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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김옥 숙청설… 그녀는 누구인가?

 

 

왼쪽에서 세번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넷째 부인 김옥(52)입니다.

 

 

지난 26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넷째 부인 김옥(52)이 친정 가족과 함께 숙청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가 최근 평양에 방문한 중국 사업가를 인용해 김옥의 숙청 가능성을 보도한 것입니다.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지 1년도 되지 않아 김옥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전했습니다.

 

 

1. 김옥은 누구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

김정일 정권 후반 막강한 문고리 권력

 

김정일 가계도 [출처 : 조선일보]

 

 

김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이자 김정일 사망까지 그의 곁을 지킨 마지막 여인입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김옥은 1980년대부터 김정일 서기실에서 근무했습니다. 2004년 김 위원장의 셋째 부인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서기실 과장 직함으로 김 위원장의 업무를 특별보좌했다고 합니다. 김옥은 김 위원장 생전에 북한의 국정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1년 8월 21일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때 동행한 김옥 [출처 : 조선중앙TV]

 

 

김옥은 2000년대 들어 김 위원장과 함께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퍼스트레이디로서 같은 해 5월과 8월 방러, 방중에 동행했습니다.

그녀가 단순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에 그친 게 아니라 장성택의 숙청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장성택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다 2004년 숙청을 당해 2년간이나 중앙정치 무대에 복귀하지 못한 데 입김을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김옥의 아버지 김효 또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효는 노동당의 회계를 담당하는 재정경리부 부부장 출신입니다. 2008년에는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됐습니다.

이렇게 김옥은 김정일 정권 후반에 강력한 문고리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 이후 그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예측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와병통치' 기간 동안 김옥은 물밑에서 김정은의 후계작업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김옥을 자신의 아군으로 인식했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2012년 10월까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 김옥이 등장하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북한 매체에서 그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고 이번에는 숙청설까지 제기된 것입니다.

 

 

2. 왜 숙청되었는가?

표면적 이유는 남동생의 안하무인격 태도

근저에는 김정은 생모 고영희 우상화, 북한 지배 체제 공고화 목적

 

보도에 따르면 김옥의 숙청에는 남동생 김균의 안하무인격 태도가 결정적 이유라고 합니다. 김균은 2011년 2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직무를 대리하는 제1부총장으로 임명되었던 인물입니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가 2004년 사망한 이후 누나 김옥이 김정일의 총애를 독차지하자 이를 믿고 횡포를 부렸다고 알려졌습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국가안전보위부가 김정은에게 김균의 이런 행태를 문제제기했다고 합니다. 2013년 10월 김균이 돌연 부총장에서 물러난 것도 이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김옥을 제거하기 위해 남동생 문제를 트집잡았다는 것입니다. 고위 탈북자 출신 소식통은 "(김정은이)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가 유선암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김옥이 등장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며 "북한 체제 특성상 김옥은 제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생모 고영희의 우상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의 다른 부인이 존재하는 것은 김정은에게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동생 김여정의 정치적 행보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안정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김옥의 제거가 불가피했다고 합니다.

 

 

3. 정말 숙청당했는가?

김옥의 숙청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옥이 숙청을 당한 게 아니라 공개 석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격리 조치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생모가 죽은 뒤 김옥의 보살핌을 받은 적이 있는데다, 그가 아버지의 부인이었다는 점을 존중해 숙청까지는 하지 않았다"며 "대신 이동의 자유는 허용했으나 공개 석상엔 나오지 말도록 조치했다"고 전했습니다.

 

 

4. 아버지의 부인 숙청, 이번만이 아니다.

일각의 다른 해석을 차치하고 숙청설이 사실이라면, 김씨 정권에서 아버지의 부인을 숙청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김일성 사망 후에도 김일성의 둘째 부인 김성애가 조용히 사라진 것입니다.

 

1994년 미국 카터 대통령 부부와 회담 당시 모습을 드러낸 김성애(오른쪽) [출처 : 일요신문]

 

김일성은 첫째 부인 김정숙과 사별한 뒤 김성애를 둘째 부인으로 맞이했습니다. 김성애도 김옥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의 아들 김평일 주 체코 대사를 후계자로 공식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이 무너지고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실제로 김성애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와 매우 사이가 나빴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16살 차이의 김성애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복동생 김평일을 상당히 경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성애는 1994년 미국 카터 대통령 부부와의 회담 당시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 외에는 완벽하게 종적을 감췄습니다. NK지식인연대에 따르면 그는 김일성 사망 이후 교외의 특각에서 '반 감금'된 채 지냈다고 합니다.

 

 

한때는 권력의 강력한 맛을 보았던 김옥도 김성애와 같이 정권이 바뀌고 그 입지가 좁아진 것 같습니다.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던 김옥이 한순간에 숙청되었다는 이야기는 권력의 무상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통일부 9기 기자단 손효정 기자였습니다.

 

 

 

참고기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26/0200000000AKR20160726054500014.HTML

http://news.joins.com/article/20362297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27/2016072700191.html

http://www.dailian.co.kr/news/view/271825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12/19/0200000000AKR20111219089200014.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2/2014120201637.html

http://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04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