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2차 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가 한국, 베트남, 독일, 예멘의 4개국뿐이며, 이 중에서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기 때문에 한국이 통일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있어 바로 이 네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 연구·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만이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는 아닙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문제 역시 광의적 범위에서 바라보면 통일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사례입니다. 저는 오늘 이 양안문제가 어떻게 하여 빚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타국의 분단사례를 분석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과정과, 우리의 미래지향적 통일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양안문제의 시작은, 쑨원이 이끄는 중국 동맹회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해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으로 쑨원은 중화민국의 임시 대총통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지역에서 개인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군벌들이 여기저기서 발호하게 되어 쑨원의 중화민국은 해체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중화민국에 의한 중국 대륙의 완전한 통일을 위하여, 쑨원은 외국에서 군사적 원조를 받는 한편 1921년 창당된 중국공산당과도 합작하여 군벌세력을 뿌리 뽑기 위한 북벌에 나섭니다. 1925년 쑨원이 사망한 뒤 후임자인 장제스도 이러한 쑨원의 유지를 받들어 중국공산당과의 협력을 계속 유지하는데, 이것이 역사책에 기록된 제1차 국공 합작입니다.
그런데 북벌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1926년에 이르러 중국 영토의 반 이상을 수복하게 되자 장제스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됩니다. 이제 공산당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군벌을 축출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굳이 공산당과의 협력을 유지하여 공을 나누어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그래서 장제스는 공산당에 대한 토사구팽의 일환으로 몇 가지 사건을 조작하여 공산당 세력 축출에 골몰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끝에, 1927년 상하이에서 국민당의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으로 표현되는 4.12 사건은 공산당의 거두였던 천두슈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죽고, 영향력을 상실하는 등 중국공산당에 크나큰 타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중국국민당은 이 사건을 통해 북벌은 완수하고 중국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었지만,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 잔존 세력은 국민당의 탄압을 피해서 그 유명한 대장정 길에 오르게 됩니다.
중국 남부지방의 루이진에서 출발하여 국민당의 세력권을 피해 옌안까지 약 12,000km에 달하는 거리를 온전히 두 발만을 이용하여 이동했던 공산당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중국 사회에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루이진을 출발할 당시 10만여 명에 달했던 공산당원들이 대장정을 마치고 옌안에 도착했을 때는 8천여 명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니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막연하나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이 대장정 사건으로 중국 전역에 걸쳐 일반 농민들의 민심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8천여 명에 불과하나 이들은 그 고난의 시기를 공산당에 대한 충성만으로 이겨 내고 끝까지 살아남은 정예 중의 정예였기 때문에 대장정을 통해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는, 나중에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대륙을 석권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자산이 되었으니 새삼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이 '대장정‘ 이후에 나타난 2차 국공합작과, 종전 후 본격적인 중국의 분단 과정을 작성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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