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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그리고 북한의 가톨릭교회

  

지난 8월 18일, 로마 가톨릭의 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4일에 시작한 4박 5일 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교황의 방한은 264대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과 1989년의 2차례 방한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4박 5일의 일정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통령 예방을 비롯해 한국 가톨릭의 성지인 솔뫼 성지와 서소문 성지를 방문하였고,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 미사를 광화문에서 집전하는 등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계기로 재조명 받은 한국 가톨릭교회

이러한 교황의 3번째 방한은 한국 사회에 많은 의미를 남겼습니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을 방문함으로써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을 대표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였으며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침체되고 가라앉은 한국 사회에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또한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노력해야함을 강조하고 청년들의 행동과 사회 참여를 독려하였습니다. 또한 교황의 평소 검소하고 낮은 자세와 행보가 방한 일정 동안 각광받으며 대한민국에 이른바 '교황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파급력이 컸습니다. 이로 인해 이번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가톨릭교회가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가톨릭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요?

 1784년 이승훈이 처음 세례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등장한 가톨릭교회는 조선 시대 후기와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해방 이후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대한민국과 북한의 가톨릭교회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은 한국 가톨릭교회는 교세를 꾸준히 확장하여 오늘날(2013년 기준) 신도수가 545만 명에 육박하며 김수환 추기경(1968년 임명)과 정진석 추기경(2006년 임명)에 이어 2014년 2월, 세 번째 염수정 추기경을 배출해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가톨릭교회는 분단 이후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현 북한 가톨릭교회의 실정은 어떠할까요? 지금부터 북한의 가톨릭교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프란치스코▲로마 카톨릭의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일정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 5일 간의 방한 일정

 

   분단 이후, 북한 가톨릭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그렇다면 우선 북한 가톨릭교회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 북한 지도부는 유일영도체계 확립을 위해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몰아 종교를 탄압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톨릭교회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1970년대 초 남북 적십자 회담과 7.4남북 공동성명을 통해 남북대화의 문이 열리자 유명무실했던 종교단체를 부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이래로 북한 정권 당국은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한 정책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여, 1983년에는 휴전 이후 처음으로 복음서가 북한에서 출간되었고 1988년 평양에서는 개신교 교회당과 천주교 성당이 한국 전쟁 이후 처음으로 세워졌습니다. 북한의 유일한 천주교 단체인 '조선천주교인협의회'는 1988년 6월 출범하게 됩니다. '조선천주교인협의회'는 1999년 '조선가톨릭협회'로 개명하여 평양의 장충 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충성당▲북한 유일의 성당, '장충성당'

                                

   지속적 교류를 해온 북한 가톨릭교회와 한국 가톨릭교회

북한 가톨릭교회와 한국 가톨릭교회는 1980년대 이후 비교적 꾸준히 교류를 지속해왔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1984년 북한 선교 위원회를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1984년부터 외국 국적을 소지한 한국계 성직자들의 방북이 허용되면서 미주 지역에서 교민 사목을 담당하던 성직자들이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북한 내의 가톨릭 신자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1989년에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은 불발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때를 전후로 하여 남북한의 가톨릭 신자들은 해외에서나마 간헐적인 교류를 지속해나갔습니다. 1998년 5월에 이르러서는 서울대 교구 최창무 주교 일행이 사목적(*교회에서 사목이란 양을 치는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보살핀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해 장충 성당에서 북한의 가톨릭 신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남북한 가톨릭교회 사이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교류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1980년 말 동구권의 붕괴와 1991년 소련 붕괴로 외부의 경제적 지원이 거의 끊겼고 1990년대 중반 대홍수와 냉해 등이 겹치면서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해 북한 돕기 모금운동을 진행하였고, 모금액 60억 원으로 식량과 비료를 구입하여 지원하였습니다. 지금도 한국 가톨릭교회는 북한을 향하여 인도주의적 차원의 관심을 끊임없이 기울이고 있으며 탈북이탈주민을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대가대병원▲북한 측에 의료장비를 기증하는 대가대병원  민족화해위원회▲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 北에 지원한 중국산 밀가루

 

   북한 가톨릭교회와 신자들 

지난 5월 21일 염수정 추기경이 추기경으로써는 최초로 방북하면서 북한 가톨릭교회의 재건과 북한 내의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현재 북한에는 정확히 집계할 수는 없지만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는 한국 전쟁 이전에 영세를 받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새롭게 영세를 받으며 입교한 신자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는 성직자나 수도자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가톨릭교회에는 오직 평신도만이 존재하며 7성사가 모두 집전되고 교계 제도를 갖춘 완벽한 교회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한 유일의 장충 성당에서는 매주 일요일 미사가 집전되는데, 로마 교황청의 파견을 받은 성직자가 전무한 실정이라 신자 대표 2명이 번갈아가며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지방은 ‘함흥교구’와 ‘덕원 자치 수도원구’ 그리고 ‘평양교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춘천교구장인 김운회 주교가 함흥교구를,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평양교구를, 왜관수도원장인 박현동 아빠스가 덕원 자치 수도원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카톨릭 교구남북한의 카톨릭 교구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향후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개적인 종교 활동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북한 당국이 교황의 방북을 허용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또한 북한 가톨릭교회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열약하기 때문에 북한 가톨릭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종교를 믿지만 남북이 분단된 현실 아래 교류와 접촉도 제한된 상태에서 마음껏 신앙 활동을 하지 못하는 북녘의 가톨릭 신자들과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손을 맞잡고 미사를 집전하는 날이 언제쯤 올까요? 평양의 장충 성당에서 교황의 네 번째 방한 기념 미사가 열리고 서울의 명동 성당에서 북한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날이 빠른 시일 내에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7기 최대규 기자였습니다.


[사진출처 : 1, 2, 3, 4, 5,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