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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제 5기 남북경협 실무아카데미 ③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개성공단 사업까지!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8기 김은아, 정은영입니다.

지난 2개의 기사에 이어, 이번 기사에서는 '아천글로벌' 육재희 대표가 강의한 남북경협의 실제 추진 사례를 생생히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육재희 대표는 금강산, 개성공단 사업, 그리고 내륙경협 사업에서 실질적인 실무를 담당했었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생동감 넘치게 얘기해주셨습니다. 자, 그럼 남북경협의 살아 있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출바알~!

1. 금강산 관광사업 

 

  육재희 대표는 금강산 관광 사업은 우선 정주영 회장의 강한 의지와 뜻을 기반으로 시작하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1989년 방북 이후 의정서를 체결하여 경제를 우선적으로 협력해나가야 한다는 강한 뚝심이 있었던 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약 9년간 의정서는 빛을 보지 못했고, 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다시금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햇볕정책이라는 대북정책과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지요. 실제로, 1998년 6월 무려 1001마리의 소떼가 방북하며, 유람선에 의한 금강산 관광 합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육대표는 당시 입산료를 1인당 300불 정도 지불했다고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왜 1001마리일까요? 육대표에 따르면 당시 정주영 회장이 소 1000마리라는 엄청난 숫자의 의미 뿐만 아니라, 1000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01로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어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소를 보내는 것에도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고, 진심을 담아 작은 의미라도 전하려던 모습에 저희 기자단 역시 감동받았습니다.

  또한 관광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사업방식이나 사업구도, 주요쟁점 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언급했는데요. 사업방식의 경우, 합영에서 우리나라 현대 아산에 의한 독자경영으로, 구도의 경우, 입산료 지급에서 개발 사업권 확보 및 대가 지급의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북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이끌어가면서 육대표는 남북 사이의 인식의 차이가 엄존하고 있으며 상대방을 배려하며 이해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개발', '독점', '소유'에 관한 용어의 해석 차이는 남북이 기본적으로 다른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해결방법을 모색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금강산 관광은 해상관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육로관광을 실시하였고, 관광대가 지급의 조정을 통해 흑자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의 성과와 의의는 다양하지만, 그 중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우선 10년간 무려 195만 명의 인적 교류와 물적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점, 정상회담, 군장성급회담, 군사보장서 등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점, 고성군 1,980억 경제이득, 2천여 명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했다는 점 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15회 상봉, 회담, 대학생 캠프, 신계사 복원 등 만남과 평화의 장이 열렸다는 점도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사업은 아직까지 중단되어 있는 상태이며, 따라서 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이루기까지의 수많은 사람들의 성실한 노력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통한 위와 같은 의의와 성과를 느낄 수 있었던 만큼, 하루 빨리 재개되어 금강산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다시 기대해보게 되었습니다. 

 

2. 개성공단 

육재희 대표님 강연 모습 2

                      

  개성공단은 금강산 관광 사업이 시행되고 나서 1999년 10월 본격 제안 이후 원칙적 합의를 이루었다고 하셨는데요. 이후, 후보지를 선정하고 경제특구법을 협상하여 인프라 건설을 위한 당국 간 협력을 만들어 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현대의 3회 연속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의 접견을 통해 개성공단을 결정, 합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습니다.

 2000년 8월 22일 현대와 아태위원회간 합의서를 체결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첫째로 (개성 2천 만평 개발->8천 만평 확대-> 신의주, 통천에도 공단 개발)에 대해 합의했고, 남북간 철도, 도로, 통신 연결과 개성관광 실시에 대해서 입을 모았습니다. 그 이후, 법제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월 급여 50불, 연간 5% 이내 노임인상 법규정 명시, 각종 인허가 행정, 세금혜택 등 조건에 대해 협의했습니다.

  이후 2004년 12월 15일 개성공단의 첫 제품이 생산되었으며, 2010년 기준 100만평 개발하여 약 40만평 정도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육대표는 개성공단의 국제 경쟁력을 비교하는 표(동아일보, 현대경제연구원, IBK경제연구소 조사)를 보여주시며 개성공단의 가치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했는데요. 개성공단은 무관세라는 혜택과 더불어, 월 120~130달러의 저임금으로 약 80%의 노동생산성을 가지고 낮은 이직률을 보여 국제경쟁력 측면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는 베트남 탄뚜언 공단이 관세 8~13%로, 월 200~300달러의 임금으로 개성공단의 약 1.5배이며, 노동생산성이 50%에 머무르는 것과 비교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을 통한 성과와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유지의 안전판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 군사적 대립의 완충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상생의 남북경협 모델을 만들었으며 남북경제공동체의 실험장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남측 기업 경쟁력 제고, 북의 경제회생 기반, 시장경제/계획경제 현장학습, 한반도의 동북아 물류허브 구축의 단초 등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셋째, 상호 이질감 해소와 민족공동체 형성에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사회문화적 의의도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통일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육재희 대표님 강연 모습 4

 

  마지막으로, 육대표는 남북경협사업의 가치와 활성화 방안에 대해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대화와 개방의 단초이며 남북경제의 신 성장 동력으로서 통일 준비를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 할 수 있는 남북경협사업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언급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정경분리를 위한 움직임과 5.24 조치 해제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은 남북경협 사업의 뿌리 깊은 역사라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에 실제로 몸 담았던 육재희 대표의 강연을 통해 남북경협 사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 남북경협아카데미를 수강하신 다양한 분들 중에는 남북경협 사업을 실제로 해보고 싶으신 분들도 더러 계셔 남북경협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남북경협 실무아카데미 마지막 4번째 기사도 곧 업로드 할 예정이니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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