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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북한의 국보 사찰은 무엇이 있을까요?

북한에는 돌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바로 북한의 국보 문화 유물로, 금강산 표훈사에 있는 보덕암 입니다.
보덕암 말고도 또 어떠한 사찰이 있는지! 
그 내부는 어떠한지~ 어떠한 전통건축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이제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금강산 표훈사 보덕암(表訓寺普德庵)



지정 번호 :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99호  
소  재  지 :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시       대 : 고구려시대 

보덕암은 조선왕실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고 귀중한 유물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고구려 안원왕 때 보덕화상이 627년 처음 창건했으며 현재 건물은 1675년에 다시 짓고, 1808년에 중수한 것입니다. 절벽에 두개의 구리에 의지해 세워져 있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드는 톡특하고 희귀한 북한의 사찰 건축물 입니다.
보덕암을 떠받치고 있는 구리 기둥은 1511년에 설치한 것으로, 나무 기둥에 19마디의 동파을 감은 것으로 그 길이가 약 7m이고, 절벽의 높이는 20m가 넘습니다.
 

정면이 자세하게 표현된 사진으로, 본전은 정면 1칸(3.35m), 측면 1칸(0.86m)의 단칸 익공형식의 팔작지붕 기와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면 3층 건물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층 건물로서, 사가집, 배집, 합각지붕을 층층이 짜올려 3층처럼 보이는 독특한 건축물 입니다.
 

장수산 묘음사 현암

지정 번호 :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81호  
소  재  지 : 황해남도 재령군 서림리  
시       대 : 조선시대  

묘음사의 부속암자로, 예로부터 ‘황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절경을 자랑하는 장수산(長壽山) 석동 12곡의 120m 절벽에 매달리듯 자리잡고 있어서 다람절이라고도 합니다. 언제 지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성 수법으로 보아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구산선문 중 하나인 수미산문의 개조 이엄(李巖:866~932)이 말년을 보냈고, 고려 충혜왕 때의 정지국사(正智國師) 지천(智泉)이 출가(出家)한 사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암은 적어도 통일신라 때부터 존재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암의 측면 사진으로, 현암은 정면 6칸(11.2m), 측면 3칸(6.35m)의 겹처마 팔작지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암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현암의 전면은 이익공 형식, 후면은 단익공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면 사진을 보면 전면 수서형 살미로 초익공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면사진을 보면 후면 또한 수서형 살미로 초익공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현암은 대공의 활개 모양, 그리고 중보머리의 장식수법 등에서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건축양식을 간직한 사찰입니다.


실내와 실외의 중간인 툇마루 내부 사진으로, 천장은 우물 천장임을 볼 수 있습니다.

실내는 오른쪽의 정면 1칸, 측면 3칸은 부엌이고 왼쪽의 정면 1칸, 측면 2칸과 부엌을 제외한 후면에 툇마루를 가설하였으며, 가운데의 정면 4칸, 측면 2칸은 온돌방으로 꾸며 전체 구성이 일반 사찰의 요사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석왕사


지정 번호 :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94호  
소  재  지 :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  
시       대 : 조선시대

조선 태조 때 고산군 설봉리 설봉산에 세워졌습니다. 서산대사의 《설봉산석왕사기(雪峯山釋王寺記)》에 따르면 고려말 이 절 근처의 토굴에서 지내던 무학대사 자초(自超)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절을 크게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조선시대 왕실로부터 상당한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중심건물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광전, 응진당, 명부전, 나한전, 대장전, 수군당, 천진당, 용비루, 황매당, 종루 등을 갖춘 큰 사찰이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때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어 현재 불이문, 호지문(護持門), 조계문(曹溪門), 설성동루(雪城東樓) 등 몇 동만 남아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6.25전쟁으로 이해 소실된 대웅전 사진으로, 사진을 보면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석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응진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집으로 역시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에, 그 역사로 인해 사라진 문화유물들이 안타까움을 더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석왕사의 일주문인 조계문으로 1783년에 중건한 것 입니다. 조계문은 4각 주춧돌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다포계 팔작지붕을 얹은 일주문으로 금모로단청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였습니다.



세 개의 국보 건축물만 보아도 북한에 꼭 한번 가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러한 독특하고도 아름 다운 문화 유산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음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화 유산이 잘 보존되고 있는지, 소실된 문화 유산이 재건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남북간의 불교 교류를 해 왔습니다.
 
1990년대까지 해외에서 만남을 이어가던 남북불교계는 1991년 LA에서 ‘남북해외불교지도자 조국 통일 기원 법회’를 봉행, 남북불교지도자들이 해외에서 최초로 합동 법회를 봉행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룩하며 남북교류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함께한 예로는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남북불교계가 공동으로 금강산 신계사 대웅전을 복원하고 2004년 11월 낙성법회를 봉행한 일 입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있는 전통 사찰들을 수리하는 일 부터 차근차근 해야할 일이 많을 것 같지만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 내용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법보 신문 : http://www.beopbo.com/news/view.html?no=54116&section=93

<사진 출처>
하나투어
블로그 북한 전통사찰 사진전 http://blog.daum.net/parkhyosam/7088989
블로그 북한 그림과 만나는 금수강산 http://blog.naver.com/dacosa86
칼럼 : 송광호 칼럼 <28> 금강산 4대 유명 사찰(寺刹)의 재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