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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국제연합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사이에


“하늘과 땅 사이에는 뭐가 있는지 아세요?”

“음... 공기가 있겠지?”

“하늘과 땅 사이에는 ‘과'가 있잖아요"


60년대 당대 최고의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을 맡아 개봉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다는 영화 ‘맨발의 청춘'에 나오는 대사이다. 

2012년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3D 화면에 익숙해진 요즘. 40여 년이 넘은 영화 ‘맨발의 청춘'을 본 사람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우리는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 제목에 익숙하다. 그 이유는 동명의 노래가 있다는 점도 있지만,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청춘’의 삶은 ‘맨발'이라는 명사가 시대를 초월해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10월 19일. 인도를 대신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비상임이사국을 뽑는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2차 투표에서 144표를 얻어, 2년간 비상임이사국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젊음이 전부였던 ‘맨발의 청춘’처럼 노동력만 가지고 있었던 한국이 성장해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국제분쟁의 조정 및 해결 권고, 국제 평화유지를 위한 경제적 군사적 강제조치 집행, 신탁통치기능수행, 군비통제안 수립, 신 회원국 가입 권고, 유엔사무총장 임명권고 등 국제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굵직굵직한 사안을 처리한다. 말 그대로 국제사회에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중대한 역할과는 달리 안전보장이사회 운영에 있어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수행하게 될 ‘비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큰 간극이 존재한다. 우선 ‘상임' 이라는 단어 자체가 ‘permanent’를 뜻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구적으로 그 지위를 가진다. 반면 비상임이사국의 임기는 2년 단위로, 연임할 수 없다. 또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은 매우 강력한 권한이다. 구체적으로 안보리에 회부된 안건의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안보리에 회부된 안건에 대해 상임이사국(5개국), 비상임이사국(10개국) 중 14개 국가가 찬성했다 하더라도, 상임이사국 1개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 안건은 부결된다. 결국 비상임이사국 모두 찬성하더라도 상임이사국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때문에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하늘과 땅"의 차이는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에도 존재한다.

권력은 영원할 수 없다. 이는 독재자의 최후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국력 변화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과거 영국의 힘이 막강했을 때 파운드는 국제 거래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파운드가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이, 지금의 국제 거래는 달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파운드에서 달러로의 변화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권력이 이동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최근 미국발 경제위기로 달러를 대안하는 ‘화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등 국가 간 권력의 이동이 또 다시 진행될 징후를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변화의 시대에 ‘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는 철저히 변화를 거부한다. 지위의 영속성도 그렇지만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의 거리처럼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간의 거리를 쉽게 좁힐 수 없다면, 이들 간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차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 차선의 방법은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고 우리나라와 관계를 개선해 제재할 일도(거부권 받을 일도) 없도록 하는 것이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 우리나라가 받는 가장 큰 피해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바로 북한 문제이다. 결국 북한이 도발하지 않음으로써 거부권의 우려가 있는 안전보장이사회에 남북 관계가 논의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앞으로 국제연합 심장부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비상임이사국 진출은 경축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시 우리의 목소리를 더 쉽고 크게 낼 수 있다는 점도 여느 언론에서 말하는 ‘비상임이사국 진출로 얻게 되는 효과'일 것이다. 비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가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나라가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더 큰 목소리로 변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나머지 남북문제에 본질적인 해결책 ‘통일'에 무뎌진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5개국 모두 핵 보유국이다. 그리고 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모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기 수출국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나라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주체'이기도 하며, 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모순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할 문제는 ‘목소리를 더 크게 내는 주체'가 아닌 아닌 ‘피해자'라는 입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통일’ 뿐이다.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두 주인공은 비극적인지만 한 번쯤 해보았으면 하는 사랑을 선택한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죽음을 맞이했듯, 두일(신성일)과 요안나(엄앵란)는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둘은 죽음을 무릅써서라도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상’을 선택했다. 그 둘 사이에 누구도 그들 선택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남과 북이 ‘통일을 한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어떤 국가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발언권’이 아닌 ‘의지'가 아닌지 고민해보며 기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