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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데니스 로드먼, 농구, 그리고 통일?

  농구 팬이라면 90년대 NBA의 시카고 불스를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꼽을 것입니다. 시카고 불스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농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이 있더라도 그를 받쳐준 스카티 피펜과 데니스 로드먼 같은 뛰어난 동료들이 없었다면 시카고 불스는 역사에 남을 강팀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시카고 불스 3인방 중 한 명인 코트위의 악동 데니스 로드이 은퇴 후에는 평화 전도사를 자처하며 농구팀을 이끌고 세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출처 : http://file2.nocutnews.co.kr/newsroom/image/2013/09/07/20130907080945939382.jpg)


  로드은 지난 2월 26일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로드은 김정은과 함께 NBA 묘기 농구단인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와 북한 팀의 농구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이후 9월 3일에는 두 번째로 방북하여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당초 언론에서는 로드의 방북이 억류되어있는 케네스 배의 석방을 위한 것 아니냐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드은 7일 홀로 중국 베이징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로드의 뜬금없는 방북에 미국 외교가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농구를 통한 로드과 김정은의 공감대가 한반도의 평화를 불러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북 농구 교류

 

(출처 : http://postfiles3.naver.net/20130502_242/komsy_1367423751503rkYCT_JPEG/22222222.jpg?type=w3)


  그동안 농구는 남북 스포츠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1999년에 처음으로 ‘남북통일농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첫 대회는 1999년 9월 평양에서 열렸고, 2차 대회는 12월에 서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화제는 단연 북한의 리명훈 선수였습니다. 키가 235㎝에 달하는 리명훈은 서울의 2차대회 둘째 날 28득점 20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이와 같은 남북 스포츠 교류는 남북 화해무드에 탄력을 주면서 이후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맞붙은 남북 농구 대표팀 (출처 : http://i2.media.daumcdn.net/photo-media/201011/20/yonhap/20101120112705916.jpg)


  국제무대에서의 남북 농구대결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있었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농구대표팀은 리명훈을 앞세워 일본을 꺾고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한편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대표팀은 8년 만에 만났습니다. 이 경기에서 남한 대표팀이 96-66으로 30점차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남북 스포츠 교류는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2003년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 때 남북 농구 교류전이 마지막으로 열렸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남북통일농구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농구연맹(KBL)의 한선교 총재는 남북 농구 교류를 위해 통일부로부터 사전접촉허가서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당초 KBL은 이 대회를 8월 중으로 계획했지만, 남북 긴장으로 인해 이미 그 시기는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번 로드의 두 번째 방북과 최근 남북 간의 스포츠 교류가 물꼬를 트고 있는 분위기와 함께 9월 이후에라도 성사될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핑퐁외교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왼쪽)과 리란칭 전 중국 수석부총리(오른쪽)의 탁구 대결 모습 (출처 : http://www.chinadaily.com.cn/opinion/images/attachement/jpg/site1/20081230/00221917e13e0ac3aa0f39.jpg)

 

  스포츠 외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과 중국 간의 핑퐁외교입니다. 1971년 4월 10일에 미국 탁구 선수단이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을 처음 공식 방문한 미국인이었습니다. 양국 선수단의 탁구 경기를 시작으로 1972년 2월 21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함께 중국을 방문합니다. 그 이전까지 미국과 중국은 서로 적성국가로서 아무런 외교관계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핑퐁외교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가장 큰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과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의 정치적 표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스포츠는 그동안 정치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스포츠가 남북관계를 더욱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mejunate@nate.com

구희상




[참고자료]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09/03/20130903004893.html?OutUrl=naver

http://osen.mt.co.kr/article/G1109600829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608452

http://media.daum.net/politics/north/newsview?newsid=20130907152005122

http://news1.kr/articles/1262670

http://sports.mk.co.kr/view.php?no=397870&year=2013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762949

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1&newsid=01079126593167688&DCD=A2040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8804&cid=505&categoryId=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