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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기네스북으로 본 남북한 (1)

 기네스북은 우주의 모든 사물과 현상에 관한 세계의 최고기록을 모은 책으로, 수천 항목이 넘는 기네스 기록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이 뛰는 개, 가장 작은 자동차, 가장 최고로 긴 다리, 가장 악수를 많이 한 사람 등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기록들이 많은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네스 기록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정동진역, 싸이의 서울시청 공연에서 10만 명 단체 말춤,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 100명의 판소리 사철가 떼창 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한편, 세계 기네스북에는 등재되지 않은 비공식 기록이지만, 북한과 관련된 독특한 기록도 많은데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남북한, 혹은 북한과 관련된 기네스북 기록과 비공식 기록들을 소개해드리고자 '기네스북으로 본 남북한'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한국전쟁과 이산가족찾기 방송에 관한 기네스 기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기네스북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를 한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

 여러분,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노래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50년 12월, 바로 이 노래에 등장하는 흥남부두에서 펼쳐진 흥남철수작전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흥남철수작전이란?

 한국전쟁 당시, 1950년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국군은 북한 공산군에 대한 추격을 하며, 동년 10월 한·말 국경선까지 북진하였습니다. 하지만 11월 중공군이 참전하며 전명 공세를 감행하자, 국군과 유엔군의 각 부대들은 후퇴하게 되었는데요. 국군 제3사단이 부산으로 떠난 후, 남은 미군과 국군 수도사단은 흥남에 집결하여 미 제10군단의 지휘 아래 철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산군과 중공군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가운데, 흥남 둘레에 3중 방어선을 설치하며 흥남에서 가까스로 철수작전을 성공했습니다. 세계 전쟁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진 흥남철수작전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10만여 병력과 장비, 물자를 이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9만여 명에 이르는 북한 피난민들을 구출하였습니다. 

 공업 시설의 발달로 현대화된 부두시설을 갖춘 흥남에 수많은 피난민이 모이면서, 흥남은 아비규환의 상태였습니다. 흥남철수작전을 위해 유엔군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아호가 동원되었지만, 정원이 60명인 배에 선원 47명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피난민을 13명밖에 태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 육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의 민사고문인 한국인 의사 현봉학씨가 피난민들을 모두 태워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고, 이에 레너드 라루 선장은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립니다.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있는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들을 최대한 태우라고 명했고, 그 결과 정원이 60명인 배에 1만4천명이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피난민들 역시 짐을 모두 버리고 탔기 때문에 음식과 물, 약 등이 부족했지만, 선원들은 옷을 벗어 여성과 아이들에게 덮어주었습니다. 한편, 흥남을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가 항해하는 중,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답니다. 피난민들을 모두 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8시간 동안 항해해서 12월 24일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부산항에 이미 피난민이 가득 찼다는 이유로 입항을 거절당한 레너드 라루 선장은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거제도 장승포항까지 가서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피난민들을 무사히 피난시켰습니다. 적이 계속 공격해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출항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 한 명의 인명피해 없이 거제도에 도착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기적,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피난민 구출 사건입니다. 


▲ 메러디스 빅토리호 (출처: 연합뉴스)   ▲ 레너드 라루 선장(왼쪽), 항해사 로버트 러니 (출처: 뉴시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전쟁 후 한국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이 배의 모든 선원들은 1958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과 1950년 미국 정부의 '용감한 선박' 표창과 '상선단 공훈 메달'을 받았습니다. 한편, 2001년 레너드 라우 선장의 장례 미사에 우연히 참석하게 된 재미동포 기업가 안재철씨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야기를 다룬 '생명의 항해'라는 책을 펴냈으며, 이 배의 일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러니와 함께 기네스 기록 등재를 신청했습니다. 그 결과,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004년 9월 기네스에 단일 선박으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를 한 배'로 기록되었습니다.


 "나는 쌍안경으로 비참한 광경을 봤다. 피난민들은 이거나 지거나 끌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항구로 몰려들었고, 그들 옆에 닭과 겁에 질린 아이들이 있었다.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by. 레너드 라루 선장

 "철수 당시의 진정한 영웅은 선원이라기보다 죽음의 극한 공포속에서 굳건한 용기와 신념을 보여준 피난민이었다." 

by. 항해사 로버트 러니

 이처럼 피난민들을 안전하게 구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철수작전 후 베트남전에 투입되기도 했으며, 1993년 고철로 분해되었습니다. 비록 수많은 생명을 구출한 이 배는 사라졌지만, 많은 피난민들을 살리기 위해 인도주의적이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선장과 선원들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또한 단 한 명의 인명피해 없이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항해할 수 있도록 뒤에서 적으로부터 방어하다 숨진 미군 3명을 포함하여, 피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한 국군과 유엔군의 넋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메러디스 빅토리호 모형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날씨 좋은 요즘, 이곳을 찾아 우리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내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어떨까요?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전쟁, 한국전쟁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약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많은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남북한 모두 전쟁으로 인해 건물, 도로, 공업시설 등의 물적 피해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북 인명 손실은 520여 명에 달하며, 이산가족의 아픔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말 두 번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비극인데요. 많은 아픔을 낳은 한국전쟁이 세계 기네스 기록도 낳았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은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전쟁'이라고 2010년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되었습니다. 미국과 영국, 터키 등 전 세계 67개국이 북한·중국·소련 공산주의 무력도발에 맞서 참전했는데요, 67개국에는 유엔 파병 16개국과 의무 지원 5개국, 물자 지원 40개국, 전후 복구사업 지원 6개국이 포함됩니다.  


▲ 기네스 증서 (출처: 월드피스 자유연합)       ▲ 참전 67개국 (출처: 월드피스 자유연합)


 작년 2013년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 및 정전 60주년이 되는 날로, 국내외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렸습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서울 용산에 소재한 전쟁기념관에서 각국의 참전용사를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하는 기념식을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쉽게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국군뿐만 아니라, 전 세계 67개국의 많은 참전용사들이 힘을 모아 지켜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산가족찾기 방송과 관련된 기네스북

쉬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생방송, 이산가족찾기 방송

 최근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이산가족 상봉, 남북 고위급 회담 등을 계기로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이번 2월에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18번째 상봉인데요, 첫번째 이산가족 상봉은 언제였을까요? 첫 상봉은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이란 이름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남북 이산가족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 2년 전인 1983년 6월 30일, KBS 한국방송에서 이산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라는 타이틀로 밤 10시 15분부터 시작된 이 생방송은 이튿날 새벽 1시까지 방영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국에 방문한 사람들의 행렬과 문의전화가 끝없이 이어지자 KBS는 모든 정규 프로그램 편성을 취소하고, 5일 동안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단일 생방송을 진행하였습니다. 정부의 협조 아래 방송국이 이산가족 만남을 주선하고 이를 생방송으로 방영했는데요. 5일 간 5만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방송국을 방문했으며, 그 중 500여 명의 이산가족이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78%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 (출처: 머니위크)


 이후에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생방송으로 상시편성되었습니다. 6월 30일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동년 11월 14일까지 이어졌는데요, 총 138일 간,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되었습니다. 이는 단일 주제 생방송 중 최장 시간 기록을 남겼으며, 세계 기네스 기록에 등재되었습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이산가족을 찾는 신청은 총 10만 952건이 접수되었으며, 그 중 1만 180여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습니다. 생방송 중에는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으며, 이산가족 찾기 접수를 하러 방송국을 찾았다가 공개홀에서 극적으로 가족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방송의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하는 데 신청되기도 했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단일 주제 생방송 최장 시간 기록으로 기네스에 등재되었지만, 이는 정말 안타까운 한반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속한 시일 내 19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나아가 이산가족 분들이 정례화된 상봉행사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왕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담은 영상입니다.(http://tvpot.daum.net/v/2228759?lu=flvPlayer_out) 이분들의 눈물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시급히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네스북으로 본 남북한' 1편에서는 한국전쟁과 이산가족찾기 방송에 관한 기네스 기록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기네스 기록'하면, 마냥 흥미롭고 재밌는 기록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피난민들도 이산가족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의 기록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고민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고 있는 이 땅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얻은 결과물이라는 것과, 이산가족 분들의 아픔을 닦아드리기 위해 우리 모두 힘써야 한다는 것을요. 이번 편에서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지만, 다음 편에서는 북한의 신기한 기네스 기록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쟁과 이산가족처럼 가슴 아픈 타이틀로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고, 어서 빨리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담은 기네스 기록이 등재되기를 바랍니다. 이상 6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 한솔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