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알려진 사실 중 하나는 북한에도 비공식적인 시장(장마당)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시장은 이제 노동·자본·토지 등 ‘생산요소시장'을 포괄하는 개념까지 확대되어 북한의 개혁개방, 체제이행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 북한의 시장은 북한의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고, 최종적으로 경제체제의 변화를 유인하는 압력으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중요한 의미인 북한의 시장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북한의 시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북한의 시장 개념은 1950년대 후반부터 형성되었다. 1958년 북한이 농업 및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된 후에, 국유제와 국가공급제로의 전환과 인민에 대한 배급제가 실시되었다. 동시에 기존 농촌시장이 농민시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기능 및 범위를 축소시키는 등의 시장억제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인하여 사유재산에 대한 손해가 막심하여 사실상 사유재산의 축적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체제로의 전환을 통하여 북한은 시장을 폐지하고 사회주의체제를 설립하기에 용이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이러한 제도적 전환과 시대적 상황은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구소련이나 동구권 국가들처럼 충분한 경제발전 없이 급속히 사회주의체제로 진행되면서 경제발전이 따르지 못하였기에 부족한 물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는 사회주의체제 초기부터 암시장이 형성되게 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계획경제체제를 완성한 시점이 바로 북한 시장의 시작이다.
▲ 활기넘치는 북한 신의주 채하시장 모습 (출처:연합뉴스 http://bit.ly/Kww3Ss)
북한의 시장 형성요인
북한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구소련이나 동유럽과 달리 기술적·물질적 토대가 낮은 가운데 사회주의협동화가 시작되었고, 산업의 급속한 국유화를 통한 갑작스러운 인구의 도시 유입은 국가배급망을 통하여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너무 빈약했다.
특히 모든 제도가 사회주의체제로 전환되었다고 하나,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관습이나 생활양식과 같은 민족문화까지 한꺼번에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이러한 민족문화를 기반으로 비사회주의적 소비문화는 국가의 탄압에도 근절시키기 어려운 요소였으며, 또한 국가배급망이 구축된 뒤에도 옷, 신발 등 생필품은 배급망에서 제외되어 자력으로 해결하였기에 곡물수입과 필요한 물품들의 교환이 암묵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다 북한 1990년대의 고난기간을 지나면서 배급망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이 때문에 완전히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암묵적인 거래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으며, 덩달아 북한 당국의 시장거래 단속이 더욱 심해지게 되어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되자, 불만을 억제하기 위하여 북한 당국은 자신의 텃밭에서 나온 생산물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유재산 인정으로 주민들은 재산을 축적하게 되었고, 시장거래 활성화 때문에 중국과의 교역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 자유로운 모습의 북한 라선시 시장 (출처:노컷뉴스 http://bit.ly/Mpsmt5)
북한에서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
1) 계획경제체제의 해체
이러한 해체에 대한 의미를 보여준 것은 바로 1995년부터이다. 북한은 이때 재정규모를 전년대비 40% 줄여 발표하였는데, 이는 북한에서의 재정은 국가경제를 가동시키는 자금 원천으로 계획경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생산, 소비, 축척 등의 모든 실물경제활동을 화폐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즉, 국가재정 규모의 감소는 생산, 소비, 축척 등 경제전반에 걸친 실물경제 활동이 그만큼 위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규모의 축소는 그동안 내세웠던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원칙’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이 수십년간 세워 온 계획경제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
생산부문에서의 국가재정지원이 줄어들게 되면, 공장·기업소 등이 생산 활동을 수행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가동률이 낮아지고, 각 생산단위들은 생산계획을 달성할 수 없어 계획경제체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이와 더불어 소비부문에서의 국가배급제가 무너져 북한주민들이 식량 및 생활용품을 자력으로 조달하게 되면서, 주민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통해 얻은 수입으로 식량 및 소비재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생활을 하게 되어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사경제가 확산되었다.
2) 사경제부문의 확산
앞에서 언급한 소비부문의 배급제 붕괴는 북한주민들의 경제생활 및 소비지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자급적으로 식량 및 생활용품을 조달해야 하는데, 시장의 가격은 국영가격과 달리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된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시장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구입해야 하는데, 북한 주민들의 월급은 과거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즉,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간다는 것이 불가능해짐을 뜻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늘어난 소비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시장에서 장사나 부업에 종사하였고, 그 결과 북한 전역에 시장이 들어섰다.
▲ 순시중인 김정은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출처:머니투데이 http://bit.ly/MC0KEH)
이러한 시장이 북한경제에 미친 영향
1) 북한 주민들의 시장경제 경험 축적
시장의 급속한 확산은 북한 주민들이 시장경제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물자를 조달하는 것을 통해 시장을 필수적으로 인식하였다. 북한주민들이 시장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2) 북한의 노동력 통제 약화
시장부문의 확산으로 계획경제의 필수적인 노동력 통제가 약화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직장에 출근하여 주어진 과업을 일정대로 수행해야 생산계획이 진행되고, 이를 통해 계획경제가 운영된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시장으로 장사 및 부업을 하게 되면서 노동력의 누수가 발생하였다. 즉, 생산계획의 필수적인 노동계획을 수립할 수 없게 한 것이다.
3) 현금유통체계의 붕괴
북한의 전통적인 현금유통 경로는 기관, 기업소의 근로자 생활비(임금)의 형태로 현금이 중앙은행에서부터 공급되고, 주민들이 현금을 이용하여 국영상점에서 물자를 구매하거나 은행에 예치하게 되면 다시 중앙은행으로 환수하도록 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시장에서 물자를 구매하게 되면 현금이 중앙은행으로 환수되지 않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 머문다. 개인적으로 보유한 현금을 은행에 예치하기보다는 가지고 있으려고 하며, 이는 축적된 자본을 가진 개인을 등장시켰다.
이러한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떠한 영향을 북한 경제에 미쳤는지를 알아 보았다. 이처럼 북한은 태생 자체가 급속한 사회주의화로 인하여 시장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은 일상적으로 북한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 통일을 대비하는 우리들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런 시장경제적 요소가 북한주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으며, 시장개념적 요소에 더하여 우리기업들이 그동안 개성공단, 금강산관광과 같은 경협을 했던 방향에서 벗어나, 북한 내부로 들어가는 그러한 경협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더 공고히 함과 동시에 대중의존에서 벗어나 한국 의존도를 높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출처 및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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