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의료 봉사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의료 봉사 현장에 가다

 

 

 

  사람이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을 음식들, 몸을 누일 집 한 칸, 얼어 죽지 않도록 입을 옷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흔히 떠올리는 것들은 말 그대로 우리 ‘몸’의 안위에 꼭 필요한 것들이네요. 그럼 자기 몸의 건강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막막하고 답답할까요?

 

  상생기자단으로서 북한이탈주민의 생활을 보고 들으면서 느꼈던 바이지만,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서 살면서 큰 어려움을 느끼는 건 이념·사상 같은 거창한 말들보다도 사실은 정작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부분입니다. 특히나 의료 문제는 가장 절실한 문제들 중 하나일 거예요. 몸은 아픈데 치료할 돈이 없어서, 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대로 끙끙 앓아야 한다는 게 그리 먼 얘기가 아닌 겁니다. 이렇게 의료비가 없어 곤란함을 겪는 분들을 위해, 또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잘 몰라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매주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무료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료와 약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바로 그 현장을 상생기자단이 직접 찾아가보았습니다.

 

 

 

 

 

  지난 1월 24일 일요일. 주말인 탓에 부산 서면 번화가는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모든 병원들은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했습니다. 종합병원 말고는 모든 병원이 문을 닫는 일요일, 하지만 이곳 서면메디컬센터의 2층에 마련된 진료소만큼은 한창 활기차게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 중이었습니다.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에 있는 서면메디컬센터에서는 매주 일요일 2시부터 4시까지 북한이탈주민 및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가 이루어집니다. 그린닥터스라는 의료 NGO 단체에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그린닥터스는 정기적으로 대북지원의약품을 전달해왔고, 지난 2007년에는 개성을 방문하여 7억 원 상당의 대북지원의약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6년에 그린닥터스 개성협력병원을 완공하여 2007년부터 그린닥터스 개성협력병원에서 남북의료진 공동으로 진료를 시작했다고 해요. (출처 : 그린닥터스 홈페이지) 무료 진료를 받으러 오는 분들이 다양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내과, 외과, 산부인과, 치과 등 서로 다른 과 담당의 의사 선생님들이 매주 교대로 나오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 의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힘과 수고를 나누고자 하는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와 있었습니다. 매주 5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이곳에서 수고해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틈을 타서 자원봉사자들과 짧은 인터뷰를 가져보았습니다.

 

 

  먼저 공부하느라 바쁜 고등학생일 텐데도 가장 먼저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던 한 학생을 만나보았습니다.

 

  상생기자단 : 어떻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학생 : 기왕 하는 봉사활동이라도 진짜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북한이탈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가 이루어진다고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3명의 여대생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세 친구가 함께 매주 일요일마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다고 해요.

 

  상생기자단 : 어떻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여대생 : 인터넷에서 의료 봉사라는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직접 이곳에 연락을 드리고 자원봉사자  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상생기자단 : 다른 곳도 아니고 굳이 북한이탈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자원봉사에 참여하시는데, 이곳에서 하는 자원봉사가 여타 자원봉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요?

  여대생 :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실제 경험을 쌓는 점도 있고, 그냥 기부를 하거나 돈을 내는 등 간접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혜택을 많이 못 받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돕는다는 의미가 있어서 성취감이 더 커요.

 

 

 

 

 

서면메디컬센터 2층에 마련된 진료실. 매주 일요일마다 북한이탈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문을 열어요.

 

 

 

  일요일 오후. TV엔 한창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을 시간이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활발하게 돌아다닐 휴일입니다. 그런데도 집안에서 뒹굴거리거나 집밖에서 신나게 놀지 않고 약 냄새 풀풀 나는 병원에서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자원봉사에 참여하겠다는 뜻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치과의 송보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무료 진료가 시행된 이후로 어느덧 8년째인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주 나오셔서 무료 진료를 제공하신다고 합니다. 일이 많아서 피곤하셨을 텐데도 상생기자단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셨어요.

 

 

 

 안과의 송보근 선생님.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사진 촬영을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ㅎㅎ

 

 

 

  상생기자단 :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무료 진료는 언제부터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송 선생님 : 그린닥터스에서는 2002년부터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제공해왔습니다. 무료 진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모색하던 중에 그린닥터스 상임이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도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렸고, 2008년부터 외국인노동자뿐만 아니라 북한이탈주민에게도 무료 진료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상생기자단 : 그럼 무료 진료소 운영은 어떻게 되어가나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나요?

  송 선생님 : 주 20~30명 정도가 방문합니다. 하지만 이건 1년 동안 방문한 환자 수 전체를 통계 낸 수치이고, 실제로는 계절,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등 편차가 큽니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찾아오시기 힘드니까요.

  (이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오무영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불법체류자 단속을 하는 기간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료를 받으러 잘 오지 않는 면도 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상생기자단이 방문했던 그 날도 결국 진료를 받으러 오신 분이 없었어요. 직접 이야기도 나눠보고 진료 장면도 사진으로 담고 싶었는데, 무척 아쉬웠습니다.)

  상생기자단 : 그런데 매주 휴일마다 봉사활동을 하면 가족들이 좀 싫어하진 않나요? 일주일 내내 바쁘셔서 가족들과 시간을 못 보냈을 텐데, 이렇게 휴일까지 고스란히 반납하고 계시잖아요.

  송 선생님 : 늘 해왔던 거라서 별 부담은 안 돼요. 그리고 사실 무료 진료 봉사는 주말에만 하는 게 아니라 평일까지 확대되기도 합니다. 기계 가동도 안 되고 간호사가 다들 쉬는 일요일에 진료를 하다 보니까,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간편한 진료는 가능하지만 제공할 수 있는 치료에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수술, CT 촬영, MRI 촬영 등이 필요할 때는 평일에 따로 방문하게 하셔서 제공합니다.

  상생기자단 : 그런데 북한이탈주민을 진료하는 과정에서 문화 상 차이점 같은 다양한 이유로 마찰이 생기거나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송 선생님 :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의 진료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가끔 충돌이 생겨요.

북한에서 오랫동안 ‘모두에게 한 개씩 동등한 양을 주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에 온 거니까, 각 질환에 알맞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가령 약을 줄 때도 “왜 저 사람은 주고 나는 안 주냐?”라는 식으로 따지는 경우가 있어요.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면 나아지겠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이 아직은 (우리 의료 시스템에)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갖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걸 느낍니다.

 

 

 

 

상생기자단과 인터뷰 중이신 송보근 선생님

 

 

 

  송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소아청소년과의 오무영 교수님을 만나 귀중한 말씀 몇 마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세가 있으신데도 여전히 직접 현장에서 진료를 하신다는 오 교수님은 그린닥터스 진료위원장을 맡고 계시다고 해요. 오 교수님은 방학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해외봉사를 다니는 등 꾸준하게 봉사를 베풀어오셨다고 하는데요, 그 영향인지 오 교수님의 아들인 오경석 씨도 약사가 된 이후로 아버지와 함께 매주 주말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해요. (혹시 아버지의 강제(?) 때문에 주말마다 봉사하러 나오는 건 아니냐고 살짝 물어봤더니,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ㅎㅎ)

  오경석 씨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지만, 남들에게는 어느 것보다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훈남 부자(父子)! 오무영 교수님과 오경석 씨였어요 ㅎㅎ

 

 

 

  오 선생님 : 북한이탈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대체로 낮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에서 익힌 기술이 한국에서 활용할 만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능력이 떨어진다고 고용주들이 보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서 취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회보조금을 주는 등 정부에서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국가 보조금으로는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밖에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없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가 의료 문제입니다. 의료 문제는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집을 갖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돈이 없으면 허름한 집에서 살고 싼 옷을 입으면 되지만, 아픈 건 생명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입니다. 생활비가 없고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가 되니, 외국인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의료 소외 계층’이 되어 버립니다.

  북한이탈주민, 외국인 노동자 모두 같은 한 사회의 일원입니다. 그들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반드시 시간과 돈이 넘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이런 봉사와 베풂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 역시 서로 함께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게 자원봉사자들의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남을 돕는 데 필요성을 느끼고 베풂의 기쁨을 알았으면 합니다.

 

 

 

 

오무영 교수님의 귀중한 말씀 들을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어요.

 

 

 

 

  진료소가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인사를 드리고서 밖으로 나왔더니 어느새 하늘이 꽤나 어둑어둑해져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TV 프로그램, 편안한 휴식, 친구들과의 만남을 다 놓쳤지만 마음만큼은 뿌듯했어요.

  아무리 정부로부터 지원과 보조가 나온다고는 해도 아직 도움이 필요한 북한이탈주민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이탈주민이 살면서 어떤 사소한 경우에 곤란함을 겪는지, 어떤 사소한 것들을 원하는지를 알고서 진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주위의 이웃 한 명 한 명일 겁니다.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도 기꺼이 나누려는 작은 손길들이 있어서 이 겨울이 조금은 더 따뜻한 것 같습니다.

 

 

취재. 김경보 기자 (mirinari@naver.com)

김지애 기자 (jiae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