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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독재자의 최후,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여러분은 독재자하면 가장 먼저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독재자는 김정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번에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독재자의 횡포와 최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이 아니라 과거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했던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입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

 

차우셰스쿠 그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전설적인 독재자'인데요. 독재자에게는 너무 과분한 칭호가 아닌가 싶습니다. 차우셰스쿠 독재를 말씀드리기 앞서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된 루마니아의 탈사회주의 과정을 그림을 통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974년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대통령의 직위에 오르게 된 차우셰스쿠는 미국, 중국, 소련 어느 노선에도 가담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주장하면서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을 통제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자들은 과감하게 숙청하였습니다. 또한 농업 국가였던 루마니아의 특성은 무시. 사회주의 특징인 중공업화를 무리하게 시도하였고, 이는 국가적으로 막대한 피해와 부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그와 김일성의 역사적인 만남은 루마니아에 더 큰 고통을 주게 됩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의 만남)

 

 

 

그는 김일성의 절친한 친구로, 김일성을 정치선배로 생각했고, 특히 북한의 세습체제를 아주 동경하였습니다. 북한을 방문한 차우셰스쿠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보고 감탄에 감탄을 했고, 그는 주체사상을  모방하여 루마니아에 적용, 자신을 ‘가르파티아 산맥의 천재’라는 칭호로 일컬으며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발전시킵니다. 북한 방문 당시 김일성의 주석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차우셰스쿠는 자신도 주석궁보다 좋은 궁전을 갖기를 원했고, 그보다 좋은 궁전을 짓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또한 챠우셰스쿠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루마니아의 모든 요직을 맡겼으며, 향후 그의 죽음 후 자신의 자리를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 미리 계획하였다고 합니다.

 

 

 

 

 

                        (북한의 주석궁)                                  (루마니아 차우세스쿠의 문화궁전)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했던 차우셰스쿠의 문화궁전은 당시 먹고 살기에도 힘든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고통뿐 아니라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궁전의 방은 1만7천여개나 되었고, 샹들리에가 3500개, 내부는 대리석과 금으로 도배되었습니다. 미국의 펜타곤 면적과 맞먹는 이 궁전을 짓기위해 차우셰스쿠는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내쫓았고 7만여명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차우셰스쿠의 정치는 공포 정치로, 도청을 통한 불만세력 색출을 통해 국민들을 통제하였습니다. 당시 루마니아에는 인구 2,000만 명에 300만 개의 도청기와 1,000여 개의 도청 센터가 설치될 정도로 빈틈없는 감시 때문에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 국민들은 집안에서도조차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차우셰스쿠 자신도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었는지 그는 항상 암살될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늘 소독된 옷을 입었고. 자신과 자신을 비롯한 가족, 애완견이 먹는 모든 음식들을 다른 사람이 먼저 먹어보게 하였습니다. 특히 악수와 스킨십을 아주 꺼려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몸에 독을 묻힐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1989년을 기점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를 버리고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고 루마니아에서도 만성적인 식량부족과 그의 독재정치로 인해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가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만에 불을 지핀 것이 차우셰스쿠가 자신의 권력의 과시하기 위해 개최한 1989년 12월 티미소아라드(timisoarad) 공개 집회였습니다. 이 집회에서 시민들의 반정부 집회가 시작되었고, 차우셰스쿠는 이러한 모습에 당황하여 연단을 도망치듯 떠남으로서 루마니아 반정부 시위는 극대화 되었습다. 이를 계기로 12월 20일에는 부카레스트(bucharest)에서 10만 명의 시위로 확산, 시위가 격화되자 군인은 반기를 들고 시민측에서 대통령 친위대와 교전하여 루마니아는 내전상태에 빠졌습니다.

 

 


















(내전당시 군인들에게 식량을 주는 루마니아 주민)

 

 

헬기를 타고 도주하려는 차우셰스쿠 부부는 헬기 조종사의 변심으로 인해 체포되었습니다. 헬기 조종사의 증언에 의하면 차우셰스쿠는 북한으로 도주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12월 25일 특별군사법정에서 챠우체크스 부부는 처형을 당하는데 그들의 몸에 100여개의 총탄이 박혔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의 몸에 100여 개의 총알이 박힐 정도로 쏘았다는 것은 루마니아 국민들의 그동안 핍박받던 삶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영원한 독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일 또한 하루 아침에 차우셰스쿠의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공포와 억압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그동안의 분노가 일순간 전체적인 봉기로 이어진다면 북한의 붕괴는 순식간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고 북한을 예의주시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독일, 그리고 제가 지금 말씀드린 루마니아 사태를 보면 모두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은원이의 맛있는수다, 도전에는 연령제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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