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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20년 뒤에 만난 통일의 꽃 임수경과 함께한 20대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상생기자단에서 순수함을 맡고 있는 윤희연기자입니다
 

해가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도 민망함을 무릅쓰고 순수함을 밀고나가고 있는 제가 요번에 소개할 기사는 쨔쟌

이번에 1월 8일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서 방송된
방송 전부터 큰 화제가 되었던 임수경씨의 개인적이면서 공적인, 편안한 분위기의 인터뷰입니다!
 



임수경씨로 하여금 평범한 길을 걷게 하지 못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건. 이제는 역사적 사건이 되어버린 1989년의 방북을 현재의 20대, 청소년들은 아마 대부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이 방송을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대학생패널로 참여하기도 했었고, 백지연 아나운서를 존경하기에 이 방송을 즐겨보는 편인데요. 2012년 1월 18일 임수경씨편 인터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내용도 두 여성 특유의 당당함으로 웃어넘기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된 50분이었는데요. 7, 8년 만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임수경씨의 근황 이야기를 하며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Q. 최근 근황은?
A. 외대문학상에 빛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소녀였지만 어렸을 때 유명세를 타다보니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10년동안 시간강사 일을 했었고 라디오 DJ도 재밌게 했었지만 가장 최근인 367일동안은 백수였습니다. (이는 트위터에 본인이 직접 올리기도 하셨네요^^) 이 최근 백수였던 1년 동안 아르헨티나 여행도 가고, 밀린 소설과 드라마도 보며 지냈습니다. 


1989년 당시 사건을 백지연 아나운서가 보도했다는 남다른 인연을 지닌 두 분은 서로 인터뷰를 하는 소탈한 대화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1989년 방북 당시를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떤지에 대한 질문에는 "다시 생각해도 늘 가슴 아픈 일"이라고 얘기했는데요.

일본과 도쿄를 거쳐 10일이 걸려 도착한 북한에서 김일성의 환대를 받고, 능숙한 자유 연설과 함께 45박 46일 동안 백두산부터 판문각까지 평화통일 대행진을 하고 민간인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임수경씨. 당시는 임수경씨의 패션과 헤어까지 모든 것이 화제였는데요. '21세 여대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맞는가' 싶다가도 '20대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20대 여대생인 저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되네요^^;

Q 89년 당시의 임수경씨 본인을 돌아본다면?
A 제가 생각해도 굉장한 용기였어요. 후회는 없고요. 전대협이 평양축전에 참가하도록 추진하는 스태프 일을 하던 도중에 '누군가는 가야된다'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상황의 영향도 있었지만 늘 주장하던 대로 생각하던 대로 가게되었습니다.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던 시기도 아니고, 연락수단이라고는 미리 시간 약속을 하고 카페에서 전화 연결을 하는 정도 밖에 없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시대적 거리감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방북 당시 부모님께는 남해안 졸업여행을 간다고 귀여운 거짓말을 하고 가셨다는 에피소드를 들을 때에는 왠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방송 전부터 이슈가 되었던 "어머니 성함은 김정은, 외삼촌 성함은 김정일"이라는 깜짝발언도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국가보안법도 무시하고 걸어서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고, '나의 행동으로 통일을 앞당기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당시 거리행진을 하면서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친 그 100만 명의 동포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얘기했는데요. 역시 기억은 감정과 결부되었을 때 임팩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저였더라도 그 눈빛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말하는 임수경씨의 눈빛에서도 당시를 빠르게 회상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왜곡된 80년대의 슬픈 현실. 그 당시의 아픔에 충실했었다는 말을 하면서 '당시 386 남성들은 비겁했다'라는 민감할 수 있는 내용도 언급하며, 그 때 지키고자 했었던 인권, 통일 문제 등의 소중한 가치를 끝까지 고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비치며 이제는 "임수경답게 살아야 겠다"는 의미심장한 언급 또한 하셨는데요. 개인의 삶보다는 공적인 삶을 중시하고, 관심 갖는 하나 하나의 사건들이 지금의 임수경씨 개인을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통일부 상생기자단!!
 
통일 담론 관련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실까요? 임수경씨는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Q 통일에 관한 담론 중 북한 내부가 변하지 않는데 민주화가 진전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북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지라도 그들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그 체제를 바꾼다는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정책관련 문제는 테이블에서 회의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포, 시민들의 '감정'입니다. 


감정적 교류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며 인터뷰를 보았는데요. 마지막으로 남다른, 열정적인 20대를 보내신 임수경씨께서 현재의 20대에게 전하고픈 말로 인터뷰는 마무리 됩니다.

요즘 20대를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물론 현재의 그들을 존중하기에 --해라 라는 메세지를, 조언을 해줄 자격은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요즘 20대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고, 자아를 갖고,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비현실적일 수는 있지만 20대들 만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그런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89년 방북 당시의 느낌과 밀접한 통일에 대하여 20대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들을 소개해드렸는데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던 한마디가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신 임수경씨에게 들었기에 더욱 와닿았던 것 같은데요.
 
 
아픔을 극복하려 해본적은 없다.
또 견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냥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50분의 인터뷰를 통해 임수경씨에 대해, 임수경씨의 통일에 대한 생각과 느낌도 알 수 있었습니다.



 

1월 8일 오전 11시의 본방송을 놓치셨다면?
TVN사이트에서 다시보기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