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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그 날 미루나무에 무슨 일이..? 도끼만행사건

 


<도끼 만행 사건 당시의 사진 ⓒ 네이버 백과사전>

 


벌써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지 6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 만큼 남과 북 사이에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들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쓸 기사에서는 남과 북 사이의 역사적 사건을 주관적 개입없이 사실적으로 재구성해서 독자분들께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그 첫번째 사건은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이른바 [도끼만행사건]으로 불리는 것 입니다. 이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북한 장교, 경비병 30여명이 미루나무 전지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9여명에게는 중상을 입힌 군사적 도발 사건 입니다.

대게는 이렇게 단순한 군사적 도발 사건으로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사건 이후에 대한민국, 미국, UN의 대응은 상당했습니다. 어쩌면 남과 북 휴전 협정 이후에 가장 긴장감이 고조된 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1. 사건의 발단 - 한 그루의 미루나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건의 발단은 한 그루의 [미루나무] 였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처에 오래된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미루나무는 높이는 15m나 되며 수명은 25년이나 된 고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늘 무성해져서 유엔군[미군과 우리나라로 구성된 군인]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바라보는 전방 관측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미루나무에 전지 작업을 하기 위해서 미군장교 2명, 사병 4명 그리고 한국군은 장교 1명, 사병 4명이 파견되어 노무자 5명이 전지 작업을 하는 것을 감시, 감독 하였습니다.


2. 사건 발생


공동경기구역에서 남한측의 전지 작업을 목격한 북한군은 장교 1명과 사병 10명을 남측의 작업현장으로 급파하였습니다(이 부분에서는 장교1명의 독단적 행동인지, 북한측의 명령이었는지 확실한 진상 파악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즉시 우리 군 측에 작업을 중지하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측은 북한의 제지 명령을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 하였습니다. 공동경비구역 내에서는 남측과 북측 모두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이를 무시하고 남측에 철수명령을 내린 것 이었습니다.


남측의 태도에 분노한 북한군 장교는 즉시 증원병력을 요청하였고 20여 명의 사병이 현장으로 즉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북한군 장교는 즉시 이들을 죽이라 명령을 하였습니다. 사병들은  장교의 명령에 따라 도끼와 곡갱이를 이용하여 미군장교 2명을 죽이고, 남측 병사들에게도 중상을 입혔으며 UN군 차량 3대도 파손 되었습니다.


3. 대한민국, 미국, UN의 대응


휴전 중인 한반도에서 미군장교가 2명이나 죽었으니 이는 북한의 명백한 도발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 미국, UN의 강력한 대응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 사실을 보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합동작전으로 보복해야 한다는 뜻을 합참본부장인 스틸웰 사령관에게 전달했습니다. 또한 사건 당일 미국의 포트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었으며, 백안관과 국무성은 동시에 “이 사건의 결과로 빚어지는 어떠한 사태에 대해서도 그 책임은 북한이 져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2개의 전투비행대대를 한국에 급하기로 결정하고, 오키나와에 기지를 둔 F4전폭기 1개대대와 미국 아이다호 주 마운틴홈 기지에 주둔해 있는 최신예 가변익 F111 전투기 1개 대대를 출동 시키에 이릅니다.


이 후에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8월 19일 
대한민국,미국,UN의 항의 표시와 북한의 재발 방지 노력 촉구 - 유엔군측 수석대표 프루딘
주한 미군에 대한 증강조치와 북한의 해명과 보상요구 - 키신저 미국무장관




<미루나루 절단 작업을 하고 있는 UN군, 네이버 백과사전>


8월 21일
미루나무 절단 명령, 미루나루 절단, 미 제7함대 기동부대 한국 해역으로 출동 조치 - 포드 미국 대통령



8월 22일
미 제 7함대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중도탄 미사일을 적재한 순양한 5척의 중무장 호위함을 거느리고 북한 해역으로 항해, 22일 밤 10시 도착 예정


8월 24일
미 공군 B52 증폭격기 한국에서 현지 훈련 돌입

 


4. 사건 종결


사실 대한민국, 미국, UN의 이런한 대응은 북한측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21일에 미루나무 절단 과정에서 미군은 만일 이 과정에서 북한국이 대응해올 경우 개성과 연백평야까지의 국지전 계획까지 세워놓고 미루나무 절단 작업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북한측도 마냥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렇기에 김일성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에게 사과문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서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쌍방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반도를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도끼만행사건]은 김일성의 사과로 일단락 됩니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은 이제 남과 북을 갈라 분할 경계 하기로 합의 하였습니다.


이상으로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버린 [도끼만행사건]에 대해서 훝어보았습니다. 분단 이후로 북측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휴전 협정을 무시한 처사 입니다. 북의 도달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대응을 해야하는 것은 국가의 안보를 위해 당연한 것입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된다면, 한반도에 더 이상 미루나무가 베이는 일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