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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통일을 기다리는 우리 문화재의 수호자. '일본의 간송' 정조문 선생 이야기

 안녕하십니까. 제 7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이태호입니다. 지난번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오구라 다케노스케에 의해 약탈당했던 여러 문화재들에 대하여 여러분께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이와 반대되는 사례를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해방 조국 그리고 통일 조국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들을 수집하여 되찾았던 한 재일 교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바로, 조국 내에서 문화재를 수집하여 미술관을 설립했던 간송 전형필 선생과 더불어 '예천의 간송' 혹은 '일본의 간송'이라 불리우는 고(故) 정조문 선생입니다. 


▲ 고(故) 정조문 선생 (출처:불교신문)


 3.1 운동이 발생하기 1년 전인 1918년, 경상북도 예천군 우망리에서 출생한 정조문 선생은 6살이 되던 해 집안의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재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갖은 핍박을 받으며 고생하던 중, 정조문 선생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는 결국 부두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 신세가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파친코 장사에 뛰어든 그는 사업의 성공으로 큰돈을 벌게 됩니다. 


 6.25 전쟁이 종전되고 2년 뒤인 1955년, 정조문 선생은 문득 '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항상 무시하면서도 조선의 도자기에는 사족을 못쓰며 동경하는가.'라는 의문에 빠지게 되고, 이후 어느 날 교토의 고미술품 거리를 걷던 중 한 도자기를 보고 매료되어 주인에게 도자기의 종류를 묻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은 이를 '조선의 백자'라 소개하며 매우 가치 있고 소중한 물건이라고 칭찬합니다. 조선 백자의 미술적인 우수성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은 정조문 선생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50만엔을 주고 망설임없이 그 도자기를 구매하게 되는데, 이 날의 사건은 그가 문화재 수집 활동을 수행하게 되는 결정적 시발점이 됩니다.  


 이후 30여 년간, 정조문 선생은 그간 사업을 통해 모은 재산으로 옛 조선의 도자기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도자기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친 그림, 민속품, 불상과 같은 다른 여러 문화재들도 역시 다양하게 수집하게 됩니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는 총 1천 700여점에 달하며, 수집한 도자기 중 100여점은 명품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귀중한 문화재에 속합니다. 1988년 그는 교토의 한 외곽 지역에 미술관을 설립하고 그 이름을 '고려미술관'이라 하였으며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 모두를 그 곳에 전시합니다. 이 문화재들은 모두 일본 현지에서 수집한 문화재이며 박물관을 설립한 사람이 우리 동포라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문화재만을 전시한 유일한 해외 소재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 역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1969년 '조선문화사'라는 기관을 설립하여 ≪일본에 남은 조선문화≫라는 계간지를 발행하여 재일교포 및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데 힘썼으며 1972년 재일 사학자들과 제휴하여 일본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한반도와 관련한 유적을 탐방하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 정조문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나는 재일조선인이다' (출처:불교닷컴)

 

 6살 때 고향을 떠나 일본에 정착한 이후로 죽는 그 순간까지 고국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그는 언제나 통일 조국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8년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네,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남한도 북한도 내 조국이고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슬픔을 견디면서 재일조선인으로 살면서 이곳 교토에서 눈을 감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눈을 감을 곳은 고려미술관이라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내용출처: 불교신문)

▲ 다큐멘터리 '정조문의 항아리' 시사회 포스터 (출처:오사카 한국문화원)

 

 그리고 이듬해 2월 그는 아들에게 "남북통일이 되면 유물들을 내 조국에 기증하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둡니다. 

 그 후 25년이 흐른 지난 2014년 11월, 경북 예천군은 정조문 선생을 기리며 '고(故) 정조문 선생 문화재 사진전시회 및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50여점의 문화재 사진을 게시하여 그의 업적을 널리 알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또한 '나는 재일조선인이다'와 더불어 정조문 선생의 일생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정조문의 항아리'가 제작되어 오사카 한국문화원 주최로 2월 21일 시사회가 열릴 예정이기도 합니다.     

 고(故) 정조문 선생이 온 힘을 다해 우리의 문화재를 수집하는데 그 열정을 쏟아 부었던 것은 어쩌면 해방된 조국,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통일된 조국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이상 제 7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이태호였습니다. 

△  정조문 선생 이야기를 유니TV의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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