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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그날이 오갔지요?" : 뮤지컬 《언틸 더 데이》 마지막 공연을 가다

 지난 71, 작년 71일부터 달려온 뮤지컬 언틸 더 데이 Until The Day1년 동안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습니다. 다른 장르나 영상, 매체가 북중 접경지역이나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것과 달리, 언틸 더 데이는 주로 평양의 모습을 다룹니다. 대학로 동숭교회에 위치한 문화 공간 엘림홀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상생기자단이 다녀왔습니다.

 

공연 포스터(사진 제공: 희원 극단)

 

 언틸 더 데이북한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룹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터지는 희극적 요소와 빼어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노래로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춰,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탄탄한 완성도를 이루어 장기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을 정도로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굳이 주연을 꼽자면 한국계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국영 TV의 기자이자 선교사인 미카엘 최(국중웅 분), 북한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차장 주명식(김학준/김영훈 분), 그리고 주명식의 연인이자 꽃봉오리 예술단의 간판 예술인 강순천(양정윤 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언틸 더 데이에서 주명식이 바라본 두 얼굴의 평양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똑똑히 보시죠.”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미카엘 최(사진 제공: 희원 극단)

 

 때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기. 미카엘 최는 북한의 모습을 담기 위해 평양에 취재를 갑니다. 미카엘은 극의 도입부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린 저 멀리 아프리카, 가까운 일본의 재해를 보면서 돕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깝고,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혈육 북한,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정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똑똑히 보시죠를 노래합니다.

 이어지는 꽃제비 소녀(박유진/이채린 아역)의 무반주 노래. “김정일 장군님만을 믿고 천년만년살겠다고 합니다. 소녀가 퇴장하고서는 분위기가 반전되어 꽃봉오리 예술단의 흥겨운 공연이 시작됩니다. 공연을 마치고 주인희(김희원 분)를 비롯한 예술단원들이 강순천의 깜짝 생일 축하를 왁자지껄 하던 중, 꾸짖듯이 인희의 오빠인 주명식이 등장합니다. 명식은 프랑스 기자가 취재를 하러 오니까 잘 준비하라고 다그칩니다. 곧이어 그 프랑스 기자인 미카엘과 안내를 맡은 명식의 부하 김선관(박정권 분)이 들어옵니다. 여기서 미카엘은 명식과 순천이 연인 관계임을 알게 됩니다.


위장된 아름다움, 평양의 낮(사진 제공: 희원 극단)

 

  선관의 안내로 평양의 낮을 둘러보는 미카엘. 모두가 활기차보이고 웃음과 노래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밤에 호텔에서 내려다본 평양은 꽃제비들이 몰려다니며 서로에게마저 음식을 속여 뺏는 처절한 모습입니다. 순천은 이런 평양의 밤거리에 나와 꽃제비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씩 나눠줍니다. 하지만 경보가 울리며 거리의 모두가 흩어집니다. 미카엘이 급하게 뛰어 나왔지만, 호텔을 인솔자 없이 빠져나온 것을 명식에게 들켜 주의를 받을 뿐입니다. 미카엘을 들여보내고 홀로 남은 명식은 낮과 밤이 다른 평양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며 좌절합니다.

 

고아가 된 꽃제비의 엄마가 되어주는 순천(사진 제공: 희원 극단)

 

 선관의 인솔로 미카엘은 북한의 대외선전용 교회인 봉수교회 예배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는 김정일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의 헌법상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당, 곧 수령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에게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까?”라고 묻는 미카엘의 인터뷰에 명식이 대신 나서며 당원들 중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목사가 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위대한 김정일'을 노래하는 봉수교회(사진 제공: 희원 극단)

 

 한편 밤이 되자 박해를 피해 지하교회 교인들이 몰래 숨어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들은 밖에 인기척이 조금만 있어도 감시원인가 하여 두려움에 떱니다. 한 교인이 붙잡혀간 다른 교인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불구가 되어 돌아온 소식을 전해주자, 옆에 있던 다른 교인은 차라리 수없이 죽어간 다른 교인들처럼 죽는 게 낫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 갑자기 명식이 나타나자 모두들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명식은 연인이자 지하교회 교인인 순천을 대신해서 식량을 전해주고 떠납니다. 그는 교인은 아니었지만 지하교회의 모습을 보면서도 조국의 현실에 회의를 느낍니다.

 명식은 미카엘에 대한 보고를 하러 가던 중 당 동무(구용완 분)로부터 보고를 받아야 할 선전선동부 부장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반역자가 된 것입니다. 당 동무는 명식에게도 조심하라며 간사한 웃음을 남기고 떠납니다. 명식은 충성을 바쳐왔던 북한 체제의 현실에 절망합니다. 결국 사람답게 사는 것, 자유롭게 사는 것을 원하기만 해도 제거되어야 하는 조국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북한의 현실에 갈등을 겪는 명식(사진 제공: 희원 극단)

 

 명식은 미카엘이 가장된 평화가 아닌 참혹한 실상을 취재하고, 선교 목적으로 북한에 온 것을 알고 그에게 탈북을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미카엘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와주겠다고 하고, 명식은 순천과 아우처럼 아끼는 선관을 설득합니다. 순천은 꽃제비들을 두고 갈 수 없다고 하지만, 명식은 이 사실을 바깥에 알리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선관은 병든 아바이(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명식과 순천은 미카엘을 데리고 지하교회를 찾아가, 불구가 되어 돌아온 교인이 들려주는 정치범 수용소 이야기를 촬영하도록 해줍니다.

 

탈북 전 심경이 표정에 드러난 순천의 마지막 춤사위(사진 제공: 희원 극단)

 

 미카엘과 약속한 날. 순천은 마지막 공연을 마칩니다. 순천은 미카엘을 따라가지만, 경보가 울리며 무대 위에는 긴박감이 감돕니다. 누군가 밀고를 한 것입니다. 어둠을 더듬으며 인희를 데리고 탈북하려는 명식 앞을 선관이 가로막습니다. 명식이 천천히 다가가며 설득하려고 하지만, 선관의 오발탄에 인희가 쓰러집니다. 선관은 달아나고, 죽어가는 인희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명식의 곁에 당 동무가 나타납니다.

   

죽어가는 인희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명식(사진 제공: 희원 극단)

 

 순천은 미카엘의 도움으로 남한에 당도하지만, 명식은 고문을 받고 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립니다. 남한의 순천과 옥중의 명식이 부르는 〈살아서 다시〉가 관객들의 가슴을 죄고 뺨을 적십니다. 명식은 아버지 때문에 탈북을 선택할 수 없었다며 무릎을 꿇는 선관을 용서하고("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갔네? 이 땅에 태어난 거이 잘못이지"), 호명되어 형장으로 올라갑니다.

  꽃제비 소녀(사진 제공: 희원 극단)

 

 공연의 마지막. 꽃제비 소녀가 다시 등장하여 김정일 장군님만을 믿고 천년만년 살겠다고 노래합니다. 참혹한 현실을 보고 나서 다시 듣는 소녀의 노래는 관객들에게 묘한 괴리감을 일으켰습니다. 노래를 마치고 웅크린 소녀에게 명식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 그거이 아네? 백두에서 한라까지, 삼천리밖에 안 돼.” 소녀가 묻습니다. “그날이……오갔지요?”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올 때 객석은 실컷 웃다가 운 관객들로 가득했습니다. 커튼 콜을 할 때 김희원 단장을 비롯한 배우들은 대관료를 내지 못해 공연장에서 쫓겨날 뻔하기도 하고, 지금도 빚이 남아있지만 관객 여러분의 힘과 사랑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공연장 밖에서는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고,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제3국 현장에서 탈북을 돕는 북한정의연대(http://www.justice4nk.org/)를 지원하기 위한 후원 모금함이 놓여 있었습니다.

  공연장 밖 북한 정치범 수용소 전시회. ‘통영의 딸’에 관한 내용도 보입니다(사진: 박찬미 기자)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북한의 실상을 알린 언틸 더 데이는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공연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북한의 자유와 해방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이어져 통일의 그 날을 '살아서 다시' 맞이하길 소망해봅니다.

 

* 다음 시간에는 해피 엔딩을 바라며 북한의 자유의 통일을 위한 그 날까지 멈추지 않는 언틸 더 데이의 희원 극단 인터뷰로 찾아뵙겠습니다.

* 희원 극단 문의 및 후원: 1544-4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