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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통일문화공간

[서평] 분단문학과 <밤은 노래한다> (1)



문학은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구태여 ‘뗀다’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특정한 이미지나 기억을 공유하며 유대감과 문화를 형성하고, 작가가 이를 포착하여 문학으로 옮긴다면, 문학은 역사서보다 더욱 진실하게 사회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역사서는 사실을 담을 뿐이지만 문학 작품은 진실을 담는다는 낭만주의적 시각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문학은 단순한 사실을 나열한 역사서보다 시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습니다. 어떤 역사서보다도 발자크의 소설이 파리의 모습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맑스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대 만주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다룬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이하 <밤>)는 분단시대를 고찰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민생단 사건은 1930년대 초·중반 수많은 조선인 항일혁명가들이 일본의 간첩으로 몰려 중국인이나 같은 조선인에게 사살당한 사건입니다. (민생단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고: ["첩자 조선인을 죽여라" 민생단 사건]) 이 포스트에서는 분단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 분단문학으로서의 <밤>이 갖는 특징을 논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분단문학"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황순원의 <학>이나 김영하의 <빛의 제국>과 같이 분단된 남북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다루면 분단문학일까요? 탈북민, 재외동포, 간첩 등이 분단문학의 주요 제재일까요? 아니면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시간 동안 창작된 모든 문학이 분단문학일까요?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와 같이 민족 내 갈등에 대해 이야기했던 1945년 이전의 소설은 분단문학에 포함될 수 없을까요?


남파 첩자의 이야기를 다룬 김영하의 <빛의 제국>


분단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분단의 의미를 성찰하고, 특징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분단문학이 무엇인지, ‘분단_문학’이 아니라 ‘분단문학’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분단의 의미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 남북 간 이질감 및 적대감이 최대한 해소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한반도 내에서 공동체적 소속감이나 유대감이 없고, 남북 간 이질감·적대감이 굳건히 잔존하고 있는 사회는 온전한 통일사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즉, 통일은 남북의 정치적 혹은 체제적 단일화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남북의 차이를 없애는 긴 과정이자 구조입니다. 강정구 교수에 따르면, 과정으로서 통일의 의미는 “접합을 통한 통합으로, 이념형에서 역사적 가능태의 실재화로, 연방제 원칙 아래 기능주의적 방안의 수용으로, 일회적인 계기가 아니라 과정과 단계로서의 통일로, 세계사적 전환과의 유리로부터 접목으로, 남쪽만이 아니라 북의 민중과의 연합으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분단을 다시 생각해보면, 분단은 남북의 치자가 달라지거나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한반도 내의 사회적 갈등이 축적되어 생성되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긴 과정이자 구조입니다. 통일은 체제적 통일 뿐 아니라 사회적·(통일 한반도의)내적 통합도 포괄하며, 사회적·내적 통합은 체제적 통일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런데, 분단의 해소 방안이 반드시 통일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단이 70년 이상 지속되고 그 안에서 ‘분단체제’나 ‘분단모순’ 등으로 표현되는 여러 부조리들이 심화·확장되는 가운데, 중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분단의 억압성을 해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분단과 통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며, 장구한 과정입니다. 분단이라는 문제가 반드시 통일이라는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분단을 파악하는 일은 단순히 통일과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과정을 아는 일이 아닙니다. 분단에 대한 반성은 분단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한반도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책임을 포착하고 반성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분단을 직시하는 일은 분단된 한반도가 갖는 억압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을 발굴해내고, 이의 극복을 한반도적 전망으로 소환하는 일입니다. 결국 분단이란 남북의 실제적 분단 뿐만 아니라, 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남북 사회와 그 구성원들, 그들의 억압적이고 모순적인 성격, 이러한 것들의 기원과 종말까지 포괄하는 담론인 것입니다.


분단문학이란?


분단이 한반도 사회의 억압과 모순, 그것의 기원과 종말까지 포괄하는 긴 과정이라면, 분단문학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도 비교적 명확해집니다. 분단문학은 단순히 분단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야기를 다룬 ‘분단_문학’이 아니라, 한반도의 주요 특징인 분단을 담아내고 또한 분단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하는 문학을 의미합니다.


남북이 분단된 현재 분단문학을 정의하는 일이, 통일문학 등 새로운 문학지평을 내포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문학이나 탈분단문학과 같은 개념을 구태여 정립하거나 정의하는 일은 불필요하며, 설령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분단문학과 통일문학을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단문학이라는 표현은 이미 통일과 탈분단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단과 통일 내지는 탈분단이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면, 분단의 시발점이나 통일·탈분단의 종착점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분단은 태어날 때부터 통일·탈분단을 잉태하고 있으며 통일·탈분단은 완전히 완수되는 시점까지 분단의 기억을 지고갈 수밖에 없다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앞서 언급된, 간첩을 다룬 <빛의 제국>이나 통일 후 남북 출신 주민 간의 갈등을 다룬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은 분단문학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잔인한 단면을 담아낸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그 이전의 이야기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분단문학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이전 이야기, 즉 한국전쟁 전후의 이야기를 다룬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민생단 사건과 분단문학


민생단 사건은 1932년 4월 일본에 의해 민생단이 조직된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수많은 조선인 항일무장투쟁가들이 중국인이나 같은 조선인에게 무자비하게 사살당한 사건입니다. 민생단 사건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다음이 대표적입니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정치적 이유로 숙청이 시작되었지만, 일단 숙청이 가속화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밥을 흘려도 민생단(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하니까), 밥을 설구거나 태워도 민생단,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민생단(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은 전투력을 약화시키니까), 배탈이 나거나 두통을 호소해도 민생단, 사람들 앞에서 한숨을 쉬어도 민생단(혁명의 장래에 불안감을 조장하니까), 설사를 해도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고 말해도 민생단(민족주의와 향수를 조장하니까), 일이 어렵다고 불평해도 민생단,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민생단(정체를 감추려고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니까), 일제의 감옥에서 처형되지 않고 살아돌아와도 민생단, 오발을 해도 민생단, 가족 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민생단, 민생단 혐의자와 사랑에 빠져도 민생단,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민생단으로 몰리는 등 무고한 사람들을 일제의 간첩으로 모는 꼬투리는 끝이 없었다.” (관련기사: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밥을 흘려도 죽었다


 남한에서 민생단 사건이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는데 비해 북한은 민생단 사건에 크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송두율, 스즈키 마사유키 등에 따르면 민생단 사건은 주체사상의 기원으로 소급됩니다. 항일투쟁의 중심이었던 만주에서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인이 소련에 치이고 중국에 치이며 겪은 애환이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는 민생단 사건을 통하지 않고서는, 김일성 등 이북의 지도부가 된 항일유격대 출신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둘째로, 한홍구 교수는 민생단 사건이 ‘어버이’로서의 김일성의 면모를 부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중국공산당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김일성이 종지부를 찍고, 이것이 북한의 극단적인 가족국가적 정치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집단적 기억이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민생단 사건을 두고 “평생 제일 잘한 일이 육문중학 들어간 것과 민생단 자료 불살라 버린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관련기사: “서로 ‘일본첩자’ 의심하며 죽인 ‘민생단 사건’…김일성이 종지부” 


민생단 관련 책자를 불태우는 김일성을 그린 북한의 선전화


민생단 사건이 북한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중대한 사건이었고, 오늘날에도 민생단 사건을 지속적으로 호출하고 있다면, 민생단 사건은 분단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민생단 사건을 다룬 <밤>은 분단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단문학과 <밤은 노래한다> (2)"로 이어집니다)


추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