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외교의 특성과 역사적 흐름을 들여다보는 기획기사 세 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기사에서는 냉전기 북한 외교의 네 번째(전 세계로 외교지평의 확대), 다섯 번째 특징(마. 자주, 친선, 평화와 대외개방 모색)과 탈냉전기(1989년부터) 부터 유훈통치기(1994.7-1998.9)까지의 북한 외교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본격적으로 김정일 시대 북한의 외교적 특성을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 북한의 외교 특성과 전망을 해보겠습니다.
4. 김정일 정권의 외교정책 (1998.9 - 2012.2)
가. 국가목표와 수단 : 강성대국론과 선군정치
북한은 1998년 '강성대국'이라는 정치구호를 내세웠는데 이는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구현하여 우리나라의 국력을 정치와 군사, 경제와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최강의 경지에 올려 세우기 위한 거창한 애국애족의 위업"이라고 북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곧 김정일의 선군정치라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1999년의 GDP가 1989년 GDP의 75%에 지나지 않아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강성대국'은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하며 선군정치 역시 체제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따라 외교정책의 방향은 경제지원 획득과 체제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목표를 띄게 되었습니다.
나. 김정일 정권의 외교정책: 전방위적‧입체적 외교의 전개와 좌절
김정일 정권이 출범하고부터 북한은 더욱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가속화되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비롯해 더 폭넓게 서방과 아시아를 포함한 나라들로 외교의 범위를 넓혀나갔습니다. 먼저 대남정책을 살펴보고 그 의의를 도출해보겠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이후에도 북한은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하여는 호응하지 않은 채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통한 경제지원 획득에 주력하였습니다. 또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정일의 지도력을 과시하고 대남차원에서는 민족공조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여건 마련과 경제지원을 도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2005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3대 공조론'을 제시하고 2006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자주통일, 반전평화, 민족대단합의 '3대애국운동'을 내걸었습니다. 민족공조론의 실체는 6.15 선언의 공동실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 배제 및 한.미 동맹 와해, 남한으로부터의 경제지원 획득 및 대공체제 와해를 도모하는 전략입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이라는 남북관계의 세 분야가 불균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핵문제를 우리끼리 해결하기는커녕 미국만을 상대하고 있고, 남북간 정치, 군사분야의 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여전히 진정한 남북화해, 협력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대미 정책으로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1999년 현장조사가 실시됨으로써 마무리 됐고 미사일 발사 문제 또한 협의를 통하여 타결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이 다소 완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부시정부 출범 이후에 시행된 강경책으로 양국 간의 사이는 다시 반감되었습니다. 또한 2001년 9.11테러를 경험한 미국은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며 깊은 불신을 나타내었습니다. 또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에 대해 북한은 '조미사이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시하면서 긴장상태를 고조시켰습니다. 대일 관계로서는 1999년 9월 미사일발사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되었고 2002년엔 최초의 정상회담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납북 일본인과 관련한 일본의 재조사 요구를 반박하였고 대일 비난의 강도를 높임으로써 대일관계 개선의 전진을 미루었습니다. 대중 관계는 2000년 5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여 장쩌민 주석과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이는 북한외교에서 중국이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로써 한중수교로 인한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완전히 복원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핵무기 개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양국의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2005년 10월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 2006년 1월에는 김정일의 방중 등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대러 정책으로는 2000년 2월에 '조러 친선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조인함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롭게 발전시켰습니다. 2000년 7월에는 '조‧러 공동선언'을 발표하여 2001년 7월에는 '조‧러 모스크바선언'을 발표하였고 이후에도 각종 협정을 체결하여 협력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하고 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동참하는 등 국제사회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김정일 정권는 강성대국 건설을 내걸고 출범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심각한 경제상황에 처하였습니다. 따라서 핵심 목표와 대외정책의 초점은 체제유지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은 대미 외교에 초점을 두면서도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평가되며 이에 따라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긴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유럽연합 및 아시아, 중동지역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하였습니다. 미국의 강경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북-중-러시아 간 '3각 공조' 적극 모색하였으며 유럽연합과 미국의 갈등가능성에 주목하여 유럽연합과의 관계강화를 통해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대응하는 균형전략을 구사하기도 하였습니다.
5. 김정은 정권 북한외교의 전망
기본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외교 전략은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김정은이 김일성의 외교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20여 년간 미국에 초점을 맞춘 ‘단극체제 패러다임’에서 미국과 중국, 제3세계를 두루 포괄하는 ‘다극체제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에 대항할만한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 북한의 바로 옆에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제 북한이 미국에 올인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김일성이 제 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친 것처럼 김정은은 이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등거리 외교를 펼칠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제 북한이 더 이상 국제적인 동정과 연민을 사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거의 모든 나라로부터의 비난,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핵개발에 대한 비난 등은 북한의 벼랑 끝 외교전술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오바마 대통령 또한 같은 말을 세 번 사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내부의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적 불안과 요동의 조짐은 김정은 정권이 더 이상 과거의 외교전략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관계 정상화 요구, 중국과의 혈맹의 지위 강화, 제3세계로의 재진출 등을 통하여 다극적인 외교 전략체제를 마련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국제질서의 새로운 변화의 조짐 속에서 분명한 것은 김정일의 생존전략이었던 ‘대미중심의 선군외교정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북한 외교의 특성을 살펴보았고 그 역사적 흐름에 대해 3편의 기획 기사로 연재하였습니다. 첫째로 북한외교의 특수성을, 둘째로 냉전기 (1945년-1988년)시대의 북한외교 특징을, 셋째로 탈냉전기(1989년부터)부터 유훈통치기(1994.7-1998.9)의 특징을, 넷째로 김정일 정권의 외교정책 (1998.9 - 2012.2)을, 다섯째로 김정은 정권 북한외교의 전망북한외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사로 북한외교에 관한 이해가 보다 넓어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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