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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야기/정책 돋보기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

 

  다들 추석 잘 보내셨나요? 지난 주 민족대명절 추석을 맞아 많은 이들이 보고 싶은 가족을 찾아 고향으로 찾아가는 귀성행렬이 이어졌는데요.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는 반면, 가족들에게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산가족’이라 부릅니다. 이산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가족의 구성원이 본의 아니게 흩어짐으로써 서로 만날 수 없게 된 가족(두산백과인용)'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고, 통용되는 불행한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이산가족의 마음을 하늘도 알아주신 걸까요? 지난 9월 10일 북한이 추석맞이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를 하면서 우리나라는 북한과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협의를 계속 진행해 왔는데요. 모든 이산가족들에게 상봉의 기회가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남과 북이 합의해 인도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 1985년 9월 20일 ~ 9월 23일

 

▼1985년 이산가족 북측 고향방문단 사진 - 조선일보 발췌

  1945년 8월, 제8차 적십자 회담에서 남북은 광복 40주년을 계기로 이산가족 고향 방문을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9월 20일 오전 9시 30분, 남과 북의 고향방문단은 판문점을 동시에 통과해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하지만 고향방문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상봉은 서울과 평양으로 한정되었고 그마저도 생사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각각 방문단 50명 중 남측은 35명, 북측은 30명만이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행사는 후에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 제1차 이산가족 상봉 : 2000년 8월 15일 ~ 8월 18일
▪ 제2차 이산가족 상봉 : 2000년 11월 30일 ~ 12월 2일
▪ 제3차 이산가족 상봉 : 2001년 2월 26일 ~ 2월 28일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이 이루어진 지 15년 만에 제1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2000년 6ㆍ15 공동선언에 따라 성사된 의미 있는 상봉이었습니다. 이후에 2개월 단위로 상봉이 이루어졌으며 제3차 이산가족 상봉까지는 남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남북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제4차 이산가족 상봉 : 2002년 4월 28일 ~ 5월 3일
▪ 제5차 이산가족 상봉 : 2002년 9월 13일 ~ 9월 18일
▪ 제6차 이산가족 상봉 : 2003년 2월 20일 ~ 2월 25일
▪ 제7차 이산가족 상봉 : 2003년 6월 27일 ~ 7월 2일
▪ 제8차 이산가족 상봉 : 2003년 9월 20일 ~ 9월 25일
▪ 제9차 이산가족 상봉 : 2004년 7월 11일 ~ 7월 16일

 

  4차 이산가족 상봉 때부터는 북측의 요구에 따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북측의 이러한 요구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때마다 북한 주민들의 서울 방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상이완의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9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더 많은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위하여 남과 북은 화상 상봉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2005년 7월 19일 ‘남북 이산가족 시범화상상봉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제1차 이산가족 화상 상봉이 2005년 8월 15일에 이루어졌습니다.

 

 

- 남북이산가족 시범화상상봉에 관한 합의서 주요 내용 -

 

 

① 올해 8월 15일에 화상 상봉을 시범적으로 실시

② 시범화상상봉의 규모는 남과 북 각기 20명씩으로 하며, 1명의 상봉자가 상대측 가족 5명 정도를 만남.

  - 상봉 후보자는 각기 100명씩 정하고, 후보자 명단은 7월 18일,

    회보서는 7월 27일, 최종명단은 8월 2일에 교환

③ 시범화상상봉은 당일 오전 8시부터 한번에 10가족씩 오전 20가족, 오후 20가족이 상봉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며, 상봉 순서는 최종명단 교환시 쌍방이 협의하여 정함.

④ 시범화상상봉의 원활한 진행과 기술적 보장을 위해 가족 동의를 전제로 진행인원 1명이 상봉보조

⑤ 화상상봉의 시험과 행사보장을 위하여 서울과 평양의 화상상봉 장소에

    서울-평양간 직통전화를 2대씩 설치 운영

⑥ 기술적 보장을 위한 일정

  - 남측은 7월 18일 군사분계선에서 남북 광케이블을 연결

  - 남과 북은 7월 20일전까지 각기 10가족이 동시에 상봉할 수 있는 화상상봉설비를 갖추고,

     7월 25일 전으로 서울-평양간 SDH 전송로 총연장시험 진행

  - 남과 북은 남북 SDH 전송로가 확인된 후 서울-평양간 이더넷망(IP망) 연결시험을

    7월 30일 전으로 진행

  - 남과 북은 8월 1일부터 8월 5일까지 단말기 연결시험 진행

  - 총 연결시험이 완료된 후 남과 북은 8월 6일부터 8월 14일까지 화상단말기 운용방법 완성

⑦ 제6차 적십자회담에서 화상상봉의 확대문제를 협의

 

- 출처 : 통일부 남북회담 홈페이지 - http://dialogue.unikorea.go.kr

 

 

▪ 제10차 이산가족 상봉 : 2005년 8월 26일 ~ 8월 31일
▪ 제11차 이산가족 상봉 : 2005년 11월 5일 ~ 11월 10일
▪ 제12차 이산가족 상봉 : 2006년 3월 20일 ~ 3월 25일
▪ 제13차 이산가족 상봉 : 2006년 6월 19일 ~ 6월 30일
▪ 제14차 이산가족 상봉 : 2007년 5월 9일 ~ 5월 14일
▪ 제15차 이산가족 상봉 : 2007년 10월 17일 ~ 10월 22일
▪ 2009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 2009년 9월 26일 ~ 10월 1일

 

 

▲ 출처 - 통일부 통계 자료실

 

 

  이제까지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은 전체 12만여 명의 이산가족 중에서 2만 848명(화상상봉 3748명 포함)만이 실제로 상봉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단 60년, 어느새 전쟁세대라고 불리는 분들은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 현재 연평균 3,000여 명의 실향민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며 생존해 계신 분 역시 대부분이 노령자입니다. 따라서 이벤트성으로 일년에 한 두차례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상봉으로는 모든 이산가족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2010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이산가족 상봉이 더 자주, 더 많이 정례화가 이루어져 하루 빨리 모든 실향민이 소중한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