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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북한 특권층 자제들을 가르쳤던 "평양의 영어 선생님" 이야기

안녕하세요,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임혜민입니다. 여러분은 종종 영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한국에 온 외국인 강사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영어권 국가 거주자가 직접 입국하여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물론 한국처럼 자유롭고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수키 김 씨도 2011년 북한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하 평양과기대)에 방문하여 6개월 동안 대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고 하네요. 평양의 영어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돌아와 북한의 현실을 밝힌 수키 김 씨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볼까요?


■ 수키 김은 어떤 사람?

수키 김 씨는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간 재미 교포입니다. 마침 그녀의 부모님이 이산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성장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작가가 된 김 씨는 2003년 ‘통역사(The Interpreter)’를 발표하여 민족 다양성을 훌륭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김씨는 ‘경계를 넘어선 펜 문학상(PEN Beyond Margins Award)’과 ‘구스타프 마이어스 우수도서상(Gustavus Myers Outstanding Book Award)’을 받았다고 하네요.


#임혜민(출처:KBS 뉴스) #임혜민(출처:KBS 뉴스)

그녀는 2002년 미국 뉴욕필하모닉의 방북 공연을 취재하기 위하여 북한을 방문한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방북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11년 7월, 그녀는 평양과기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겠다며 북한에 갔습니다. 외국인 교수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사립대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지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 이외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북한의 실상을 취재하는 것이었지요.

북한에 대한 정보는 여기저기서 얻을 수 있지만, 북한의 실상이 어떠한지는 세세히 알기 힘듭니다. 북한은 외부인에게는 연출된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아무리 여러 번 방북하더라도 단기간 방문하는 경우에는 북한에 의해 알려지는 일부 모습만 볼 수 있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수키 김 씨는 작가로서 북한 사회 속에서 통제된 학생들의 인간적인 단면,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 등을 알고 싶었던 것니다.

여기서 잠깐, 평양과학기술대란?

북한 당국이 제공한 평양 인근의 100만 ㎡ 부지 위에 남북이 공동으로 설립한 대학교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측 사회의 국제화 및 북한 경제의 자립을 도모하고 국제 학술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대학 설립의 목적이다. 

2001년 3월 북한 교육성이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에 설립을 인가해주었다. 이는 1992년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중국 옌볜[延邊]에 중국 최초의 외국인 설립 대학인 옌볜과학기술대학(Yanbian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YUST)을 세워 중국의 100대 대학으로 성장시킨 경험을 북한이 높이 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1년 6월 우리나라 통일부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인가하였다. 2007년 디지털캠퍼스 구축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졌다. 2008년 대학 건물 17개동의 건축을 완성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대학원 과정의 학교로 추진되어 정보통신공학대학원, 산업경영대학원, 농업식품공학대학원 등 3개의 과정이 설치되었다. 2009년 9월 16일 평양과학기술대학교 개교식이 거행되었다. 국내외 인사 200여 명이 개교식에 참석하였다.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 총장이 공동운영총장으로 임명되었다. 2010년 10월 25일, 평양과학기술대가 학부 100명, 대학원 60명으로 개교하였다. 

평양과학기술대학은 북측의 교육청에서 추천한 학생들을 선발한다. 대학의 최대 수용 인원은 학부생 2,000명, 대학원생 600명이다. 2008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평양과학기술대학교와 상호협력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이로써 남북 철도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 4개국에서 파견된 30여 명의 교수 및 직원들이 북측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르치고 있다. 평양과학기술대학은 남북화해와 선진화에 큰 일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학이다.

-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대학, 굿모닝미디어


당국에서 그녀에게 요구한 금기사항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김정일이 미국의 상징이라며 싫어했던 '청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외부와 북한에 대한 비교, 정치적 논의는 모두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임혜민▲ 재미교포 작가 수키 김 씨(출처:주간동아)

그녀는 북한에 있는 6개월 동안 수시로 소지품을 검사받았습니다. 강의에서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도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이었지요.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변이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하여 USB 메모리 3개에 담아왔다고 합니다.

김 씨는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2014년 10월 ‘Without You, There Is No Us(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을 미국에서 출판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평양의 영어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 그녀가 들려주는 북한, 그리고 제자 이야기

#임혜민(출처:KBS 뉴스) #임혜민(출처:KBS 뉴스)

평양과기대는 2011년 ‘주체100년’을 맞아 모든 대학이 문을 닫고 대학생들이 공사현장에 동원되었을 때에도 쉬지 않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는 특권층 자제들이 다닌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층 자제들도 통제된 환경에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단체 구보를 하고, 밤에는 군복을 입고 보초를 서며, 휴대전화 이용, 가족과의 면회는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자유가 제한된 학생들의 삶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김 씨의 제자들은 과학기술을 배우는 과기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제대로 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일부 사이트가 연결된 인트라넷(Intranet)을 인터넷이라 믿고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런 제자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외부 세계를 알려주고 싶어서 일부러 ‘맥북’을 들고 강의에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학생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학교와 당국의 감시 하에 있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할 경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북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학생들에게 해리포터 영화를 보여준 날의 일화를 소개하였습니다. 간신히 허락을 얻어서 해리포터 영화를 보여준 다음에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는데, 그 때 마침 김정일 사망 뉴스가 나왔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커다란 슬픔에 빠져 초점 잃은 눈으로 김 씨를 당황케 하였습니다.

김 씨는 북한 주민들은 통일과 같은 민감한 소재를 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이러한 논의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통일을 원한다면 말만 하지 말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수키 김 씨의 외삼촌은 한국전쟁 당시 열일곱 살의 나이로 북한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곁에서 보고 느꼈기에, 그녀는 전쟁을 겪은 세대의 상실감을 안다고 합니다. 그녀는 통일을 반드시 해야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통일을 원하지만 내 세대에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모순된 태도를 가진 점은 비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같은 민족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또한 김 씨는 한국에서 북한 인권은 정치 논쟁의 도구로만 희생되는 것 같다며, 북한 인권과 같은 민족의 현실을 직면해야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에서 건강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김 씨는 오는 3월에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진행되는 ‘테드(TED)'에서 북한을 주제로 공개 강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책을 통하여 북한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제고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알림으로써 북한 사회가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그녀의 활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그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미래의 꿈 독자 여러분도 북한에 대하여 조금 더 알고자 하고 귀를 기울인다면 남북문제를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계신 여러분은 이미 그 움직임을 시작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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