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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한반도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남·북 도예가들을 만나다

 남·북 도예가


  세계 도자기 경매가 842만 달러 '조선백자철화운용문호'

 1996년, 뉴욕의 한 경매장에서 대한민국 깜짝 놀라게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백자철화운용문호가 당시 가격으로 약 842 달러(한화 약 90억 원)에 낙찰된 것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백자는 '높은 가격'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자는 고려청자와 비교했을때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기인 조선시대에 발달했고, 서민적인 그릇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값싼' 이미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백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경매는 조선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중국의 원나라 시대 도자기가 갖고 있던 경매 최고가(500만 달러)를 경신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갖습니다. 우리의 도예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백자철화운용문호▲백자철화운용문호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렇지만 한반도의 도예는 일제시대와 6.25사변을 거치며 전통문화와 단절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휴전 후에 우리는 전통도예의 복원부터 차근차근 다시 그 기틀을 쌓아 올려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조건 속에서, 남북으로 분단된 지금의 한반도의 도자기는 어떻게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을까요? 


  질 좋은 점토·고령토로 만드는 북한의 경성도자기

 북한에 도자기로 유명한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함경북도에 위치한 경성(鏡城)입니다. 함경도의 (), 바로 경성(鏡城) ()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경성 역시 대한민국의 이천이나 여주처럼, 토양이 도자기를 만들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이곳의 도자기가 유명합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경성도자기'라는 고유 명칭을 따로 가질 정도로 차별화되어 있습. 특히 이 곳에 위치한 경성도자기공장은 여러차례 국가주석 표창장을 수상할 정도로 유서가 깊습니다. 게다가 경성 지역에는 경성도자기 단과대학이 있어, 도예 기술과 또 그에 필요한 전기 기술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전문가들을 양성하여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성도자기공장 이외에 북한의 대표적인 도자기 공장으로는 선천도자기공장, 오봉도자기공장, 문덕도자기공장이 있습니다.


경성도자기▲경성도자기공장 / 출처 평화문제연구소


   도예문화의 대가 2인. 고려청자 거장 故임사준 선생과 도자기의 황제 故우치선 선생

 북한의 도자기에 대해 이야기할때 빼 놓을 수 없는 도예가로는 임사준 선생과 우치선 선생을 들 수 있습니다. 임사준 선생과 우치선 선생은 최초로 고려청자를 재현하여 전세계에 그 우수성 알린, 고려청자 제작의 양대 산맥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들은 둘 다 북한의 최고 훈장인 김일성상의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임사준 선생은 1921년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남포시에 있는 도자기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휴전 이후 그는 창작활동을 재개하는 동시에 학업을 병행해 평양미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후 1961년까지 평양미술대학에서 교원으로도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도 애썼습니다. 80년대에는 일본의 전시회에 본인의 작품들을 출품하여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우치선 선생은 1919년 평양시에서 태어나 13살부터 공장에서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30대 중반에 고려청자를 복원할 생각을 하였고, 60년대부터 본격적인 고려청자 복원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또한 그는 임사준 선생과 마찬가지로 80년대에 일본에서 고려 청자를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전시회, '현대고려청자명작전'에서 우치선 선생은 "한때 우리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려 했던 일본이 고려청자에 대한 존경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고 조선민족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청자와 백자의 예술적 가치를 깨닫고 제조 기술을 현대까지 이어오도록 하기 위해 남북한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노력해왔다. 북한에서 활동한 대표적 작가는 우치선과 임사준이다.  (중략)  우치선의 작품은 전통을 복원해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도자기 위에 문양을 그리고 장식을 하는 기법과 함께 전체적인 스타일 면에서도 전통 고려청자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이를 재현해내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비해 임사준은 청자를 어떻게 현대화시킬 것인가에 자신의 작업을 집중했다.

- 박계리 / 임사준, 고려청자에 시대감성을 불어넣다(2014)


임사준▲임사준( 1921 ~ 2007) / 출처 평화문제연구소잉어무늬꽃병▲임사준 '잉어무늬꽃병' / 출처 평화문제연구소우치선▲우치선( 1919 ~ 2003) / 출처 평화문제연구소국화장식꽃병▲우치선 '국화장식꽃병' / 출처 평화문제연구소


  한반도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가는 도예가 '이채은'씨를 만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도자기는 어떻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우치선 선생의 죽마고우로 알려진 황종구(전 이화여대 교수) 선생과 그의 여동생인 황종례 선생을 비롯한 전통 도예가들과, 대한민국 도예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수많은 신세대 도예가들이 '도자기 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전통 도예만을 고집하는 것이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때문에 우리 도예의 모습은 현대로 오면서 산업도자기의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현재 도예계의 최전선에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서울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도예가 이채은 씨를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우선, 자기소개를 해주신다면?

A. 잠실(서울)에서 도자기 공방을 운영 중인 이채은입니다. 도자기를 시작한지는 7~8년 정도 되었고, 조금 더 공부를 하고자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Q. 도자기를 전공하신만큼, 해외 도자기와 우리나라 도자기의 차이점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거 같은데?

A. 전통도자 쪽에서 보면 중국 일본 등의 도자기는 페인팅, 성형, 장식에 중점을 두는 편인데,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물성(흙이 지닌 성질 본연의 특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산업도자와 조형 분야가 발달하면서 국내 도자기에도 페인팅이나 성형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Q. 사실 ‘도예’가 일반적인 다수 대중에게 큰 관심을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런 대중에게 도자기에 대한 정보나 지식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A.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페어’입니다. 그 밖에 전시회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고, ‘월간 도예’라는 잡지도 있는데요. 서점에서 손쉽게 접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혹시 북한의 도자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A. 비록 도자기를 전공했고, 공부해왔지만 아쉽게도 북한의 도자기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Q. 도예가로서 ‘통일이 되면 이런 일을 해보고싶다’하는 부분이 있다면?

A. 통일이 되면 저는 비무장지대였던 곳에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손수 만드는 조형물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Q. 끝으로 ‘통일 미래의 꿈’ 독자분들께 한말씀 해주신다면?

A. 사실 찾아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쉽게 공방을 접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매니아층만 방문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또 겁내지 마시고 하루 체험이라도 좋으니까 인근 공방을 방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예가 이채은▲이채은 선생님과 작품들


 도예가 이채은 씨와의 대화에서처럼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단적인 예로, 도자기로 유명한 이천에서는 매년 도자기 축제가 열려 도예가들이 작품을 직접 판매하기도 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그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수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구한 우리의 도예문화에 대해 우리가 조금은 냉소적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반도를 어떤이는 이제 서로 다른 나라라고 말합니다. 비록 이 땅은 이념에 의해서 분단되었지만, 우리의 토양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의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도자기가 증거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이천과 경성의 도자기가 나란히 서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번 주말에는 연인 혹은 좋은 사람들과 공방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제7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김태양, 경수현이었습니다.


[참고문헌]

- 북한의 공예(2006) / 장경희

- "우치선 선생, 남북 청자로 분단의 한 씻읍시다"(2002) / 민족21

- [박계리의 스케치北(28)] 임사준, 고려청자에 시대감성을 불어넣다(2014) / 박계리

- 특별기획-북한문화예술인물(6) - 만수대창작사 도예가 임사준(1997) / 전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