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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로 가는 길

용미론(用美論)을 통한 평화적 통일방법 모색

용미론(用美論)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한자 그대로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활용해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도모한다”라는 주장입니다. 용미(用美)라는 단어는 동아시아 연구원 하영선 이사장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는 1980년대 친외세(親外勢), 반외세(反外勢), 친미(親美), 반미(反美)와 같은 논쟁으로 시끄러울 때, 제 3의 길로 용미(用美)를 언급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용미론(用美論)과 평화적 통일의 관계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통일에서의 용미(用美)

독일통일을 승인하는 5개국(프랑스, 동독, 서독, 영국, 미국, 소련) 대표들

1970년대 중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창설과 1980년대 말 소련의 고르바초프 (M.Gorbachyov)의 개혁, 개방정책은 유럽 동구권 국가에서 소련을 의식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독에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됩니다. 통일을 추진해 오던 서독의 콜(H.Kohl) 수상의 손에 독일통일이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소련과 영국, 프랑스의 승인을 얻어내야 했습니다. 여기서 미국의 활약이 두드러집니다. 

우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통일함으로써 후에 더 부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부시(H.W Bush) 전 대통령은 “나는 독일 통일문제에 대해 몇몇 유럽국가들이 가지는 견해에 동의 할 수 없다.”고 언급함으로써 콜(H.Kohl) 전 총리가 통일 정책을 펴가는데 힘을 실어줍니다. 소련은 독일통일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지만 동독이 NATO에 흡수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미국은 소련의 마음을 돌리는데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습니다. 1989년 12월 19일 쉐바르드나제(E.Shevardnadze) 소련 외무장관을 NATO 사령부로 초청하여 화해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1990년 6월 더블린에서 개최된 EC 정상회담에서 EC 집행위원회로 하여금 대(對) 소련 원조계획안을 수립하도록 결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에 결국, 소련은 통일 독일이 NATO에서 탈퇴하지 않되, 동독 지역에 NATO 군이 주둔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합의합니다. 

서독이 이와 같이 용미(用美)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서독이 미국과 동맹을 맺은 친미 국가이기도 했으며, 미국의 입장에서 독일통일은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국가의 조화가 독일통일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통해 본 용미(用美)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미론(用美論)을 펼친 대표적인 남한의 지도자입니다. 용미(用美)를 한다고 하면, 친미(親美)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음 일화를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저 친미(親美) 성향이 아닌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격히 반미 감정이 확산된 일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하여 미국은 제 3세계의 민주화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으며, 전두환 독재체제를 용인한 미국에게 광주의 비극적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미(反美)는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자세가 아님을 분명히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동북아의 군사적 대립을 막고 평화유지에 건설적인 기여를 하도록 미국을 활용해야 한다는 용미론(用美論)를 펼치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존재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였고, 이에 김 위원장도 수긍했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이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동북아 세력균형추로 확대하며 남북한 관계 개선에 한 발 더 다가갔습니다. 그가 일부 반발 속에서도 햇볕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대미정책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는 외교적으로 미국과의 마찰을 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미(用美)는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을 더 넓히는데 기여합니다. 


한반도를 둘러 싼 국가들과 남한의 과제

6자회담 당시, 6개국 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출처: 조선일보 "핵포기 검증 언제 어떻게… 넘어야할 산 많다"05.09.20)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독일통일에 있어서 서독에게 독일통일과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의 동의를 얻어내서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남북 통일에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은 어떤 국가들일까요? ‘6자 회담’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바로 남북한통일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과 당사국들 간의 회담을 말하는 것인데요, 여기서 남한과 북한을 제외한 4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남북한통일에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입니다. 그 중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에 각각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련국들과 공조 강화 및 한, 미, 중의 3자 전략 대화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통일로 다가가기 위해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노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현재는 상생의 세계이며, 이는 통일에서도 '오직 우리의 힘 만으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통일외교를 통해 주변국들의 다자간 협조를 이끌어내어 원만하고 현명하게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게 중요합니다. 북한의 체제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중국과 북한을 달래면서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협력, 특히나 패권국가인 미국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정권의 주인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과의 동맹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게 아닌, 지혜로운 용미(用美)를 사용하여 평화적인 남북한통일의 길을 더 넓혀주길 바라봅니다. 


  • CSCE(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1975년 결성된 유럽안보협의체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 제 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과 군사적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체결한 북대서양조약의 수행기구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EC(European Community): 유럽공동체, 1994년 1월 1일부터 유럽연합(EU)로 공식명칭을 바꾸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하영선 '21세기 한미관계 어떻게 볼것인가?(2005)'

평화연구소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2011)’  

김한정 ‘1980년대 멘티가 21세기 멘티에게 전하는 보고서 (1) 김대중의 글로벌 리더십(2012)’

김두언 '김대중을 생각한다 <18>-DJ가 정치적 거목인 이유(2011)'

<사진 출처>

http://www.dw.de/how-geopolitics-paved-the-way-to-german-reunification/a-5984936

http://hooney.net/2005/06/16/117/

http://koreanchinese.tistory.com/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