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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기자단/쫑알쫑알 수다방

7ㆍ27 정전협정체결일, 北에선..



녕하세요 상생기자단 4기 금경희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7월 27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시나요?

"어? 내 생일인데?"/"야구하는 날이지 뭐~"/"내가 휴가 가는날 흐흐"

땡! 제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에요~ 바로 검색 들어가겠습니다! 


 

 

  

 네, 바로 6ㆍ25 전쟁의 중단을 의미하는 7ㆍ27 정전협정체결일인데요. 

 정전협정(停戰協定, Armistice Agreement)이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 사이에 맺은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입니다. 이 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입니다. 또한 협정의 목적은 6ㆍ25 전쟁을 정지하고,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남북에서의 적대행위와 모든 무장행동의 완전 정지라고 하네요(세부 내용 더보기 ☞http://100.naver.com/100.nhn?docid=771657).



 

 

▲ 서명하고 있는 유엔군과 북한군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judengkorea?Redirect=Log&logNo=50050327091)

 


 

  정전회담은 1951년 7월부터 시작됐지만 군사분계선과 포로교환 조건 등에 대한 이견으로 수차례 회담과 결렬을 거듭하다가 북한을 지원하던 소련의 스탈린이 1953년 3월 15일 사망하면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김일성 조선인민군 사령관, 팽더화이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은 각각 후방에서 협정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전문 5조 36항으로 된 정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발발 3년 1개월만에 남북은 휴전상태에 들어가고 남북한 사이에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정되었습니다. 또, UN군과 공산군 장교로 구성되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가 판문점에 세워지고 스위스, 폴란드 등으로 구성된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설치되었습니다. 이로써 250만 명의 한국인, 100만 명의 중국인, 5만 4000명의 미국인 등 40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낸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7ㆍ27 정전협정체결일은 남한과 북한이 관련된 기념일이지만 이 날을 기념하는 행태는 남과 북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남한은 이 날을 따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기념일로 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7월 27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일례로 2003년, '한국전쟁 정전 조인 50주년 기념식'에는 6ㆍ25 전쟁 21개 참전국 대표들과 참전용사 등 2,50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년 이 날이 되면 남한에서는 남과 북의 정전협정이 아니라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각계의 요구가 빗발치기도 하고, 반전(反戰) 평화대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열린 ‘한국전쟁 정전조인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한국전 전용사들.

(사진출처 : 조선일보 사진공동취재단)

  


  남한이 '7월 27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지는 않은 반면에 북한의 경우는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1973년부터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지정했으며, 1996년부터는 '국가적 명절'로 선포하고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왜 '정전협정체결일'이 아니라 '승리기념일'이라고 칭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실텐데요, 북측의 주장에 따르면 유엔군이 먼저 협상을 위해 찾아온 것 자체가 패배를 시인하는 것과 같았고 정전협상장과 정전협정조인장이 북한에 남아있기 때문에 '승전기념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평양의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탑 앞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장병 충성결의대회’에 참석한 인민군

(사진출처 : 조선중앙통신 연합)

 


  이 날에 북한에서 각종 행사와 신문·방송은 ‘반제·반미투쟁’을 선동하고 체제수호를 위한 자위적 국방력 강화와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합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은 미국과의 대결전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국방공업 강화/군사중시 기풍/전 주민의 전투동원태세 등을 강화하자고 강조합니다. 북한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은 또한 인민군 육·해·공군 군인들의 ‘충성의 결의모임’에서 모든 군인들에게 “전투적 위력을 강화해 조국을 철옹성같이 보위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7월 27일 정전협정체결일'에 승리의 의미를 부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선군정치'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1995년 이후 김정일 정치의 특징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선군정치인데요, 북한의 선군정치는 "인민군대 강화에 최대의 힘을 넣고 인민군대의 위력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의 전반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는 특유의 정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선생과 군 중시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군정치의 표방으로 1996년에는 4월 25일 인민군 창건일과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정전협정 체결일) 등 군관련 기념일을 공휴일이자 ‘국가명절’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7ㆍ27 정전협정을 기념하는 나라가 또 있습니다. 바로 미국인데요. 미국의 찰스랭글 하원의원이 발의하여 美의회를 통과한 '6·25 참전용사 인정법(Korean War Veterans Recognition Act)에 따라, 7ㆍ27  정전협정 체결일이면 미 전역에 조기(弔旗)가 게양됩니다. 지난 2009년 백악관 포고문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미국인들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고 있다. 모든 미국인이 고귀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를 표시하는 적절한 행사와 활동으로 27일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일'을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미국인들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연방정부의 모든 기관, 6ㆍ25전쟁에 관심있는 단체와 조직, 개인들이 27일 성조기를 조기로 달 것"을 지시했습니다.


 

 

 

 

 

 

지난해 7월 25일 오후 워싱턴 링컨 기념관앞 광장에서 열린 7ㆍ27 정전협정 체결일 기념식. 사진은 이 행사를 주도한 '리멤버 7ㆍ27' 대표 한나 김씨와 미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인 윌리엄 멕스웨인씨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처럼 6ㆍ25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은 '정전협정체결일'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기념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이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이 7월 27일을 법정 기념일로 정하지 않아 아쉬워 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거리에는 조기도 내걸리지 않고 신문에는 짧은 기사 몇 줄만이 실릴 뿐이라며, 6ㆍ25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우리가 이 날을 너무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날을 기념일로 정하는 것은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정전협정체결'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기리고 감사드리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전기념일을 맞이하여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6ㆍ25전쟁은 완료형이지만 아직 7ㆍ27 정전협정은 진행형입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7ㆍ27 정전(停戰) 협정'이 아니라 '종전(終戰) 협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