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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북한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있을까?

총 6개 분야에서 매년 최고의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수상하는 노벨상! 한국 사람으로는 2000년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부문에서는 고은 시인이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요! 모두가 어서 대한민국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길 고대고대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북한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뻔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세계적인 권위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을 뻔 했던 북한의 작가는..
민촌 이기영(李箕永) 선생입니다~

이기영이라는 작가가 생소한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이기영 선생과 대표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민촌이 되기까지...

이기영은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요. 문단에는 1924년 7월 「오빠의 비밀편지」가 『개벽』 현상문예에 3등으로 당선되면서 등장했습니다.

민촌(民村)이라는 호가 그의 작품세계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민촌은 상민 또는 양인이 사는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양반들이 모여 사는 반촌(班村)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 곳에서는 구성원들끼리 동질성을 느끼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이기영이 이런 뜻의 ‘민촌’을 호로 가졌던 것은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을 대변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과 맞닿는 면이 아닐까요?

주로 농민 소설을 썼던 이기영은, 지식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 받는 가난한 소작농의 삶을 글로 풀어냈습니다. 실제로 그의 글 속에는 하층민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무지한 농민들을 계몽시키는 계몽자도 농민과 동등한 처지에서 불우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이러한 소설들로는 「가난한 사람들」(1925), 「민촌」(1926), 「농부 정도룡」(1926), 「아사」(1927), 「홍수」(1930), 「서화」(1933), 「고향」(1934)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영의 작품과 그의 생애에 대한 다른 해석과 비판도 있습니다.
『조선지광』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이기영은 1925년 카프에 가담하여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부터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경험, 농촌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향소설의 대표 작가로 자리를 잡으며, 「고향」(1934) 등과 같은 그의 대표작들을 창작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이던 1935년에 카프가 해체되고, 이기영이 카프 활동으로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복역하면서, 그의 문학은 전환기를 맡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작품에 드러내는 등 친일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이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경제적 어려움, 정치적 혼란, 전쟁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할 때, 농민 소설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그의 경향 소설의 의의도 대한민국 문학사에 중요한 영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으로 알아보는 민촌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고향>, <땅>, <두만강>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고향>과 <두만강>을 간단히 알아볼까요? 

<고향>은 ‘경향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문학적 작품성에 있어서는 두만강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고향>에서 주인공인 김희준은 지식인으로서 농민들을 계몽시켜 계급해방을 이루고자 한 인물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계급해방을 위해 농민과 노동자를 연대 시켰다는 점입니다. 김희준의 노력에 의해 계몽된 농민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마름 안승학의 횡포에 대항하여 소작료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냅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을지 모르는 농민의 계급 해방을 이기영은 집단 소작료 투쟁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조선일보에 <고향>을 연재하던 중에 카프 활동 가담으로 이기영이 복역하게 되자 소설의 후반부를 다른 이가 썼다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의 분량을 대필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고향>은 생생한 농촌 풍경 묘사와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 등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1930년대 <고향>이 출간될 당시 2만권 이상이 팔렸는데, 이는 이광수의 <흙>보다 두 배 이상의 판매율이라고 하니 진정한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만강>은 모두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1부는 1954년에, 2부는 1958년에, 3부는 1962년에 각각 발표되었습니다. 책의 쪽 수가 2,000페이지가 넘는 양이라고 하니 진정 ‘대하소설’이라고 할 만하죠? 소설은 박곰손 가족의 3대를 통해 일본 강점기의 현실과 항일 의식, 공산주의 이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제와 결탁한 봉건 지주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소작농의 투쟁을 그려내 북한에서는 ‘통치배들을 반대하여 벌인 인민들의 투쟁을 생동한 화폭으로 보여줌으로써 19세기말~20세기초 우리 인민들의 자기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족적 존엄, 용감성과 불굴의 기개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민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의 이름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려놓게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항일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김일성의 동북만주 항일무장투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여러 부분에서 현실 왜곡이 보이는 한계도 찾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인정한 예술가

광복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을 재창설하여 이끌던 이기영은 1946년 한설야와 함께 월북하였습니다. 월북한 문학인들은 대부분 불우한 노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숙청을 당하거나 실종된 수많은 월북 예술가들과는 달리, 이기영은 노년까지 북한에서 비교적 높은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1960년 장편소설 <두만강>으로 인민상을 수상했고, 1955년 노력훈장을 비롯하여 국기훈장 제1급, 소련 노력적기훈장을 받는 등 북한에서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졌죠. 또한 이기영은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라는 북한의 모든 예술인들이 소속된 단체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행정적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함께 월북한 한설야가 숙청된 이후에는 북한 문예계의 핵심 인물로서 1984년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정치인으로서, 예술가로서, 북한문학과 문학정책을 주도했습니다.

 

 

북한에서 작가가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들다고 하는데요. 사상적인 검열이 철저하기 때문입니다. 출판사로 보내진 작품들은 모두 국가심의위원회의 작품 선별과 국가검열을 거쳐 철저히 통제됩니다. 따라서 모든 작가들은 ‘사상 선전’이라는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북한의 문학이 사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지 북한의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1930년대에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문학적 역량을 갖춘 이기영 같은 인물들이 사상의 강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다가와서 다시 한 번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는 한국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처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전영선, 2004, 역락
북한의 문학과 예술, 전영성, 2004, 역락
오마이 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0051112
네이버 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3720
네이버 캐스트(고향)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824
네이버 지식사전 (두만강)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5268#explanation
주간경향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9574&pt=nv 

사진2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9574&pt=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