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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납치된 국민들, 돌려달라!" : 몽골에서 북일 회담 열려

<몽골 울란바토르> 출처 : 울란바토르 간단 사원 관음대전, 위키 백과

 일본과 북한이 이번 달 15일에서 16일 양일간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국장급의 회담을 열기로 하였다. 본 회담의 주제는 다름 아닌 납북일본인들에 관한 문제. 여기에는 북한이 자행한 일본인 납치라는 범죄에 관한 양측의 오랜 ‘줄다리기’라는 배경이 있다.


1. 북일 회담의 배경, 납북(拉北) 일본인

일본측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1977년 도쿄 시청 경비원이었던 구메 유타카(久米裕)씨를 납치한 것으로 시작으로 하여 총 17명에 이르는 평범한 일본인들을 납치, 그들로 하여금 억울한 삶을 살게 하였고 이에 관한 일본의 지속적인 생사확인 및 귀국조치 요구에도 모르쇠의 입장을 일관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북한이 이를 시인하였으며 이후 북한은 2002년 10월 5명의 납북 일본인들을 다시 북한으로 귀환케 한다는 조건 아래에 납북일본인들의 일본 일시방문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당연히 일본에 잔류할 뜻을 밝혔고 따라서 일본정부는 그들의 영주귀국을 결정하였다. 이는 곧 귀환거부를 뜻하는 것이었기에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약속위반이라는 비판을 가하였고 북한 내 일본인 잔류가족들도 일본으로 보내달라는 요구를 묵살해버렸다.

 그 뒤 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냉각되어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별다른 진전을 보여주지 않다가  지난 2004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양측의 비공식 회담을 통하여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직접 평양을 방문, 마침내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씨 부부와 지무라 야스시(地村保志)씨 부부의 북한잔류 자녀 5명의 추가송환도 이뤄졌다.


<납북일본인들> 참조 : 두산백과

 그러나 일본정부는 납북일본인들이 총 17명이라 보고 있어 나머지 인원에 대한 진상확인과 문제의 재조사를 끊임없이 요구해오고 있다. 허나 이에 북한은 17명 가운데 8명은 사망했으며 기타 4명은 납북된 바 없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의 완전한 아직까지도 미제(未濟)로 남아있다.


2. 북한은 왜 그들을 납치하였나?

 2002년의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왜 납치를 행했냐는 물음에 김정일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특수기관 일부에 망동주의자가 영웅주의로 달려 이런 일을 했다. 일본어를 학습하고, 그 신분을 이용해 한국에 잠입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혔다.

 즉 북한은 남파간첩들로 하여금 일본인의 신분으로 위장케 하려고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관이 필요하다는 까닭만으로 애먼 일본인들을 납치한 것이었다. 실제로 다구치 야에코(田口八恵子)씨는 ‘리은혜’라는 이름으로 KAL기 폭파사건의 김현희씨에게 일본어 등을 가르친 바 있다.

 다만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恵子)씨는 1970년 3월 30일 적군파(赤軍派)라는 일본의 좌익단체에 의해 일어난 후쿠오카 행 비행기 요도 호의 납치사건으로 인해 납북되었다.


3. 납북이후 그들의 삶과 현황

 지난 2002년 귀국한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씨는 자신의 수기집 <반도로 다시(半島へ再び)>에 따르면 배급되는 식량의 9할이 잡곡이었고 전기사정도 여의치 않아 땔감을 주우러 다니기 바빠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이 삶의 99퍼센트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또한 금년 10월 27일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에서 열린 ‘아시아 인도(人道)·인권학회보고회’에서 증언자로 참석한 전 노동당 간부출신의 한 북한이탈주민은 피랍된 일본인들은 모두 노동당의 공작기관인 작전부가 관할하고 있으며 평양 용성지구의 초대소에 남녀가 별도로 격리·감금돼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덧붙여 현황에 대하여 일본정부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피랍자의 수가 무려 총 41명에 이른다고 밝혀 피랍일본인에 대한 현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일깨우게 하였다.


4. 일본인 납치문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요코타 메구미(横田 めぐみ)> 그녀의 남편은 지난 78년 납북된 김영남씨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으로 보내진 그녀의 유골은 가짜로 밝혀졌다.
출처 : 1977년 납북일본인 메구미 남편은 피랍한국인으로 확인, 동아일보 (06.4.8)

 이제껏 일어난 납북일본인 사건들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사건은 단연 요코타 메구미씨의 납치사건일 것이다. 왜냐하면 요코타씨의 남편이 78년 납북된 김영남씨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우리와 유리된 문제가 아님을 극명히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납치의 목적이 과거 대남공작을 위한 것이었고,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실제로 다구치 야에코씨의 경우처럼 대남공작에 관여된 사례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결코 우리와 무관한 ‘남의 일’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대한민국의 평화로운 ‘상생공영의 통일’에 한 걸음 더 크게 다가가고 또한 통일 이후의 건설적인 한일관계의 구축을 위해서 몽골에서 열릴양측의 회담을 통하여 나올 결론은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방향으로 흘러가야만 할 것이다.

 부디 금번 회담에서 보다 건설적인 결론이 도출됨으로써 북한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일본인들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감과 함께 금번 회담이 향후 통일대한민국의 건설적인 미래를 위한 일보전진의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