략과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던 시기가 유럽연합이 탄생한 1993년보다 80여 년 앞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 안중근 의사가 얼마나 선각자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안중근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동양평화론>이 한반도 통일을 촉구하는 사상으로서 유효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오늘날 남북한 모두가 함께 존경하는 위인으로 그에 대해서는 이미 <통일, 미래의 꿈>에서도 한 차례 기사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기사] 북한의 애국열사, 안중근? - http://blog.unikorea.go.kr/2249) 그런 측면에서 안중근 의사를 민족 통일의 구심점으로 삼자는 입장이 있으며, 안중근 의사가 주장한 <동양평화론>을 한반도 통일의 묘안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남북통일 논의에 있어서 <동양평화론>의 구상과 유사한 맥락의 논의가 오고 갔었던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바로 북한의 '연방제 통일론'과 남한의 '연합제 통일론'이 그것입니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는데요, 연방제 통일은 2개 이상의 주권이 결합하여 국제법상 단일적인 인격을 가지는 복합 형태의 통일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중앙정부가 군사, 외교권을 행사하고 지방정부는 내정을 담당하는 형태로서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연합제 통일'을 주장하였는데요, 연방제와는 달리 연합은 2개 이상의 주권국이 국제법상의 조약에 의하여 결합하고 공동 기구에 의해 주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형태로서, 각 국가가 독자적으로 군사, 외교권을 행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1민족 2국가 2체제 2정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006.15 남북공동선언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선언함으로써 상징적이나마 민족공동체 결성의 합의를 보았습니다.

(사진 -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출처: 연합뉴스)

비록 이러한 논의는 실제적인 논의로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로 인해 남북관계는 경색되었으나 이와 같은 논의가 있었다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한반도 통일의 묘안으로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연방제/연합제 통일 논의 외에도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결성하여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이 함께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평화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동양평화론>이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해소하여 동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의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며, 유럽 역시 그와 같은 사상으로 평화 유지, 독일 통일, 냉전 해소가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통일의 묘안 - <동양평화론>

물론 오늘날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동양평화론>을 활용하기 위해선 이상적인 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논의를 거쳐 그와 같은 방안이 유효한가를 분명히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면서 전제조건으로 '일본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삼국 공동체를 결성하는데 있어 일본이 계속 군국주의적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동양 평화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 역시 우리 혼자 주장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 당시엔 일본의 반성이 전제조건이 되었듯이, 오늘날 한반도 통일에 앞서서는 북한이 체제의 모순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개혁/개방과 함께 남한과 통일 논의를 하는 데 있어 적극 협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100여년 만에 한반도 평화통일의 묘안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상생기자단 5기 김경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