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대선 후보인 미트 롬니(왼쪽)와 버락 오바마(오른쪽)
(출처 : http://wktvusa.com/%EB%A1%AC%EB%8B%88-%ED%9B%84%EC%9B%90%EA%B8%88-%EC%98%A4%EB%B0%94%EB%A7%88-%EA%B3%84%EC%86%8D-%EC%95%9E%EC%84%9C, http://blog.ohmynews.com/cjc4u/248072)
지난 8월 28일,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확정되었다. 곧이어 9월 5일에는 민주당이 오바마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명했다. 11월 6일에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가 확정되면서 전 세계가 미국 대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대북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왼쪽부터)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A7%80_H._W._%EB%B6%80%EC%8B%9C, http://ko.wikipedia.org/wiki/%EB%B9%8C_%ED%81%B4%EB%A6%B0%ED%84%B4, http://en.wikipedia.org/wiki/George_W._Bush)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주기적인 선거로 대통령이 바뀌는 민주국가의 특성으로 인해 북한과 미국의 갈등은 주로 미국의 정권교체기에 일어났다. 이제부터 조지 H.W. 부시에서 클린턴, 클린턴에서 조지 W. 부시, 그리고 조지 W. 부시에서 오바마로 바뀌는 정권교체기에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조지 H.W. 부시 → 클린턴(1993~2001)
팀 스피리트 훈련 당시의 모습
(출처 : http://blog.ohmynews.com/namoon/tag/%EA%B9%80%EA%B3%84%EA%B4%80)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갈등은 미국 대선기간이 한창이던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IAEA는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이 실제 가지고 있는 양보다 훨씬 적다는 판단 하에 미신고 시설 두 곳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과 미국은 1992년에 중단된 팀스피리트 훈련을 1993년부터 다시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1992년은 조지 H.W. 부시 정권의 임기 말이었으며 다음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거부하면서까지 한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1993년에 막 들어선 클린턴 정부는 IAEA의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을 허락했다. 이와 같은 압박 속에서 북한은 결국 1993년 3월 12일에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이는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 시나리오를 검토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을 야기했다.
클린턴 → 조지 W. 부시(2001~2009)
(출처 : http://www.ufo-blogger.com/2011/05/911-planes-never-existed-september.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59089)
1993년 북한의 NPT탈퇴 선언으로 인한 전쟁 위기는 제네바 합의(1994)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역시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말이 되자 북미 모두 제네바 합의의 이행에 지지부진하게 행동하며 제네바 합의가 거의 파기되는가 싶었다. 2001년 부시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9·11 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부시 정부에서 강경파인 매파가 득세하게 되고, 부시 대통령은 2002년의 새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 경우에는 이제 막 정권교체를 이뤄낸 미국이 먼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북한과 갈등을 빚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미국의 강경한 기조 속에서 북한은 2002년에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HEUP)을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토했고, 2003년 1월 즉각적으로 NPT를 탈퇴한다.
부시 → 오바마(2009~)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설명한 그림
(출처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22502&cloc=)
2009년 출범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전략적 인내(Stragetic patience)'였다. 그러나 북한은 오바마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이는 북한이 오바마 정부도 부시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오바마는 전임자인 부시 정권에서부터 일어난 세계의 문제들을 모두 떠안았다. 8년간의 부시 독트린으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반미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수렁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북한은 전략적 인내 정책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부시 정부 때부터 진행해 오던 핵보유국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이 경우는 미국의 정권교체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연임이 가능한 미국 대선의 특성상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가 더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4년 동안 경제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바마에 대한 불리한 예측도 가능한 상황이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혹은 롬니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대북 정책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우리가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에 주목할 만한 이유이다.
[참고문헌]
조엘 S. 위트, 2005, 김태현 옮김,『북핵위기의 전말』(모음북스).
장달중 외, 2011, 『북미대립』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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