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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역사의 현장에서 한반도를 생각하다 : 독일 다카우 수용소에서

역사의 현장에서 한반도를 생각하다

 - 독일 다카우 수용소에서 -

 

  정말 오랜만에 기사로 만나뵙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번 방학을 이용해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유럽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인데요, 10명 정도의 학생들이 함께 간 여행이라 여러 가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여행자의 강인한 마음가짐으로 무사히 마무리를 했고, 바로 엊그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약 8개국을 지나왔는데, 여정 중에 우연히 독일의 뮌헨이라는 도시에 머무른 적이 있었습니다. 뮌헨은 예로부터 독일의 과학,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고 아직까지도 유럽 유수의 도시로 꼽히고 있는 곳인데요, 유럽의 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고딕 양식의 중세 건축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약 4일간의 뮌헨 체류기간에서, 3일차가 되었을 때 저는 함께 방을 쓰고 있던 어느 외국인과 대화를 하다가 뮌헨에서 멀지 않은 곳에 2차 대전 시기에 사용되었던 유대인 수용소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유럽에 가게 된다면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 수용소와 같은 곳이었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저는 그곳에 한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간단한 지역 정보만 듣고 무작정 역으로 달려간 터라, 수용소 위치를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수용소를 찾아가는 사람이 저 하나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이 계셔서, 그분들의 뒤를 따라 버스도 타고 복잡한 숲길도 걷고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도착 전 들었던 생각은 경관이 좋은 것도 아니고 즐거움보다는 엄숙함과 슬픈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러한 장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 적막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수용소에 와 보니 생각보다 많은 방문객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차대전시기의 유대인 수용소 하면 대부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먼저 떠올리시는데, 사실 제가 간 뮌헨의 다카우 수용소가 1930년대 초에 만들어진 최초의 유대인 수용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다카우 수용소에서 확립된 수감자 교육 모델을 이후에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다른 수용소에서 그대로 따다가 적용 발전시키게 되었던 것이지요.

 

 

   위 사진을 보시면 백색 판자에 흑백으로 사진과 글들이 적혀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실 텐데요 이곳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하는 언어가 부족하고 전문 가이드 요원 또한 소수였지만, 수용소 전체에 걸쳐 수백장 이상의 백색 판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어와 영어로 표기된 이 판자는 건물 내 외부 특정한 곳마다 위치하고 있어 방문객들의 이해를 도왔는데요 특히 독일어는 전혀 할 줄 몰랐던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보호소’라는 이름도 쓰였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수용소’의 삶이 순탄할 리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전쟁 당시 종군 기자의 촬영 내용, 수감자들의 편지와 그들이 생활하는데 사용했던 도구들이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수감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어렵지 않게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스실과 화장터의 존재입니다. 위의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바로 시신 소각에 이용되었던 화로인데, 전쟁 말기에는 증거 인멸을 위해 가스실에서 수감자들을 대량으로 살상하고 그 시신을 바로 옆에 있는 화장장에서 태우는 작업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이곳이 해방될 때까지 이 지역에 검은 연기가 끊이는 날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다카우 수용소에는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종교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용소의 참상을 계속 보고 있던 저는 문득 한반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고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지언정 2차 대전은 끝났고 남아있는 수용소들은 역사의 교육장이 되어, 그곳의 희생자들은 전 세계인의 추모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여전히 이러한,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수용소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고 그것도 국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의 수용소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기자분들께서도 여러 차례 다룬바 있는 현실적인 사안입니다. 또한 강철환씨를 비롯하여 실제로 북한의 수용소를 경험한 탈북자들이 생기고 그들이 여러 기고, 책 발간 등을 통해 그 실상을 알리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서 점차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서는 당국에 의한 수용소 수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국가폭력이요 범죄이며 현대 민주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입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다카우 수용소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종전 뒤 세워진 조형물입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사람들이 꼬챙이에 꿰어 비참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함을 넘어 슬픔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희생자들은 이미 고통이 끝나고 세계인의 추모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제가 이 기념물을 보면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수십만의 북한 동포들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사람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이날의 방문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보다도 성공적인 통일을 이루어 한반도에 분단으로 인한 고통을 종속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종전된 지 70여 년이 지났고 유대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를 세울 정도로 더 이상 약자가 아니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 유적을 찾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다시 그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말도 있는데 독일인들은 아직까지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신이 현대 독일을 유럽의 최선진국으로 만들었고 이제 EU를 이끌어가는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제고되고 통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그만큼 통일에의 거리는 점차 좁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평범한 시민들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