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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오래된 약속>을 통해 마주한 진짜 북한

오랜만에 책을 손에 들었다. 책 제목은 <오래된 약속>. 1997년 13명의 탈북자들이 제 3국에 밀입국해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한 사건을 실화로 다룬 내용이다. 물론 등장인물은 모두 가상 인물이다.

이 책의 주요인물은 '만금'과 '아영'이다. 이야기는 1997년 3월부터 시작한다. 소설 내용은 '만금'의 관점에서 서술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남한 사람인 '아영'의 시점으로 바뀐다. 물론 이 책은 어디까지나 13명의 탈북자가 제 3국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따라서 '만금'의 시선을 통해 함께 모인 탈북자 12명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나에게 그 동안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부분을 깨우쳐 주었다. 고난의 행군으로 사라져버린 인간의 정, 그리고 인권유린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만금'에게는 딸 성아와 아들 성일이가 있다. 집을 부탁하고 잠깐 고향에 내려갔다온 사이에 집을 봐주기로 한 사람이 다른 간부에게 집을 팔면서 만금은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할 수 없이 선택한 곳이 무산역. 꽃제비가 아니었지만, 그녀도 결국 꽃제비 신세로 전락한다.

하지만 만금에게는 병이 있었다. 바로 오랜 시간, 고난의 행군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 병이 되어 몸이 쇠약해져버린 것이다. 삶을 포기하고 딸 성아만을 기다렸던 '만금'.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어느 한 노인이 다가온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갈 생각이 없느냐는 노인의 말. 처음에는 딸 성아를 기다리기 위해서 만금은 거절했다. 하지만 두만강을 건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딸 성아를 죽음으로 몰지 않기 위해서 혼자 두만강을 건너기로 한다.

처음에는 북한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노인의 말에 따라나선 탈북 길. 강을 건너고 나서야 만금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 노인이 사실은 중국에 인신 성매매로 북한 여성을 팔아넘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하늘이 도운 것이었을까. 만금은 북한 인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국경 지역에 온 남한 남자 일영이 노인에게 돈을 주어 겨우 그 성매매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남한 남자인 일영과 함께 돕기 위해서 직접 중국까지 온 가영과 나영. 이 모든 이름은 가명이다. 이들의 도움으로 만금은 중국의 한 아파트에 은신처로 오게 된다. 만금이 온 이후 12명의 탈북자들이 더 들어오게 되면서 13명이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아파트에 함께 살게된 민규는 국군포로의 아들로, 출신 성분이 좋지 않아 보위부의 끄나풀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이 13명이 사는 공간 안에서 민규는 보위부 출신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게 바로 내가 느꼈던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국군포로의 아들이라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 좋지 못한 성분에 해당한다. 살아남기 위해 민규는 권력인 보위부에 아첨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맡았던 보위부 끄나풀은 주민들의 생활을 감시해서 그들이 했던 행동과 말들을 고자질하는 일이다. 전형적으로 북한 인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자처한 셈이다. 하지만 강한 생존 본능에 의해 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정이나 사랑이 아닌 오로지 권력만이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난의 행군이 지나간 자리엔 더이상 우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번째, 북한 인민의 인권이 처참히 무너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인신매매에 북한 사람들이 먼저 선택했을 것이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모두 억지로 끌려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이 억지로 끌려간 것이다.

하지만 춘희는 달랐다. 의대를 다녔고, 아버지가 도당 신문기자였던 그녀의 가족은 고난의 행군 이후 서서히 굶어죽어갔다. 그게 싫어서 선택한 탈북. 처음에는 중국 한족에게 시집갔지만, 점점 싫어지자 스스로 중국 공안에게 탈북자임을 고하고 북한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조선족에게 시집을 왔다. 순전히 말 잘 통하고 자신을 제대로 대해줄 수 있는 먹여살려줄 수있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춘희. 그녀는 스스로 인신매매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에게서 거리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신 매매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쩐지 슬프게 보였다.

자신의 인권은 무시한 채, 자신을 스스로 판 셈이니 말이다. 여기서 심각한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음에도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나. 이 책은 내게 북한의 실상을 내 피부에 와닿게해준 책이었다. 소설 마지막 끝에선, 중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이 13명의 탈북자 망명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결국 제3국을 통한 한국행을 선택한다.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13명의 탈북자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젠 남북한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잘 지내고 있느냐고...망명과정에서 드러났던 남북한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한국 사회에 정착했다고 해서 바로 사라졌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를 그대로 괄시할 수만 없는 이유는, 현재 남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의 수가 2만 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또 다른 갈등과 차별에 부딪히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할 때란 생각이 든다.

그래야 비로소 험한 여정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이 조금은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모든 탈북자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