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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톡톡바가지

정전협정을 지켜주세요



지난달 3월 북한은 정전협정 파기라는 강수로 언제든 남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며 동시에 한미방위조약이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전쟁에서 승리한 날로 기념하는 북한의 전승절과 달리 우리는 정전협정을 냉전의 잔재나 단순히 전쟁이 정지된 상태를 의미하는 날로 생각하기 쉽다.

 

일각에서는 정전협정을 두고 평화협정으로 서둘러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도 정전협정평화협정으로 바꾸길 희망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거 20091월에는 북한이 외무성 발표를 통해 이제부터 핵 문제는 평화협정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구체적인 속뜻을 떠나 북한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길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 일각에서도 코리아 리스크’, ‘코리아 디스카운트’, ‘핵 위협등 계속되는 한반도의 불안요소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남과 북 모두 평화협정이 가져다 줄 평화를 희망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로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평화협정을 남과 북은 왜 아직 맺지 못하고 있는가?

 

우선 정전협정이 불안하고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라는 정의와 

평화협정이 무조건적인 평화와 안전을 보장한다는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다.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평화협정이 체결된 바가 없던 유럽, 그리고 일본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있었던 동아시아 중 어디가 더 평화로워 보이는지 봐도 평화협정이 무조건적인 평화와 안정된 상황의 필수 불가결의 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1974년 미국이 베트남과 서둘러 맺은 평화협정을 볼 수 있다. 미국에 의한 세계 평화라는 팍스 아메리카로 불리던 미국에게 패배의 상처를 준 베트남 전쟁은 미국으로서 빨리 매듭을 질 필요가 있었다. 미국과 평화협정 이후 베트남 공상화에는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로 대표되는 대량학살과 1979년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개시한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인한 참상이 뒤따라야 했다.


미국의 비호를 받는 남베트남과 치른 제2차 전쟁으로 구분되며 제2차 전쟁부터 라오스와 캄보디아까지 전장이 되어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정전협정평화협정으로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평화계약서에 서명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 예멘의 통일 과정에서 북예멘과 남예멘은 통일에 앞서 먼저 공통된 역사 교과서를 만들고 그런 다음에 국가 연합 단계로 이행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일예멘은 서로의 인식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긴 내전을 겪어야 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한국전쟁을 민족을 계급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하면서 전쟁을 "남한 괴뢰정부와 미군이 일으켰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전협정''평화협정'으로 바꾼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평화를 위해 긴 평화를 포기하는 임시방편의 불과하다.

 

정전협정평화협정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전쟁이 야기된 원인과 누구에 의해 일어났는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과거 1919년 베르사유 평화조약처럼 전쟁 책임을 평화협정에 전쟁의 책임을 명시하고 가혹한 배상과 지도부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남과 북이 과거의 오를 인정해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때 앞으로 서로 추구하는 평화가 같은 평화라는 신뢰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는 해, 북한은 정전협정 파기라는 일방적 주장을 하루빨리 되 담아야 한다. ‘정전협정은 더 이상 냉전의 잔재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평화. ‘정전협정이 가져다 준 기간은 남북 간의 이질화를 야기한 악몽의 시간이 아니라 전쟁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역사 속 전쟁은 평화를 덜 사랑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평화를 더 사랑해서 발생했다는 주장처럼 갑작스런 평화는 인면수심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