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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전쟁의 아픔을 삼키는 <6ㆍ25 음식 먹기 체험행사>

 

전쟁의 아픔을 삼키는 <6ㆍ25 음식 먹기 체험행사>

 

 

 

 

 

  6ㆍ25 전쟁 60주년의 해를 맞아 얼마 전인 24일엔 한 선교 단체의 주관으로 < 6.25 음식 먹기 체험행사>가 열렸습니다.  올해로 벌써 스무 번째인 이번 행사는 1차로 지난 5월 25일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열렸고, 2차로 6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렸는데요. 점심 시간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힘쓰시는 선교 단체 회원 여러분들의 손길이 아주 바삐 오갔습니다.

 

 

 

  

 

 

 

행사를 위해 메뉴를 붙이는 손길을 담아 봤습니다.

 

 

  현장에서 본 정성스런 손길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니, 부족함이 많습니다.

 

  수제비며 풋고추 보리개떡에 꽁보리 주먹밥까지...

 

  아침도 거르고 오전 일찍 인천에서 취재를 위해 출발한 저로서는 침이 꿀꺽 넘어가더군요. 이런 좋은 행사 날, 날씨는 비록 후덥지근 했지만 하늘만은 빗방울 하나 없이 맑았기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짜잔!

 

  음식 나누기 행사가 시작하기 무섭게, 선생님 손잡고 마실 나온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는데요.

 

  6ㆍ25 전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그저 음식 달라고 고사리 손을 내밀던 아이들. 그러나 요즘 달달한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진 탓인지 연신 '맛없어'를 연발하더군요. 지금의 아이들에게 보리밥에 된장, 멀건 국물의 수제비는 무슨 의미일까요? 6ㆍ25 전쟁 당시 이 음식을 아주 달고, 감사하게 먹었던 참전 용사와 유가족들이 봤다면 한편으로 쓴 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사진을 감상하시죠!! 

 

6ㆍ25 전쟁 당시 먹었던 음식들은 지금 세대의 눈으로 보기에 소박함 그 자체입니다.

 

 이번 행사에서 차려낸 음식들은 먹을 것이 부족했던 6ㆍ25 전쟁 당시 그 찢어질 듯한 가난 속, 무거운 삶을 연명하기 위해 희망을 꿈꾸며 만들어 먹은 음식들입니다. 더러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기필코 살아 남고자 했던 전쟁의 북새통 속에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버린 수 많은 '어머니'들이 만들었던 음식이기도 하죠. 지금은 위생 문제로 비닐 장갑을 끼고 만든다지만, 그 당시는 어머니 손맛이 가득 깃든 음식이었을 겁니다.

 

 

 

상생 기자단은 위 사진의 일행 속에서

너무나도 즐겁게 음식을 드시는 한 할아버지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김 할아버지의 고향은 김해군 대동면 괴정리라고 하네요.

 

Q. 할아버지 6ㆍ25 음식 드시니까 생각 나는 일 있으신가요?

 

  "난 6ㆍ25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어. 그때 비상 소집이 걸렸었다구. 자네 학도병 알지? 내가 그거였어.

물론 김해라서 총알이 날아오는 상황은 못 봤지만 정말 비참했다구...

낙동강에서 떠내려 오는 시체들...그 중엔 국군도 있었고, 인민군 시체도 있었지. 권총까지 그대로 차고 있었다니까.

그것들을 내가 묻었어..그때 그 시체들이 살아 있으면 다 아버지고, 할아버지고 할텐데 말이야. 이거 먹으니까 가족, 친구들 생각이 나"

 

 

 

Q. 그때 전쟁 통에서 드신 음식이랑 지금 먹는거랑 맛이 어때요?

 

  "이거 맛 없어. 왜 맛 없냐구? 그땐 배고팠잖아..쓰레기통 뒤져서 주워 먹고, 병 걸리고..

따지고 보면 그 때 먹었던 보리밥이랑 쑥떡이 지금 것 보다 맛은 더 없지.

그때는 쑥떡에 쑥만 잔뜩 들어가서 아주 새까맸어. 지금 처럼 녹색이 아니라 음식이 더 질기고 그랬지.

보리밥도 맨 보리만 들어가서 얼마나 새까맸는데..

이런 거 말고도 그 때는 소나무 껍질도 먹어 봤고, 멀겋게 쑨 보리죽도 먹어보고, 김치 국밥도 먹어보고 그랬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손자 녀석들 한테 하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 

할아버지는 왜 맨날 세종대왕 시절 이야기만 하냐고 물어. 허허."

 

 

 

 

  그렇게 김 할아버지는 쑥떡 몇 개와 보리밥, 풋고추에 된장을 싹싹 비운채 다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사진 한장 찍고 싶었지만 한사코 손사레를 치시는 지라 그럴 수 없었던 게 아쉬웠습니다. 머리에는 점잖으신 중절모를 쓰시고, 베트남 참전 용사라는 금뱃지를 달고 계신 풍채 좋은 할아버지 였는데 말이죠.

 

 

 

 

그 때 그 시절.

전쟁통에 가난했지만 당신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평화를 말하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압니다.

당신들이 지켜온 나라는 지금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되어 평화 60주년을 맞이 하였습니다.

음식 하나하나에 깃든 수 많은 김 할아버지들의 사연이 오늘날 한 청년의 가슴을 울립니다.

고맙습니다. 이 땅에 평화를 만들어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