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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서평] 분단문학과 <밤은 노래한다> (2)



("분단문학과 <밤은 노래한다> (1)"에서 이어집니다)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민생단 사건이 당시 만주에서 살아가던 조선인 독립투쟁가들 및 조선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준 역사적 사건이었음에도, <밤은 노래한다>(이하 <밤>)은 민생단 사건을 거시적인 역사로서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살아간 개별적 인간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날 한국을 독립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함께 만주로 떠난 친구들끼리 서로 총을 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게 내 최초의 의문이었다.(p.340)


<밤>의 주인공 김해연은 민생단 사건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에 사랑하던 여인 이정희를 잃습니다. 그런데 이정희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던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정희의 친구였던 최도식, 박길룡이었으며, 그들은 또한 또 다른 친구였던 박도만, 안세훈 등과 죽고 죽이는 관계로 치달아있었습니다.


안세훈과 박도만도 나이가 어리지만 않았어도 일찌감치 박길룡에게 처형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시간의 문제였을 뿐 (…) 누가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먼저 죽었다고 해서, 혹은 나중에 죽었다고 해서 그가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결국 그들은 다 죽었으니까.(p.271)


그들의 관계는 피상적으로 정치나 이념에 따른 노선의 차이로 인해 틀어진 것으로 표현됩니다. 가령 조선혁명을 위해서는 중국혁명부터 도와야 한다고 믿었던 박도만과, 조선혁명에 우선하는 것은 없다고 믿었던 박길룡의 갈등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밤>은 그들 간의 인간적인 문제와 이것이 극화되는 과정에 주목하는데, 그 결과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는 문제에 있어 노선의 차이 따위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며, 인간의 죽음 자체가 지니는 무게가 부각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혁명의 도리는 자신을 향해 온 관심을 쏟아 붓던 야학 교사의 눈과 귀에 있었다. (…) 그때까지 누구도 여옥의 얘기를 그토록 귀 기울여 들어준 사람은 없었다. (…) 그 시선과 귀 기울임 속에서 여옥이는 비로소 자신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혁명의 도리를 깨치게 됐다.(p.114)


‘모두들 자네가 첩자라고 하는데, 자네가 사준 술 한 잔과 토끼 가죽 외투가 생각이 나서 말이야.’(p.297)


<밤>에서는 조선인들이 지닐 수밖에 없었던 아슬아슬한 경계에 대해서도 고찰합니다. 조선인 투쟁가들은 자신들이 발붙이고 있지 않은 조선을 조국으로 그리는 외부적 존재이자 만주에서도 중국인이 아닌 경계에 있었습니다. 조선인 투쟁가는 중국공산당의 굳건한 지지기반이었음에도, 사실상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만주의 항일투쟁에서 조선인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민생단 사건은 그러한 성질을 더욱 증폭한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모든 조선인을 투쟁가와 첩자의 경계에 놓았습니다.


지금 여기 내게 없는 것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이리라.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가 존재한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빛도, 어둠도 아니면서 동시에 빛과 어둠인 세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p.126)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 (…) 나는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경계에 서 있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민생단도 되고 혁명가도 될 수 있었다.(p.248)


당장 처한 현실이 어떤 강박적 울타리일 때, 경계에 대해 탐구는 의미를 가집니다.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를 중심으로 배타성이 강조될수록, 안팎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자기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중국인과 조선인이 공존하고 투쟁가와 첩자가 공존하는 만주와 같이, 경계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인식되는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래는 하나였으나 둘로 갈라졌을 때, 또한 목숨과 직결될 때,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의 고뇌 내지는 자기혐오는 극대화됩니다.


분단된 남북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서로를 ‘밖’으로 규정하면서, ‘안’에 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밖的’ 가능성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밤>은 주인공 김해연이 과거의 연인이었던 이정희를 죽인 최도식을 죽이기 위해 찾아갑니다. 그러나 김해연은 최도식의 자식들을 보고, 최도식이 이정희의 편지를 전해줬던 일을 기억하며 돌아갑니다. <밤>에서 몇 차례 강조되는, 술 한 잔과 토끼 외투를 기억하며 적을 놓아준 <대위의 딸>의 푸가쵸프식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인도주의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옛 시대의 일을 새로운 시대로 끌어가는 일은 불필요하다는 작가의 의식이 투영된 것입니다. 


“새로운 계급이 낡은 통치 계급의 통치를 반대하려면 반드시 낡은 인생관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p.114)


“인간이 성장하는 한, 세계도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오. 그런 인간의 힘을 나는 믿었소.”(p.233)


“늙다리들은 더 이상 춤추지 못한다. 나는 춤추는 사람들이 좋다. 나 역시 그렇게 춤출 수 있으면 좋겠다”(p.345, 작가의 말)


어린 자식들을 보고 죽이고자 했던 최도식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전개는 일차원적인 인간애를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건을 끊임없이 들추어내며, 이를 현실로 끌고와 주관적이며 이기적인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폭력성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가령 라종일은 그의 저서 <장성택의 길>에서, 북한의 실패는 이른바 혁명 1세대들이 후손들을 자신들의 문제 속에 가둬놓고 그들의 앞날을 박탈했으므로 야기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자 김연수의 문제의식 또한 이와 비슷하게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분단문학과 <밤은 노래한다>


분단문학은 단순히 분단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그려내는 문학이 아니라, 장구한 과정으로서의 분단이 인간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내지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려내는 문학입니다. <밤>은 만주항일투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자 북한에서 주요하게 취급되는 민생단 사건을 다루면서도, 민생단 사건이 왜 북한에게 주요한 사건인지, 만주항일투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같은 단순한 역사만을 그려내지 않습니다. <밤>은 하루가 다르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민생단 사건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들이 어떤 고뇌를 가지고 살았는지, 어떤 희망을 품었고 어떤 절망에 허덕댔는지를 집요하게 발굴해냅니다.


또한 분단과 연결되는 <밤>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 속에서 그려진 인간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오늘날에도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가령 <밤>이 어떤 정치 노선이나 이념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은, 역사를 사건이나 흐름으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미시적 북한 연구와 관련지어볼 수 있습니다. <밤>이 경계에 대한 탐구를 한다는 점을 통해서는 송두율 교수 사건이나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지어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한반도 주민들 마음 속에 있는 분단인식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최도식의 자식을 보며 최도식을 죽이지 않았던, 이른바 '늙다리들은 더 이상 춤출 수 없다'는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품는 방식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저자 김연수는 그의 또 다른 책인 <여행할 권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0세기 후반 한반도에 존재한 모든 문학은 분단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그 지평은 공히 휴전선을 넘지 못했으니까. 휴전선 안쪽의 일들, 그러니까 휴전선 안쪽의 사상과 세계와 관념을 담고 있다면, 그건 먼 훗날, 우리가 지금 이광수의 문학을 두고 말하는 것과 같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분단문학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분단문학이 휴전선 안쪽의 일들, 그러니까 휴전선 안쪽의 사상과 세계와 관념에서 벗어나, 그 실상을 탐구하고 포착해낸다면, 분단문학은 지금 이광수의 문학을 두고 말하는 것(친일문학)과 같은 평가를 받는게 아니라 더욱 온전한 분단문학이자 버릴 수 없는 역사적 문학으로 그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