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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2013년 이후 남북문화교류 전망과 과제

함박눈이 내렸던 12월 5일 수요일, 최수지 기자는 취재차 눈 덮인 경복궁에 다녀왔습니다.

『2013년 이후 남북문화교류 전망과 과제』를 보기 위해서였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하여 공개 형식으로 열린 세미나였습니다.

주제는 남북문화교류 협력 사업의 진단 및 발전 방향, 그리고 2013년 이후 남북관계 및 남북문화교류를 전망으로, 각 분야별 전문가의 발표와 토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남북 문화교류협력 사업은 남북한 간 화해 협력 분위기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국민의 정부 및 참여정부 등 과거 정권에서 정치 군사적 긴장 완화 분위기 형성에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초기 교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으로 인해 많은 폐해가 나타났고, 문화예술 교류 사업이 민족화합 차원의 순수한 교류 사업이 아니라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의 하나로 이용당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남북한 간 문화예술교류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 민족문화공동체로의 통합을 촉진하는 역할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특히 경제 분야와는 달리 문화예술교류가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인 상황에 몹시 민감하게 영향을 받은 결과, 지속적이고도 장기적인 교류․협력의 추진에 많은 장애가 있었다."

- 오양열(한국문화관광연구원 초빙석좌연구원)

 

Q. 남북 문화교류·협력 사업 발전 방향은 어떠할까요?

"문화교류협력 활성화를 방안 해결과제는 우선 ‘남북문화교류협력추진위원회’ 구성「문화협정」 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사회문화 교류․협력 관련법의 제정 및 문화교류 협력 기능의 전담조직 설립 또한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화협정」이란 무엇일까요?

 

문화협정은 1986년 5월 과거 동서독 분단 시절 체결된 협정으로, 동서독간의 교류를 예술분야뿐 아니라 학술, 대중문화분야까지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동서독 정부 대표는 22개 프로젝트에 대해 협의를 계속하여 구속력 있는 규정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동서독간 문화협정은 상호 이질감을 해소하고 향후 통일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협정을 북한 상황에도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가 흥미로웠는데요.

다만 아쉬운 것은 2001년 3월 문화부장관의 방북 회담에서 문화협정 체결의 앞선 단계로서 '문화 분야 교류 합의서'를 체결하였고 문화부장관회담 정례화를 합의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당시 부시 미국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인해 모든 논의가 백지화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다수의 노력과 정성에 의해 합의가 체결되었으나, 정치 상황에 의해 합의들이 이행되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략적 차원의 문화교류정책 추진의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연구원은 그 방안의 하나로 북한이 사회문화 분야에서 많은 국제기구에 가입하도록 도와주고, 같은 국제기구에 가입한 단체끼리 자연스럽게 교류 협력하는 방법을 제시했는데요.

이에 대한 선례는 통일 전 동서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47년 PEN으로 출발한 독일의 문학단체는 정치 체제에 따라 1951년 둘로 나누어졌는데요. 하지만 1961년 함부르크에서 양독 작가회의가 소집되는 등 인적 교류가 진척되면서 서독의 문학상이 크리스타 볼프, 유레크 베커 등 동독 작가에게 수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라디오나 TV 등의 매체 개방을 제시했습니다. 상대 사회를 간접 체험함으로써 통일 후의 문화 충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동서독 간에는 상호간 라디오 청취와 TV 시청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6년 '문화협정' 체결 이후 공식적 방송 교류가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이미 1960년대 말에는 동독 젊은이들의 56% 정도가 서독 방송을 매일 청취했으며, 서독 청소년 잡지의 내용을 방송하는 'RIAS-Treffpunkt'같은 프로그램 청취율은 98%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1983년 조사에서도 동독주민의 70%가 거의 매일 서독 TV와 라디오를 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0년 이후 남북교류에서 북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분야는 문화 분야이다. 개성 만월대 발굴 및 복원, 겨레말 큰사전 공동 편찬 사업 등은 우선적인 교류와 함꼐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Q. 남북교류 기반을 구축하려면?

"남북교류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는 관련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통일관련 학과는 고려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두 곳에 불과하다. 대학원을 포함해도 인력 양성을 위한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회문화 분야, 특히 문화 분야의 인력과 인프라는 피폐하다. 지역별로 주제별로 특화된 연구와 교육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분야별 전문성을 높이면서도 전문 인력의 양성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통일 방송국'의 설립과 운영, 개성공단 내 문화산업 단지 조성 사업 등의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토론자였던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여가정책과장은 "점점 통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교류를 바탕으로 통일 문화를 형성해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최 기자에게는 "사회 교류와 문화 교류를 분리하자"는 관점이 가장 흥미로웠는데요.

 

"기존에는 사회문화교류를 연계해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 교류는 일반적으로 인도적 지원, 원조 사업 등으로, 필히 남북간의 우열 관계를 따지는 것이므로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반면, 문화는 남북이 어느 한 쪽이 우월하고 열등한 관계가 아니라 비교적 평등한 관계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 교류보다 가볍게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문화 교류부터 먼저 시행하고, 점차 그 교류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늘 궁금했던, 사회 교류와 문화 교류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던 좋은 토론 내용이었습니다.

이 날, 눈 쌓인 경복궁은 고요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금강산을 염원하고 평양의 정경을 궁금해하는 것만큼이나, 북한 사람들도 조선시대의 주 궁궐이었던 서울 경복궁을 거닐고자 하는 소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북문화교류, 이름 뿐인 정책, 말 뿐인 합의가 아니라 정말 사람과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으로 경복궁에서, 상생기자단의  최수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