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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광복절 특집 (2)] 나고야에서 재일교포 청년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상생기자단의  최수지입니다.

지난 ①편 기사(링크)에서는 재일교포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과 함께 나고야 한국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 봤습니다.

이번에는 직접 나고야에서 만났던 특별한 재일교포 청년과의 '밀착 취재(!)'를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전에, 먼저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리성기(李成驥) 군은 실버악세서리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재일교포 3세입니다.

최 기자가 속한 '국인(國人)'이라는 이름의 한국 대학생들과 '민단(재일대한민국거류민단)' 산하 청년회와의 간담회에서 리군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리군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일본에 건너갔으며, 2세인 아버지과 3세인 리성기 군은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입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대구이고, 리군은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민단 재일교포 청년회 사람들과는 달리 특이했던 점이 있었는데요.

그는 학창시절 정대세 선수와 같은 조선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선학교'는 민단에서 세운 한국학교처럼, 총련에서 운영하는 재일교포 학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일본에는 재일교포 학교가 두 종류가 있는 셈인데, 남한 계열의 한국 학교북한 계열의 조선 학교로 나뉘는 것입니다.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의 모습, 사진 제공 최정민씨)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대세 선수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직속 선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의 정대세 선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고, 당시에도 정 선수는 축구를 굉장히 잘 해서 유명했다고 합니다.

 

리군은 어릴 때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학교를 나왔지만, 아버지 사업 때문에 국적 선택에 있어서 현실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재일교포로서의 차별, 그 중에서도 '조선적'을 가짐으로써 겪게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정대세 선수 또한 지난 힐링캠프 방송에서 북한 여권 소지자의 일본 입출국 과정의 복잡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이처럼 재일교포들은 한 때는 조선적이었다가 여러 현실적 이유에서 대한민국 국적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Q. 재일교포로서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1) 일본 땅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교포로서 살아가는 데는 먼저 법률적인 어려움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에서 타국에 여행하고, 일본에 되돌아올 때에 '재입국허가'를 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매번 이 과정을 거치는 데에는 몇십 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또한 항상 외국인등록증명서를 휴대하고 다녀야 하는 의무도 있다.
* 단 2012년부터 특별영주자에게는 「특별영주자 증명서」가 교부되어, 해외 출국 기간이 2년 이내인 경우 재입국 허가는 원칙적으로 필요없음.

 

2) 사회적 진출 면에 있어서도 제약이 따른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일본의 지방 공무원은 될수있지만, 국가 공무원은 될 수 없다.

또한 아직도 취직할 때 한국 국적, 조선 국적이라는 이유로 채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케이스는 옛날에 비교하면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최근에는 한국어 능력이 높게 평가되어 유리한 경우도 많다. 이것은 '한류'가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3) 재일교포에게는 일본 정치에의 참정권, 심지어 지방선거에서의 참정권도 없다.

 

4)·중대한 범죄를 범했을 경우에는 국외퇴거가 될 위험이 있다.

 

5) 또한 결혼을 할 때도 법적 수속이 복잡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재일한국인과 일본인이 결혼할 경우에 성씨 변경이 어렵거나, 둘 사이에 낳은 아이가 사생아 취급을 받게 될 위험도 있다.

또 그 아이는 반드시 어느 쪽이든 하나의 국적을 선택 해야 하다. 재일한국인끼리 결혼하는 경우라도,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복잡한 서류를 준비 해야 한다. 영사관에 부탁하면 시간과 손이 많이 가고, 호적정리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경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6)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차별이 많이 줄어들고 있어 최근에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된다. 

생활하는 데 있어서 치명적인 어려움은 없고, 충분히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옛날부터 재일교포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 ■法律上
・韓国国籍で日本から他国へ旅行して、日本へ戻るときに「再入国許可」をとらなければならない。
時間は数十分、(3,000円(一回限り),若しくは6,000円(数次)
・外国人登録証明書を携帯する義務がある。ただし、2012年より特別永住者には「特別永住者証明書」が交付される。それにより渡航期間が2年以内の場合、再入国許可は原則必要なくなる。
・地方公務員にはなれるけど、国家公務員になれない事。
・参政権、地方参政権ともに無い事。
・重大な犯罪を犯した場合、国外退去になる危険がある。
・結婚する場合、手続きが複雑で時間がかかる。韓国人と日本人が結婚する場合、苗字の変更が難しかったり、子供が私生児となってしまう場合がある。
また、子供はどちらかの一つの国籍を選択しなければならない。
韓国人同士の結婚の場合でも、本国から家族関係証明書などの書類を取り寄せなければならない。戸籍整理ができていない場合、長い時間がかかる。


■実生活上
・いまだに就職の際に韓国国籍、朝鮮国籍が理由で採用されない場合がある。
しかしそのケースは昔に比べれば減っている。逆に韓国語語学能力は評価されており、有利に働く場合も多い。
これは「韓流」がプラスに働いた結果だと思われる。
・物件を借りるとき、ローンを組むときは不利に働く。詳しくは体験していないのでわからないが、貸主によって大きく異なるようだ。
・近所付合いに関しても差別は減っていると思われる。実際に私自身が感じた事は思い当たらない。

以上、法律上実生活上において致命的な生き難さはなく、十分生活可能である。
もちろん、これらは過去の権利獲得運動の結果なのは言うまでもない。 )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하고, 또한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재일교포 분들의 가독을 위해 일문을 별도로 추가했습니다.)

 

 

Q. 앞으로의 재일교포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한국이나 북한, 일본 국민과는 다른 집단으로서,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만들어 온 민족 문화를 계승하면서 일본 사회에 적응하고, 또 각각의 국민과 양호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가 '화교(華僑)' 사회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재일교포 사회는 한반도보다 더 복잡하게 여러 갈래로 분단이 되어 있고, 서로 갈등과 대립만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 빨리 이런 갈등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 그리고 앞으로의 새로운 세대가 이런 역할을 해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재일교포들이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고, 재일교포 단체에 소속하는 케이스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韓国、DPRK、日本国民とは別な集団として、独自に生きていく事が望ましい。
朝鮮民族文化を継承しつつ日本に適応し、各国家国民と良好な関係を作るべきだ。華僑に見習うべき所があ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しかし、現在在日団体はいくつかに分かれており、これら同士は良好な関係といえない。これは一刻も早く改善すべきだ。
新しい世代に期待したい。ただ、一番深刻な問題は日本人への帰化の増加や、在日団体へ所属するケースが減っている事であろう。 )

 

 Q.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재일교포 사회에 대한 인지도는 낮은 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현실적으로 재일교포 사회와의 접촉이 적고, 이해에 대한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만약 우리 교포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하고 함께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키워간다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기회들을 통해 보다 좋은 상호의존(相互依存) 관계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知る必要性が無いので仕方が無い。必要性が出たときに知れば良いと思う。.
ただ、もしわれわれの事を詳しく知っていただけるとしたら大変うれしく思うだろうし、よりよい相互依存関係が生まれるだろう。) 

 

 


Q.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어요.

이상과 현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루빨리 전쟁 상태를 종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남북경협 등의 경제적 접근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남북은 단순히 일방적인 원조가 아니고,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경제적 윈-윈(Win Win)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熱意と現実のすりあわせが重要だと思う。
連邦制が最良ならばそれを選択すべきだし、統一が可能ならばそうすべきだ。
どちらにせよ一刻も早く戦争状態を終結し、関係を修復する事が必要だ。
それには貿易などの経済的なアプローチが最良だと思う。
援助ではなく、相互に利益が出る経済的Win Win関係が理想的だ。)

 

 

 

Q. 통일 과정에서 재일교포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협력하고 싶다는 의지는 강하지만, 할 수 있는 것에는 제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재일 단체끼리 반목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가능성은 낮지만 북한 계열의 재일교포 단체인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이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단,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실제로 통일이 된다면 재일교포 사회의 분단 또한 화해와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協力したいという思いは強いが、できる事は少ない。特に在日団体同士が対立している現在は。 個人的には、総連がDPRK民主化に尽力する事が統一への近道だと思う。だが、その方向に動く可能性は低い。

 ただし、本国同士が統一した後はそのときの状況にかかわらず、在日団地同士の和解、合一に向かうと思われる。)

 

 

지금까지 일본 나고야, 그 곳에 있는 재일교포 리성기군과 나눴던 이야기를 다루어봤습니다. 이전까지 재일교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했던 저에게 이번 만남은 너무도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남한과 북한, 일본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더 큰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모순적인 사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가 가졌던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멋진 생각,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 모두에 대한 열린 마음은 제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앞으로도 재일교포와 더불어 멀지만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재외동포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반도 통일은 남북한의 주민들만이 아닌 해외에 흩어진 동포들이 더불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하나의 코리아'라는 정체성을 재조명하고, 새롭게 공유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나고야에서, 상생기자단의  최수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