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의 집권 이래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지난날의 화려했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던 베이징. 그리고 그러한 베이징의 번영에 대한 평양의 질투.
허나 세상사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라 했던가. 중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북한 체제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됨에 따라 질투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과연 그 다른 방향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그리고 그 방향은 영원히 지속될 운명일까?
중국이라는 산소호흡기, 북한을 숨 쉬게 하다. - 北·中관계의 오늘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으로부터 탈퇴하면서 빚어진 북한의 핵무장 소동은 이듬해인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으면서 그 입장을 유지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는 내용의 제네바 합의에 동의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관망하던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은 1995년 양측 사이의 우호가격제를 부활케 하였고, 1999년 6월에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이 베이징을 방문하였다. 덩샤오핑 시기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급속도로 멀어진 북-중 양측의 얼었던 관계가 서서히 녹기 시작하였다.
<장쩌민(江澤民)>
그는 순전히 중국을 위하여 북한에 대한 손길을 내밀었다.
출처 : Wikipedia
장쩌민은 북한의 핵무장이 대만에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되거나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 명분으로 쓰일지도 모를 가능성을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경제가 완전한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생길 난민 유입 가능성 또한 두려워하였다. 때문에 그는 우호가격제 부활과 김영남의 방중을 이끈 것이었다.
중국의 이러한 손길은 1990년대 중반 공산진영국가들의 잇따른 붕괴로 인한 고립과 재해로 인한 대기근으로 위기에 빠진 북한체제에 일종의 구원으로 다가왔고, 점차 북한경제는 중국이라는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환자가 되어가고 말았다.
<북한의 대중무역 비중 그래프>
북한경제는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출처 : 北, 중국 '경제 속국' 전락…무역의존도 70%에 육박, 한국경제신문 (2011년 12월 22일)
이러한 상태는 장쩌민의 뒤를 이어 오늘날 후진타오(胡錦濤)가 집권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고, 김정일 집권 말기의 핵무기 개발 등의 사건들 속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더더욱 심화되어 갔다.
지난해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약 70%에 이르렀다. 사실상 북한이 중국에 의해 그 목숨을 연명하는 '경제 속국'이나 다름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제껏 살펴보았듯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늘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북한이 중국을 지원한 적도 있었고 양측이 서로 냉랭한 적도 있었다.
김정일 사후 집권한 김정은의 북한! 과연 김정은은 중국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이어갈 것인가? 이는 확답할 수는 없는 사안이다. 허나 확실한 것 하나는 현재의 관계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지난 역사가 증명했듯 상황에 따라 또 다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난날의 변화로부터 말미암을 것이며, 이는 향후 통일을 향한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것이 이제껏 북중관계의 변천사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까닭이다.
<끝>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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