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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김구 선생, 마지막의 꿈 '통일' : 백범기념관 10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

지난 1019일 금요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백범김구기념관 개관 10주년 기념식 및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평생을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였던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을 선양하는 대표적 현충시설로서 20021022일 개관하여 벌써 10년의 세월을 달려온 백범김구기념관! 그 기념식과 국제학술회의 현장에 김경준 기자가 출동했습니다. 그 생생한 현장을 지금부터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기념식

첫 번째 순서는 개관 10주년 기념식이었습니다. 개관 10주년 기념식이었던 만큼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석하였는데요, 백범 선생의 차남이자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 회장인 김신 회장을 비롯하여 '백범 연구'의 권위자인 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 '안중근 연구'의 권위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 등이 참석하였습니다.

기념식에서는 백범 김구의 일생을 담은 추모영상을 먼저 상영한 뒤에 김신 회장의 기념사, 정양성 국가보훈처 차장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기념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서는 캘리그라피 작가인 이상현 작가의 즉석 공연이었습니다. 그는 곱게 차려 입은 흰색 한복을 입고 나와 붓을 들고 하얀 종이에 물감을 칠하기 시작했는데요, 먼저 한반도 모양이 그려진 뒤에 그 안에 '김구의 길'이라는 글씨를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을 장식한 두 글자는 '統一(통일)'!

마지막 목숨을 다하는 순간까지도 놓을 수 없었던 김구 선생의 꿈, 통일!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은 통일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염원이었던 평화통일을 주제로 한 캘리그라피 공연은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특히나 공연 중 계속 흐르던 잔잔한 아리랑은 일부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럼 UCC를 통해 직접 한 번 그 현장을 보시죠~!

 


학술회의

기념식이 끝나고 곧바로 국제학술회의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학술회의의 대주제는 '분단국가의 통일과 미래'였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마지막 꿈이었던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담론 형성을 위해 마련한 회의였는데요, 국제학술회의였던 만큼 한국 뿐만 아니라 대만, 베트남, 독일 등 해외의 학자들이 모여 통일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학술회의에 참여한 국가인 한국, 대만, 베트남, 독일 4개국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분단을 겪었던 혹은 아직도 분단이 지속 중인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중 대만은 우리처럼 아직 분단을 겪고 있고, 베트남과 독일은 각자 지난한 과정을 거쳐 끝내 통일을 이룩한 국가들입니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분단과 통일을 겪어보지 못한 학자들의 이상적인 담론 형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분단과 통일을 겪어본 학자들의 현실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통일 담론이 형성되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학술회의는 아래와 같은 주제들로 구성이 되어있었습니다.

대주제: <분단국가의 통일과 미래>

[기조연설] 한국의 남북 분단과 김구의 통일론
→ 발표: 신용하 (울산대학교 석좌교수)

[제1주제] 1970년대 베트남에서의 통일과 사회 변화
→ 발표: 팜 꾸앙 민 (하노이 베트남국가대학교 교수)
→ 토론: 이한우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위원)

[제2주제] 대만과 중국의 관계: 대만의 관점에서
→ 발표: 류덕해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교수)
→ 토론: 김진호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3주제] 독일 통일: "편입" 20년, 진행되지 말아야 했을 실험의 결과
→ 발표: 라이 콜모르겐 (독일 예나대학교 교수)
→ 토론: 이신철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

[제4주제] 남북통일의 현안과 전망
→ 발표: 문정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토론: 김근식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종합토론

백범 김구 연구계의 권위자인 신용하 교수는 '한국의 남북 분단과 김구의 통일론'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였는데요. 그는 "휴전 후 남북의 모든 동포들은 위대한 선각적 지도자 백범 김구를 절실히 그리워하게 되었다. 6.25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체험한 한국인들은 '북진통일', '남진통일'의 처참한 폐해를 경험을 통하여 절실히 인지하고 '평화통일'의 절실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강조하며 백범 김구 선생의 평화통일 노선에 대해 발표하였습니다.

제1주제를 맡은 하노이 베트남국가대학교의 팜 꾸앙 민 교수는 베트남의 통일 직후 사회 통합 과정에 대해 발표하였는데요, 그는 "베트남노동당의 영도 하에 해방세력들의 군사적 승리로 남북 두 지역은 통일되었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출범하였. 그러나 실질적인 의미에서 사회 통합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북베트남의 체제와 문화가 그대로 남베트남에 적용되고, 심지어 행정관료들조차 북베트남 간부들이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남베트남의 북베트남으로의 흡수와도 같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상당한 공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며 베트남 통일 후의 부정적인 사회변화에 대해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시 고려해보아야 할 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

제2주제를 맡은 대만국립정치대학교의 류덕해 교수는 대만의 관점에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중화민국)의 관계를 분석해보았습니다. 중국과 대만은 양안관계(兩岸關係)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류 교수는 1949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양안관계 발전 궤적을 총 5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중국과 대만은 한반도처럼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을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서로 협력하며 화해의 분위기로 나아가기도 했는데요, 특히 진수편 정부 8년 동안의 반중정책과 대만독립 추구는 중국으로 하여금 대만과의 교류를 거부하도록 만들었으나, 2008년 3월 국민당의 마영구가 대만의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대륙정책을 모든 대외관계의 우위에 상정하고 적극적으로 대륙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함으로써 양안관계가 다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를 보면서 정치적 이해에 따라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경색되는 일은 당연히 지양되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제3주제에서는 라이 콜모르겐 독일 예나대학 교수의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발표가 있었는데요, 콜모르겐 교수는 독일 통일이 통일이라기보다는 동독의 서독으로의 '편입'에 가까웠다며, 이러한 방식의 통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로 인해 동독의 주민들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통일 후 동독 주민들은 통일 독일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절반을 넘었고, 특히 통일 독일 사회의 상층부 상당이 서독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편입과도 같은 독일 통일 방식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앞서 본 베트남의 흡수통일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의 문정인 교수는 '남북통일의 현안과 전망'에 대해 발표하였는데요, 문 교수는 통일에 대한 개념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어떤 통일을 지향해가야할지에 대해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통일 방식을 합의형 통일, 흡수형 통일, 신탁형 통일, 무력형 통일로 나누고 가장 지양해야 할 통일로 무력형 통일을 꼽았고, 가장 지향해야 할 통일로는 '합의형 통일'을 꼽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은 우리 모두 바라는 통일 방식이 아닐 것입니다. 남과 북이 공존하며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에서 합의에 따라 평화통일을 이루는 '합의형 통일'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통일 방식일 것입니다.

학자들의 발표와 종합토론을 끝으로 오늘의 학술회의는 끝났는데요, 아쉽게도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본 기사에서는 각 학자들이 발표한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고 짧게 핵심만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따라서 다음 번 기사에서 각 주제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먼저 구하고자 합니다.

다만 그 주제들이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한 기사를 통해 모두를 다룰 수는 없는 관계로 앞으로 각 주제 당 하나씩 총 5부로 나누어 자세하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번 1부에서는 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의 한국의 남북 분단과 김구의 통일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상생기자단 5기 김경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