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국제심포지엄]
북한과 동독 이탈주민의 사회통합 (3)
-분단국가의 통일·통합 위한 사회통합 가치와 정책방향은 무엇인가?-
3부에서는 ‘분단국가의 통일·통합 위한 사회통합 가치와 정책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 토론을 진행중인 참가자들의 모습
A. 남북한 통일 및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통합의 정책 방향
먼저 발제를 맡은 이화여대 박영자 연구교수님께서 남북한의 통일 및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통합을 위한 가치로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를 제안해주셨습니다.
상호문화주의란 한 사회 내 문화그룹들 간의 교류의 철학으로, 한 공동체 내의 일반성을 찾아 통합을 형성하는 것이며 정책실행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들을 융합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단일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 가지는 문제점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다문화주의’가 강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 정책에서도 다문화주의를 기초로 한 정책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박 교수님께서는 “이 다문화주의가 남한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적 Agenda가 될 수 없다”며, 그 이유로 현존하는 남북의 갈등구조를 지적하셨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다문화주의가 남북의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다문화주의의 전제는 ‘관용’과 ‘차이의 인정’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다문화주의가 가지는 최고의 장점이자 동시에 한계라는 것이 박 교수님의 문제제기였습니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다문화주의가 자칫하면 남북갈등 및 남남갈등의 해결을 미루고 오히려 현존하는 갈등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문화주의가 목적으로 삼는 ‘공동체 내의 일반성의 발견’이 성공하지 못하면, 공동체의 구심력을 잃게 만들고 분열을 방치해 공동체의 존립 자체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일민족주의와 다문화주의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박 교수님께서는 여기에 ‘상호문화주의’가 대안적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십니다. 상호문화주의는 차이의 인정 이론에 기초한 다문화주의와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성/공공성 이론에 바탕을 둔 초문화주의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모든 개인과 공동체 간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바로 이 ‘관계’의 형성이 북한 문제와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표1> 참조.
출처 : 심포지엄 자료집
지금까지 남한 사회가 상당 부분 북한이탈주민을 단순히 지원의 대상으로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북한이탈주민을 내 이웃, 나와 함께 사는 평등한 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동등한 위치에서 상호적 관계가 형성되면 ‘우리’라는 공통성을 발견할 여지가 생기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기존의 남한 주민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의 공동체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번 그렇게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면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통합 뿐 아니라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남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 공동의 노력이 가능해집니다. 남북이 같이 살아가고 또 함께 행동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죠.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람 대 사람의 이야기인 만큼 일차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직접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옆에 사는 북한이탈주민을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라 그냥 ‘옆집에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만 해도 사람들의 태도에 큰 변화가 생기겠죠? 이런 인식 개선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지원 등이 더해진다면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통합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이 직접 국가의 정책 설정 등에 참여해 훌륭한 파트너로 활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B. 자유토론
박 교수님의 발제가 끝난 뒤 1부와 2부 발표자 전원, 그리고 심포지엄에 참석한 모든 참가자들이 논의된 내용을 가지고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토론자들의 질문과 답변에 대해 간단히 문답 형태로 소개하겠습니다. 당일 시간관계상 충분한 답변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은 질문만 기재하였습니다.
Q1. (토론자1. 박영자 교수님께) 남한 내의 북한이탈주민이 정치적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 상호문화적 관계 성립의 대상은 북한인가, 북한이탈주민인가?
A1. (박영자 교수님) 남한 내의 북한이탈주민이 정책 형성 등 정치과정에서 ‘당연히’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파트너’십’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Q2. (토론자2. 토론자 전원에게) 북한이탈주민의 사회 적응을 위해 남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Q3. (토론자3. 박영자 교수님께) 제안한 ‘관계 맺기’가 일상의 문제라면, 그런 일상의 문제를 정책화 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는가?
A3. (박영자 교수님) 정책화의 과정은 좀 더 연구해볼 문제이고,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연구 방향에 있어서 예를 들자면, 북한이탈주민을 직접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보다 북한이탈주민 접촉 경험 유무별로 남한 주민의 인식에 대해 연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남한 사회에서 교육 과정의 정책적 실현 과정에서 여러 좋은 프로그램들이 시행되고 있다.
Q4. (토론자4. 박영자 교수님께) 관계 맺기의 확장과 관련해서, 현재 북한을 향한 ‘두려움’ 같은 현상은 무지에서 기인한다.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 어떤 것들이 시행되고 있는가?
A4. (박영자 교수님) 북한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이 각종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를 통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일부 지역에서 소규모로 시행되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상의 질의응답 이후에도 여러 발표자 분들께서 추가 발언을 이어주셨습니다.
1부 토론자이셨던 충남대 김학성 교수님께서는 다문화주의의 ‘다문화’ 자체가 민족을 전제하는 것으로 여기에서의 ‘문화’가 바로 문화민족 개념, 즉 역사와 언어, 핏줄 등을 공통으로 하는 민족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어서 “그렇다면 북한이탈주민을 ‘다문화’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인이 어딘가에 소속됐다는 것으로 정체성이 형성될 때 같은 수준의 범주에서 복수적 정체성을 가지는 경우는 없다. 민족을 전제로 한 문화를 가지고 정체성을 구분한다면 북한은 우리와 ‘동일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문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는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충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지 못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통일연구원의 손기웅 연구원께서는 다문화주의에 관해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에 거주하던 터키인, 서독에 거주하던 베트남인들까지 아우르는 다문화적 통합을 이뤄낸 경험을 살펴볼 것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또 통일과 평화를 이분법적 개념으로 여기는 것을 지양해야 하며, 평화의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뒴멜 박사께서는 “독일인들은 당시 국내에 거주하던 터키인들에게 기본적으로 큰 호감을 갖고 있었다. 남북 간의 대립 정세를 고려했을 때 독일의 경우와 바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다만 당시 독일에서도 세대 간 정체성의 차이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중장년층의 경우엔 통합을 완전히 거부하는 의견도 상당수 존재했지만 젊은 층의 경우엔 문화의 차이에 따른 장벽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이어 “남한과 북한은 60년이라는 긴 분단 기간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오랜 반만년의 공통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지금의 분단 상황을 분리division라고 여기기보다는 일시적 고립isolation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통일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셨습니다. 또한 “독일의 통합 과정에서 동서독 모두가 ‘동독과 서독은 같은 민족이다’라는 믿음을 공유했었다”면서, 서독이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부분도 소개해주셨습니다. 일례로 서독이 동독주민을 겨냥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했다거나, 서독 사람들의 동독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한 활발한 정보 교류를 했던 것 등입니다. 그러나 "방송·매체를 통한 정보교환이 가능했던 동서독과는 달리 남북한은 정보의 교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이 두 사회의 매개가 돼야 한다"는 제언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현인애 교수님께서도 앞서 논의된 다문화주의와 관련해 “남북 주민 간에 자꾸 ‘다름’만을 강조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며, 남북이 아예 서로 다른 문화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밖에도 북한이탈주민 공동체 내부의 얘기를 전하시면서 “새로 탈북해온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이탈주민들 끼리의 공동체에서 먼저 적응을 한 뒤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 같다”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노르베르트 에쉬보른 소장님께서는 “독일의 경우처럼 남북한이 당연히 서로가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그동안 남북문제나 북한이탈주민 문제에 있어서 너무 세세한 부분들을 파고들다가 정작 중요한 큰 그림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3부의 전체 사회를 맡아주신 이화여대 최대석 교수님께서도 “그동안 우리가 분리와 대립에 너무 익숙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통합 문제에 있어서 분리와 대립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시며 심포지엄을 마무리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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