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북한식 정책지도법, 현지지도의 정치학

다음은 북한의 관영통신인 조선중앙통신의 한 장면입니다!

△조선중앙통신 리춘히 아나운서/출처: KBS 1TV, 남북의 창, 2015년 4월 18일 방영분

 

  화면 속에서 독특한 목소리와 억양으로 소식을 전해주는 북한의 아나운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매일같이 보도되는 소식은‘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어디를 다녀와서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인데요. 이는 북한정치에서 현지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현지지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 명의 지도자가 현지지도를 어떻게 활용해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현지지도가 뭔가요?

 

△제580부대 안변양어장을 시찰하는 김정은/출처: 노컷뉴스


  현지지도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군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기관, 학교 등 현장에 직접 찾아가 벌이는 정책지도 방식을 말합니다. 현지지도는 오직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한해 사용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원래 현지지도라는 말은 김일성의 정책지도 활동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었고, 김정일의 활동은 실무지도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다가 김정일 후계구도가 확정되고,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며 1988년 4월부터 김정일의 지도에도 현지지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은은 2012년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며 바로 현지지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지도는 철저한 계획을 통해 이뤄집니다. 한 해 동안의 현지지도 일정은 매해 연말,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최고지도자의 의견을 듣고 대상지역과 내용 등 계획을 작성합니다. 제출된 계획안은 당 정치국의 비준을 받아 최종 확정됩니다. 이후에는 중앙당에서 파견된 지도원들이 현지지도를 나갈 지역에 대해 면밀한 검열을 실시하고, 조직지도부와 호위총국은 최고지도자의 밀착경호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 주민들은 사전작업에 투입되어 최고지도자의 방문을 준비합니다.

 

 

△김정은, 룡문술공장 현지지도/출처: 연합뉴스


 자, 드디어 최고지도자의 방문이 이루어지고 모두 모여 사진도 팡! 찍었어요. 그럼 끝일까요?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최고지도자는 현지지도를 하며 여러 지시를 남겼습니다. 이런 지시를 집행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도 집회, 집중학습 같은 후속 행사가 계속됩니다. 국가 혹은 해당 도(道)는 지시사항을 수행하기 위해 공업자재와 일상 생활품, 제대군인을 중심으로 한 노동력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최근 경제난으로 대부분의 국가지원은 노동력을 동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거대한 공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에서 인력을 차출해 돌격대를 조직해 투입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 등에서는 생산일정에 차질을 끌어안게 된다고 합니다.

 

◆ 현지지도는 어떻게 변화해 왔나요? 

  북한은 세습으로 권력을 승계한 세 명의 최고지도자에 의해 통치돼왔습니다. 현지지도 스타일도 최고지도자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성격을 바꾸어왔습니다.

 

△김일성 현지지도/KBS 1TV, 남북의 창, 2015년 3월 21일 방영분

 

① 김일성, ‘나의 집무실은 관저가 아니라 전국의 공장, 농촌, 어촌, 군부대이다.’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통해 친근한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김일성이 권좌에 있었던 49년간 8650일, 2만6백여 차례에 이르는 현지지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김일성은 방문한 기관 혹은 지역의 주민들과 마주앉아 현지의 실정을 파악하고, 담당자들과 함께 문제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항일유격대식 방법을 변형, 채용한 방식입니다.

 

△김정일 현지지도/출처: KBS 1TV, 남북의 창, 2015년 3월 21일 방영분

 

② 김정일, ‘경제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후 유훈통치와 선군정치를 기치로 내세웠습니다. 그에 따라 당연히 군부대에 대한 현지지도가 증가했습니다. 군사부문에 대한 현지지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현지지도는 경제부문에 이루어졌습니다. 김일성보다 많은 지역을 방문하며 활발한 현지지도 활동을 했죠. 하지만 철저한 계획 하에 소수의 주민과만 접촉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김정은 현지지도/출처: KBS 1TV, 남북의 창, 2015년 3월 21일 방영분

 

③ 김정은,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의 새로운 전성기’ 

  김정은 역시 현지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주장한 뒤에도 경제 분야의 현지지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경공업 사업장, 농축산 및 어업 등 민생과 관련한 현지지도가 증가했고, 불시에 현지지도에 나서기도 하며 기강을 잡고자 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민들과 악수, 팔짱, 포옹 등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하며, 고아원을 방문해서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등 자상한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인인 리설주와도 동행해 부족한 연륜을 지우고 따뜻하고 안정적인 이미지 구축을 시도하고 있으며, 지식경제시대임을 강조해 IT 산업과 공장현대화에도 관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 왜 현지지도를 하는 건가요? 

  현지지도는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최고지도자 입장에서도 밀착경호를 받으면서까지 나서는 번거로움이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북한은 왜 대를 이어 굳이 현지지도를 고집하고 있는 걸까요? 

① 최고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수단

현지지도라는 용어 자체는 최고지도자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단어 자체를 신성하게 만듦으로써 최고지도자와 그의 지시를 우상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부분이지요.  

② 대중들의 열성을 이끌어내는 방법

최고지도자는 직접 현장에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고, 노동자들을 격려합니다. 즉 현지지도는 현장의 실태와 민심을 파악하며, 주민들의 근로의욕을 증진시키고 자상하고 세심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③ 후계구도 확립

김일성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낙점하며 그를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게 했습니다. 김정일 역시 김정은을 현지지도에 자주 데리고 다녔습니다. 이는 현지지도가 후계자에게 명분을 쌓을 기회라는 것을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 현지지도를 통해 어떤 것을 알 수 있나요? 

  현지지도는 최고지도자의 의향을 반영해 분야와 장소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현지지도 동향을 살펴보면 최근 북한 최고지도자의 관심이 어디를 향해있는지, 국가운영에 어떤 구상을 가지고 어떤 철학으로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현지지도를 할 때 동행하는 수행원이 누구인지, 호명되는 순서는 어떤지, 누가 얼마나 많이 동행했는지 같은 사실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북한정치에서 누가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부각되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조선노동당 비서국 비서간의 서열 싸움,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부상도 현지지도 수행횟수를 통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에게 현지지도는……

  현지지도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즉흥적인 지시가 남발하고, 해당 지시는 하부 기관을 통해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이로 인한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김일성은 현지지도에 나서 농지확대를 위해 산간지역에 밭을 조성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지시가 집행된 결과, 북한의 산지는 황폐화되고, 홍수피해는 커져 농작물 수확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비현실적이고 해당 현장의 실정에 맞지 않는 지시는 주민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고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또한 현지지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동원해 각종 부담과 생계의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최고지도자가 현지지도를 나갈 지역의 주민들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현지지도 사전작업에 투입되는데요. 길게는 1년을 통틀어 이루어진다는 사전작업을 위해 주민들은 생계를 뒤로하고 노동에 동원됩니다. 심지어는 부족한 자재를 모으기에 나서기도 합니다. 사전작업에 참여하지 않을 시에는 벌금이 있기 때문에 모든 주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동원에 참가한다고 해요. 

  북한 특유의 정책지도 방식인 현지지도! 중앙집권적이고 독선적인 통치방식의 결과 발생하는 비효율과 고통은 모두 주민들이 감수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북한에서도 보다 민주적이고 주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치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참고자료

 
북한 지식사전, 통일교육원 교육개발과, 2013.
KBS 1TV, 남북의 창, 2015년 3월 21일 방영분 일부
홍민 (2002), 북한의 현지지도와 경제 운영 —계획경제와 “교시경제”의 변주곡—, 한국정치연구회 <정치비평> 9권 0호, 173-201
유호열 (1994), 김일성 「현지지도」연구 — 1980-90년대를 중심으로, 統一硏究論叢 第3卷 第1號, 199-229
이교덕 (2002), 김정일 현지지도의 특성,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02-09, 1-106
유영구 (2013), 올해 상반기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경제 현지지도의 특징은? — 전국 현지지도하며 '지식경제시대' 강조 모범단위 창출과 지방경제 활성화에 초점, 민족21 2013년 9월호 (통권 제150호), 86-105
 

여러분의 공감 하나가 통일부기자단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글 내용에 공감하셨다면, 공감을 꾸욱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