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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우리는대학생기자단

통일부 상생 기자단 A to Z

통일부 상생기자단 4기,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작년 4월, 모집 공고를 보고 가슴이 마구 설렜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저의 경우에는 이 공고를 보고 통일부 상생기자단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아니었답니다. 저는 통일부 상생기자단을 대학 입학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4기'의 모집 공고가 뜨기까지 1년동안 손꼽아 기다려왔습니다.

 

사실 저의 대학생활은 언제나 통일부 상생기자단과 함께였습니다.

기자단이 되기 위해 내적·외적으로 준비를 했던 1년, 그리고 통일부 상생기자단 4기로서 보냈던 1년을 합치면 저의 대학생활의 전부입니다. 제 대학생활은 '통일부 상생기자단'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통일부 상생기자단, 많이들 궁금하실텐데요. 대체 어떤 활동이기에 저의 '대학생활의 전부'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번 기사에서는 지난 1년간의 통일부 상생기자단 4기로서의 활동을 총망라하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부 상생기자단 A to Z!"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또한 상생기자단의 한 명으로서 제 자신의 이야기를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 끼워넣어 통일부 상생기자단이라는 하나의 큰 모자이크를 아름답게 완성시켜보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작년 4기 모집 당시, 서류 합격 후 면접 때 경복궁역에 위치한 정부중앙청사에 갔을 때 찍었던 사진입니다. 당시만 해도 이 정부청사에 매달 오게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그래서 저렇게 필사적으로 사진을 남겨두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

 

그리고 꿈에만 그리던 통일부 상생기자단 4기에 합격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통일부 상생기자단 4기라는 의미는 저에게 너무도 큰 의미였습니다. 북한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저에게 이 활동은 반드시 할 것이고,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목표였습니다. 수단이자 목적이고, 목적이자 수단인 그런 존재였다고나 할까요.

또한 저의 인생과 대학생활에 대한 개인적 목표 중 하나에 이 기자단 활동이 가장 우선순위에 올라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을 때 그 감격은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발대식에서는 통일부장관 명의의 위촉장을 받고,

그리고 통일부 상생기자단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대망의 워크숍을 가게됩니다.

 

 활동의 첫 시작인 워크숍에서는 상생기자단 '4기'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3시간이 넘게 지속되어서, 공식 일정을 넘어 뒷풀이 자리까지 이어가야만 했던 자기소개 시간에 저는 조금 특별하게 자기소개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A,  통일부 상생기자단은 단순한 '스펙쌓기'가 아니다!

누군가 저에게 상생기자단 활동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Q. 북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없는데요. 또 통일에 대한 활동도 한 적이 없고요. 그런데도 상생기자단이 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제 생각에는 오히려 그럴수록 더 상생기자단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한국 사회에서 통일문제는 너무도 먼 일로만 인식되고 있고, 통일이라고 하면 반드시 북한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북한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통일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상생기자단을 함으로써 통일을 어느 정도 '자신의 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생기자단이 된 순간, 기사는 어떤 소재로 써야할지, 통일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활동을 하다 보면, 다들 언제 그런 고민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한 달동안 수많은 통일 이야기를 기사로 쏟아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통일에 대해서 어떤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만을 가졌던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 통일과 북한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통일과 연관시켜 생각해봄으로써 통일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많이 바뀌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통일을 이끌어 갈 세대입니다. 통일은 누가 대신해주는 것도, 타인에게 떠밀수도 없는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여러분이 통일을 이야기 할 때, 통일은 비로소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부 상생기자단 활동은 단순히 '기자단'이라는 대외 활동의 의미를 초월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개인 이력의 증진을 넘어서 사회적인 가치를 배우고 평화와 통일의 소중함과 일상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활동이 바로 이 상생기자단입니다.

저는 이 통일부 상생기자단 활동이, 여러분 개개인이 인생에 대해 가졌던 가치, 꿈에 대한 방향성을 송두리채 흔들어놓을 수도 있는 소중한 기회이자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공들여 쓴 첫 기사가 올라갔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첫 기사는 한반도를 울리는 목소리, '라디오남북친구'라는 제목이었는데요.

저의 첫 기사는 앞으로 1년간 펼쳐질 상생기자단 활동의 중요한 방향성을 잡아준 기사입니다.

저는 1년 동안 사실(fact) 위주의 어떤 정보성 기사보다는 주로 직접 다녀와서 쓴 현장체험 기사를 즐겨 쓰는 편이었는데요. 북한학과라는 전공의 특성상 이런 소재들을 얻기가 더 편리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늘 열심히 찾아다니는 편이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이나 기사들만 참고해서도 쓸 수 있는 그런 기사보다도, 제가 직접 발로 뛰고 체험한 후 그 경험을 기사로 녹여낸 글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통일부의 공식 행사에 동반하여 취재할 수 있다는 것은 통일부 상생기자단으로서의 가장 큰 특혜라면 특혜인데요. 저는 이런 혜택을 통해 정말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식 취재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바로 작년 '2011 평화통일대행진'이었습니다. 6월 말에 진행되었던 5박6일간의 '평화통일대행진'에 동행하면서, 통일부와 현대아산이 진행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때 참가한 상생기자단 6명은 단순히 취재진이 아닌, 평화통일대행진의 '홍보팀'으로서 스태프처럼 활동했고, 5박6일간의 행사 내내 동행하면서 함께하고, 보고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통일부와 현대아산 관계자 분들과 함께하고, 또 참가하는 학생들과 부대끼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장차 통일과 관련된 문화들을 직접 기획해보고 싶은 꿈을 가진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제 꿈의 첫 발을 내딛게 해 주었달까요!

 

Q. 이런 공식 행사 취재 기회는 모든 기자들에게 주어지나요?

매 행사 때마다 통일부 상생기자단 모두가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런 활동 참가가 모두 '의무'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는데, 강제도 의무도 아니고요.

다만 어떠한 행사 건이 있을 때마다 모든 기자분들에게 평등하게 연락이 갑니다.

"O월 O일 O시에 이런 이런 행사가 있는데, 취재가실 기자분 선착순 3명 받습니다!"라고 연락이 오면 빛의 속도로 답장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어떠한 활동도 '강제'가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욱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어떤 행사를 취재하기로 해놓고 나중에 번복한다거나, 초반에만 적극적이다가 갈수록 활동에 소홀해진다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곤란하겠죠. 

새로 들어오시는 5기 기자님들도 이런 점들을 유념하시고,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셨으면 합니다.

 

B, 상생기자단, 뿌린 만큼 거둔다!

앞서 말씀드린 것으로 인해 통일부 상생기자단은 모두 통일부 공식 행사 취재 기사만 쓸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상생기자단의 묘미는, '자신의 기사는 자신이 만들어간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에 다녀왔을 때도, 유럽에 배낭여행을 다녀왔을 때도, 그것들을 모두 통일부 기사로 녹여낼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독일에 배낭여행 갔을 때에도 저는 통일부 상생기자단이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통일과 관련하여 취재 포인트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좋은 기사는 억지로 쥐어짜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있는 그 시점, 그 공간에서 "이것이 통일과 어떤 연관을 가질까?"를 고민한다면 좋은 소재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C, 통일부 안에 '나있다(?)'

가끔씩 통일부 SNS를 통해 기사가 홍보되곤 하는데, 통일부 페이스북 계정에 자신의 얼굴이 홍보되는 특별한 경험 또한 덤으로 얻어가실 수 있다는 사실~ ^ㅠ^!!

또한 지난해 통일부의 공식방송으로 개국한 인터넷 통일방송에도 단골 손님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통일방송의 '최다 출연자'가 되어버려 이제는 PD님을 만나면 "최 기자!! 오늘 왜 출근 안 했어요?"라는 말을 농담으로 듣곤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웃음)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면, 통일방송에서 여러분의 인터뷰 또한 자주 보실 수 있다는 혜택 아닌 혜택(?)도 있답니다.

이처럼 통일부 상생기자단은 말 그대로 '기자'로서의 활동도 있지만, '기자'라는 말로는 다 포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한 예로 상생기자단끼리 진행한 '우리끼리 인터뷰'라는 테마 기사를 통해 '최수지 기자를 만나다'(링크)라는 제목으로 저의 인터뷰가 나온 적도 있었죠. 

이외에도 상생기자단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러워 하는! 한 달에 한 번 통일부 정부청사 출입이 있죠. '정기회의'라는 키워드로 찾아보시면 각 회의 때 어떤 것들을 했는지, 정부청사 4층 통일부 대회의실에서 벌어지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 4월에 했던 마지막 정기회의 때는 '통일송'으로 립덥 동영상을 찍어 UCC를 만들었는데요~!

우리 상생기자단 4기의 UCC는 조만간 기사를 통해 공개될테니 기대해주세요.  

 

D, 통일부 상생기자단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제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동국대 북한학과 폐지 논란, 그 이후'입니다.

 

 

2011년 한 해를 통일부 상생기자단으로서 보내면서, 무엇보다 저를 보람차게 했던 것은 제 글을 읽어준 많은 사람들의 응원이었습니다. 단순히 기사를 쓰는 그 자체를 넘어서, 누군가 제 글을 읽어주고 기억해준다는 것은 정말 가슴벅찬 일이었습니다.

특히 작년 하반기는 제가 다니는 동국대 북한학과에 폐과 위기가 닥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공부에, 제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던 저에게 폐과 논란은 너무도 충격적이었고, 꼭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과를 살리기 위해 제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바로 이 곳, 통일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북한학의 필요성을 알리고, 학생들의 동의없이 과가 없어지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저는 밤을 새가며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은 지금껏 통일부 블로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습니다. 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었고, 각종 언론에서도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글은 일파만파 퍼져서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대형 언론에서도 북한학과 폐지 논란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힘을 얻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언론을 통한 이슈화에 성공하였으며, 따라서 북한학에 대한 가치가 재조명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학교 측에서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와 각고의 노력에 마음을 열었고, 결국 북한학과는 폐지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힘이 모여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온라인 상에서 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제가 통일부 상생 기자단을 하고 있었기에 통일부 공식 블로그라는 공간에 글을 쓸 수 있고, 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작년의 일을 회고할 때면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한참 폐과 논란이 불거지던 당시, 밤새 열을 올리며 글을 쓰던 제 모습이 떠오르면 울컥하기도 합니다. 과가 없어지지 않았기에 만날 수 있게 된 우리 북한학과의 12학번 후배들이 입학 전에 제 글을 봤었다고 이야기해 줄 때마다 더욱 그 감회가 새롭습니다.

통일부 상생 기자단은 이처럼 저에게 한 편의 꿈, 하나의 축복과도 다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 글을 기억해주고 오래도록 저의 기사 속 한 구절을 머릿 속에 지니고 있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저의 지난 1년이 빛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기사는 저의 이런 1년 간의 노력 중 가장 절정에 이르렀던 순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와도 같은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통해 저의 기자단 활동이 저에게 준 의미를 회고할 수 있었으면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상생 기자단 활동을 통해 단순히 개인의 이력 증진을 넘어 더 소중한 인생의 경험, 삶을 흔드는 감동을 얻어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Z, 통일부 상생기자단 활동의 가장 중요한 점은, 스스로가 바로 통일의 주역임을 깨닫는 것.


4기 공식 활동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통일부 상생기자단에 대해 정리를 하는 의미에서 앞으로 들어올 5기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통일부 상생기자단'이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통일부 상생기자단이라는 것은 어떠한 '활동'이라는 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 기자단 개개인이 무엇을 얻어가느냐, 자신의 전체적인 인생의 꿈과 목표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더욱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생기자단 5기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외적인 부분을 채워야 할지 고민하시기 보다는, 내적으로 자신이 통일부 상생기자단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Q. 상생기자단 5기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그리고 어떤 기사 소재는 주로 어디에서 찾나요?

저는 어떠한 '준비 과정'이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상생기자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스펙이 필요하다기 보다도, 스스로의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실제 4기 기자단 분들을 보면 정말 멋진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멋지다'는 기준은 외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쌓았는지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어떠한 테크닉적인 면보다도 정말 얼마나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콘텐츠를 다루어보고 싶은지를 '내실있게' 준비하는 면이 더 좋다고 봅니다.

사실 다들 북한과 통일 문제 하면 어떤 소재로 기사를 써야 할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지 쉽게 떠올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저는 조금만 발상을 바꾸면 어디서든 그 소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건축학을 전공하는 기자 분은 북한의 건축물에 대한 기사를 쓰기도 하고, (참고로 저는 '건축학도'의 입장에서 북한의 건축에 대해 자주 쓰시는 허솔 기자님의 기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ㅎㅎ) 역사를 전공하시는 기자분은 북한에 있는 역사적 유물들에 대한 기사를 쓰기도 해요. 오히려 북한학을 전공하는 저보다 다양한 소재들을 접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 미래의 꿈'이라는 통일부 블로그 페이지는 제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켜면 가장 먼저 뜨는 첫 페이지입니다.

 

이 블로그 검색창에 '최수지'라는 이름을 치면 제 글이 나온다는 사실,

이로써 지난 1년을 회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저는 첫 기사를 쓰는 순간부터 항상 기사 말미에 위와 같은 문구로 제 이름을 남겨왔습니다.

(물론 이것이 마지막 기사는 아닙니다^^! 활동이 끝나도 명예기자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쓸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 기사에서도 일관성있게 변함없는 멘트로 글을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이상으로, 상생기자단의  최수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