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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신앙공동체, 장대현교회에 가다

 

 

 

 

 

  여기 문을 연 지 2년 남짓, 신도 수가 채 60명이 되지 않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교회들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교회의 특별한 점은 바로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곳은 단순히 예배를 보는 교회만이 아니라, 북한이탈주민들이 모여 서로 삶의 애환을 나누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부산 다대포 바닷가에 위치한 장대현교회입니다. 이처럼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교회가 수도권에는 몇 군데 있지만, 지방에서는 장대현교회가 최초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겨울날, 장대현교회를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신도 분들은 아무도 계시지 않고 썰렁하더라구요. 북한이탈주민으로서 장대현교회에서 직접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민수(가명) 씨가 기자를 맞아주셨습니다. 민수 씨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교리를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민수 씨는 장대현교회가 마침 새 보금자리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한창 단장하는 중이라고 하며 기자에게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셨습니다. 아직 가구나 기기가 다 갖추어진 상태는 아니었지만, 교회는 무척 소박하고 단정한 곳이었습니다.

 

 

 

 

 

 

 

 

 

(단장을 다 마치고 나서 이제 곧 신도들을 맞이할 예배당.)

 

 

 

  냉장고, 김치냉장고 등의 가구는 외부에서 기부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가구뿐만 아니라 김치 50포기를 보내주거나 차량을 제공하는 등 도움의 손길이 많아서 늘 감사하다고 합니다. 이웃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배당의 아래층에는 북한이탈주민교육센터가 있습니다. 교회와 연결된 이곳에는 식당, 놀이방 등이 있습니다. 그동안 교양 교육을 받으려면 문화센터 같은 곳으로 이리저리 다녀야 했는데, 앞으로는 강사 분들을 이곳으로 초청하여 북한이탈주민들이 편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곳입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와서 편하게 교양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북한이탈주민들로부터 북한 문화를 접하거나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꾸려진다고 합니다.

 

 

 

 

 

(예배당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전까지 임시 예배당으로 쓰이고 있는 식당.)

 

 

 

  이쯤에서 생기는 의문점! “장대현교회라는 이름이 무슨 뜻일까? 혹시 목사님 성함이 ‘장대현’인가?” 하고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100여 년 전 평양에 자리하고 있던 북한 최초의 장로교회가 바로 ‘장대현교회’라고 합니다. 1894년 마펫 선교사에 의해 평양 장대재에 세워진 ‘장대현교회’는 신도 수가 2000명 가량 되어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장로회였다고 합니다. 특히 민족지도자들 중에서도 ‘장대현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장대현교회’는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교회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렇듯 북한이탈주민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장대현교회’의 이름을 따서 장대현교회가 지어졌다고 하네요.

  당시 평양에서 ‘장대현교회’와 숭실학당은 울타리를 하나 두고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서울에만 전문학교가 집중되어 있는 탓에 이북에도 대학을 짓자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장대현교회’에서 4300원을 모아 기부했고(당시 쌀 한 가마니가 1원이었대요.) 그 돈으로 숭실학당에 대학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안 고종 황제가 숭실대학의 휘호를 직접 내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숭실대학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 같은 ‘장대현교회’와 숭실대학교 간의 인연이 이어져, 지난 6월에는 부산 장대현교회와 숭실대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전국에 ‘장대현교회’의 이름을 단 교회는 많지만,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만든 장대현교회가 진짜 ‘장대현교회’”이기 때문이래요.

  옛날 평양에 ‘장대현교회’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김일성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다시 장대현교회를 세우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라고 해요.

 

 

  교회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민수 씨와 짧은 인터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으로서 신앙 활동을 하시는 민수 씨와 직접 인터뷰를 하게 되니,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고 새삼 느끼게 된 것도 많았어요.

 

 

Q. 북한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들었다. 그러면 장대현교회를 찾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기독교도인 북한이탈주민들은 어떻게 기독교를 믿게 되는가?

 

A. 기독교를 믿는 북한이탈주민의 50% 정도는 한국에 온 이후 기독교를 접하고 전도를 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40% 정도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 등지에서 살 때 기독교를 처음 접하는데, 신변 위협 때문에 직접 교회에 나가지는 못하다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신앙 활동을 시작한다.

  일반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은 죽을 고비를 적어도 3, 4번은 넘긴다. 국경을 넘을 때, 중국에서 살 때, 제3국으로 갈 때, 한국으로 들어올 때 등 북한이탈주민들은 몇 번이고 목숨을 걸어야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이렇게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난 북한이탈주민들은 마음이 이지러질 대로 이지러져 있다. 교도소에 갔다 온 사람의 마음과 비슷할 거다. 철조망을 기어서 위태롭게 국경을 넘어야 했던 어린 아이들까지도 너무나 상처가 많다. 이처럼 상처가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신앙을 가지고 교리를 배우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이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장대현교회와 같이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교회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사실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가령 사람들끼리 모여서 커피를 마신다든가 식후에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다든가 하는 사소한 것도 잘 모르는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결국엔 같은 교회 안에서도 남한 사람들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고, 모멸감까지 느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에 잘 나가지 않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 멀어지니까 교회를 멀리하는 꼴이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신앙 활동을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향이 같고 또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신앙 활동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그냥 종교를 믿으며 예배드리는 것 이상으로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공동체를 손수 꾸리고자, 교회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 가령 식사 준비 같은 건 교회 자금으로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직접 자비를 모아 준비하고는 한다. 솜씨 좋은 부인들이 종종 북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기도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이 위안이 된다.

 

 

Q. 마지막으로 남한에서의 생활을 다소 어려워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을 텐데, 상생기자단을 통해 통일부에 바라거나 건의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A. 우선 연령대에 맞는 복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도 남한 사람들보다 열심히 살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40대 중반 이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취직이 잘 안 되어서 막노동을 하는 등 대부분 힘들게 살고 있다. 가뜩이나 청년들도 한국에서 취업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술이 없는 북한이탈주민들은 더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특히 독거노인들의 생활이 무척 어렵다. 생계를 꾸리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혼자 사시다보니 무척 외로워하신다. 이런 분들이 무척 안타깝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연령대에 따르는 적절한 일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다음으로 하나원에서 하는 북한이탈주민 교육이 개선되었으면 한다. 특히 사기 등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북한이탈주민들은 하나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맨몸으로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아무래도 잘 알지 못하니까 대출 사기, 보험사기 등등 사기 당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더 불신과 분노에 가득 차게 된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참고할 수 있도록 하나원에서 교육을 좀 더 상세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소박하고 아담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쉼터 장대현교회를 둘러보았습니다. 단지 기독교인, 북한이탈주민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지역 주민들과 북한 동포들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장대현교회가 그 옛날 평양의 ‘장대현교회’와 같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0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 사진 : 김지애 기자(jiae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