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통일부 제 7기 대학생 기자단 이태호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시간의 여유가 나실 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하지만 그 의미와 감동은 가득한 도서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내 아들의 사랑이 남편을 죽였다」(차란희, 푸른향기, 2012) 라는 책인데요. 평양시에서 태어나 누구보다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한 남편의 아내이자 또한 한 아들의 어머니였던 저자가 해외에서 경험했던 처절한 비극과 아픔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림과 동시에 북한이라는 국가의 현 실태를 알려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출간된 이 책은 북한 사회의 모순과 병폐 그리고 숨겨진 아픔을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 매우 유익할 것이 분명합니다.
▲ 내 아들의 사랑이 남편을 죽였다 (출처:네이버북)
책의 서문은 펴낸이가 자신을 '북조선공민'이라 칭하는 어떤 여성으로부터의 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탈북자가 아닌 순수한 북한인과 접촉한 그녀는 처음에는 말투 및 언어에서 비롯된 차이로 인한 이질과 괴리감을 느꼈지만, 한 여성의 슬픈 사연을 책으로 출판해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받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간적인 동질성과 감명을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순서대로 나열 및 서술하는 구성이 아닌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주변인물 소개와 같은 과거와 현재를 불규칙적으로 오가는 형태의 목차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자칫 읽는 이의 몰입도를 흩트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한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저자의 혼란스러운 마음상태를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자신과 다른 북한인들이 생각하는 현 북한의 실태를 위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식에 대해 자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았습니다. 가령 평양 및 다른 지방의 여성들에게 쌍꺼풀 수술과 같은 성형이 생각보다 보편화되어있다든지, 각종 통제와 억압 속에서 사는 그들 역시 뒤에서는 누구보다 북한 체제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공공연히 술자리에서 체제 및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비방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 등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 북한의 시가 행진 모습 (출처:The Telegraph)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차란희는 어린 시절부터 평양시에서 거주하며 고등교육까지 받은 북한 중산층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그녀의 남편 강혁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나와 남파공작원으로서 훈련받았던 엘리트 출신으로 당시 평양상점에서 근무하던 주인공을 만나 결혼하여 평양에 신혼살림을 차립니다. 그들은 곧 아들 남길을 낳고 출신 성분과 당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크라이나의 공관으로 재외 파견 근무를 가게 됩니다. 이후 벨로루시 등 해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북한의 ITF(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태권도를 보급하는 임무를 맡은 그녀의 남편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통상적인 기간보다 더 오래 해외에 체류하며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 청천 벽력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2010년 10월 18일, 그녀의 아들 남길이 외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부모를 버리고 도피를 감행한 것입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재외에 파견 중인 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탈북을 시도할 경우 가족 전체가 그 책임을 지고 엄중한 벌을 받기에 그녀와 남편은 고심 끝에 자신들 역시 도망자 신세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해외에서 태권도 사범으로서 탄탄한 입지와 명성을 쌓은 남편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을 잡기 위해 파견된 북한인들의 맹렬한 추적을 피해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닐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편 강혁이 도피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고 주인공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은 아들 남길이 찾아오고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지만 결국 아들과 그가 사랑하는 나타샤를 받아들입니다. 남편이 가르쳤던 제자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다행히도 우크라이나 국가기관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되지만 한순간에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은 그녀는 절망하고 결국 자신이 겪었던 일을 모두 써서 책으로서 출판하기로 결심합니다.
나는 꿈에서조차 조국을 버리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변명해도 조국을 버린 사람이 될 터였다. 조국은 내 남편을 버렸고 나를 버렸고 내 아들을 버렸다. 이제 그곳엔 죽음, 혹은 죽음보다 못한 삶만이 있을 뿐이다. 나 하나라면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단지 북조선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부모를 따라 재외에 나와 북조선민으로서는 절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결코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에게 희망 없는 미래를 살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설사 조국이 우리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은 아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나는 자식을 이길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내 남편을 죽였다 해도 나는 자식을 죽일 수 없었다. 나는 내 아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을, 그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고 싶었다. 새끼를 살리기 위해, 새끼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 그 것이 어미라는 걸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나를 낳은 어미의 새끼였다. 이 나라의 국적을 얻기 위해 조국을 버린 나는 내 어미를 사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내 아들의 사랑이 남편을 죽였다」, 375p 중에서
어쩔 수 없는 60년간의 언어 괴리에 의해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로서의 모성애, 아내로서의 남편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한 북한인으로서 자신의 조국을 바라볼 때의 아쉬움과 환멸의 공존을 독특한 문체로 담아냈기에 4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을 읽으면서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지니는 가치는, 단지 한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일상적인 북한의 모습은 단순히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결국에는 그들 역시 괴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의 가족과 사랑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절판된 상태여서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공립 도서관 및 각 대학 도서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지랑이가 슬슬 기지개를 피는 봄날입니다. 이 책과 함께 잠깐의 휴식을 즐기며 여유를 취하시는 건 어떨까요? 이상 통일부 제 7기 대학생 기자단 이태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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