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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베트남전쟁으로 본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갈망. - '호치민 전쟁박물관' 방문기

안녕하세요!!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9기 노도희 기자입니다.

저는 지난 6월 23일~ 7월 1일, 9박 10일동안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특히 호치민 전쟁박물관에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공산주의, 자유주의의 이념갈등으로 북베트남(공산주의), 남베트남(자유주의)로 분단된 상태였지만, 베트남 전쟁(제 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함으로써 공산화 통일되었습니다. 분단국가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공통점이 있고, 공산화 통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르지만 똑같이 이념갈등으로 전쟁을 치룬 점은 너무 중요한 공통점이라고 생각되어 '호치민 전쟁박물관'을 제 일행이었던 친구 두 명과 견학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영향때문일까요? 사실 저는 박물관에 견학가기 전에는 호치민 전쟁박물관이라는 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북베트남군의 전투사진, 북베트남군의 승리사진 등등 자신들의 체제와 승리, 무위 등을 과시하는 그런 기념관으로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북한이 북한 주민들에게 늘 자신들의 체제를 과시하고, 선전하며 타 체제를 비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은 모두 틀렸고, 박물관을 나오면서 저는 많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호치민 전쟁박물관은 크게 외관, 내관 1층, 2층,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외관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미군 탱크, 미군 전투기 등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내관 1층, 2층, 3층은 모두 제 생각과 달리 각국들의 반전시위, 전쟁의 참혹함(특히 미군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진들, 각종 무기,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 등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즉, 호치민 전쟁박물관은 반전과 평화를 호소하고 갈망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박물관이었고, 제 생각이었던 북베트남군의 우월함, 무위과시 등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 제가 견학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함께 호치민 전쟁박물관을 두루두루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비둘기 마크를 달고있는 중앙의 큰 건물이 바로 호치민 전쟁박물관 입니다. 그리고 좌측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 바로 매표소인데요, 표는 베트남 돈으로 15000동(한화 약 750원)이고 박물관은 매일 개관하지만 월요일은 휴관하고, 08시부터 16시 30분까지 관람할 수 있고, 11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는 점심시간으로서 관람이 불가능합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나면 제 손가락에 붙인 스티커처럼 비둘기 스티커를 인원 수 만큼 줍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며 서 있었는데, 직원이 그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라고 말해주더라구요. 붙이고 보니 관람객들 모두가 평화의 상징인 이 비둘기 스티커를 붙이고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야외에는 보시는 것처럼 탱크와 헬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실제 사용된 모델과 같은 모델이라고 합니다. 사진에 있는 탱크, 헬기 외에도 대포, 전투기 등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에 독립전쟁(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도 했었는데, 그 때 프랑스가 베트남 독립투사들을 감금한 감옥, 고문한 고문기구 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내부 입구에 들어오면, 들어오자마자 보이시는 것처럼 기념품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여러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계단을 타고 3층까지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모든 전시 사진들은 반전의 호소, 평화에 대한 지향, 전쟁의 참혹성 고발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산당군대의 우월성, 자신들의 베트남 전쟁 승리에 대한 선전 등에 관한 사진들은 일절 전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먼저 1층에 전시된 사진들과 전시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층에 전시된 사진과 전시물들은 당시 전쟁때 사용된 미군의 옷과 총, 각종 보급품, 그리고 여러나라들의 반전시위, 폐허가 된 전쟁터, 또 공산화 통일로서 전쟁이 끝난 뒤 평화협정과 수교재개로 세계질서에 다시 참여하는 베트남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베트남마을 입니다. 양측의 사진을 보면 어느 건물도 온전하지 않고 무너지거나 파괴되어 있습니다. 우측의 사진에서의 여성은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고 밑의 설명문에 적혀져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내에서 일어났던 반전 시위 현장입니다. 7시 방향의 사진은 시위 현장에서 총을 맞아 사망한 미국 대학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5시 방향의 사진은 한 여성이 총칼을 들고 있는 시위대 앞에서 꽃을 들고 반전 시위 의지를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세계 2차 대전,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은 전쟁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미국내의 강력한 베트남 전쟁 반전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당시의 미국인들의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 그림들은 베트남 사람이 미군 혹은 미국 정부를 풍자한 그림입니다. 좌측의 그림은 미국 정부가 미국인을 베트남 전쟁으로 밀어 넣고 있는 그림이고, 우측의 그림은 한 베트남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한테 미국이 자신들을 도우러 왔다고 하면서 왜 자신들의 마을에다 폭격하는 이유를 묻고 있는 그림입니다. 저는 특히 이 우측의 그림을 보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 정당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의 당사자인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의 참전에 대해서 의구심과 거부감을 느끼는데 미국이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베트남 전쟁의 참전에 대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전에 대한 시위는 미국 국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평양전쟁, 중일전쟁 등을 일으킨 전범국가인 일본에서도 반전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상처와 피해를 주고, 자국 국민들에게도 전쟁 수행을 위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희생을 강요했던 일본 군국주의 정부가 미국에게 패전하고 몰락한 뒤, 많은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국민들이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전시위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도중에 남베트남을 지원하던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나라들이 국내외적인 반전 분위기를 못 이기고 철수하자 남베트남은 순식간에 북베트남군에게 무력통일되었고, 베트남은 공산화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뒤, 베트남은 교전국가였던 나라들과 국교 수립을 재개하고 여러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서 다시 세계질서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속의 사진들은 그러한 베트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는 남학생은 저와 여행을 함께 한 친구입니다~

 

다음은 2층입니다.

2층 전시관의 입구입니다. 문의 상단에 'Aggression War Crimes'라고 적힌 것처럼, 2층의 전시관에는 잔인하고 수위가 높은 사진들이 전시가 많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였던 것인지, 관람객들은 모두 숙연하게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 이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사진을 찍기가 숙연할 정도로 매우 처참하고 잔혹한 사진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수위가 너무 높은 사진들은 올리지 않은 점에 대해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위 사진들은 북베트남군 포로를 대하고 있는 미군입니다. 비록 사진이지만, 사진만 보더라도 미군이 북베트남군 포로를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군은 포로 사살, 포로 수용소 방화, 포로 학대 및 고문을 서슴치 않았다고 합니다.

북베트남군 포로의 머리를 미군이 자신의 전투화로 걷어차고, 손에는 총을 높게 들어 마치 가격하려는 듯한 사진입니다. 더 잔혹한 것은 그 것을 지켜보고 있는 뒤의 미군이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설명글이 위의 사진에 대해서 말하기를, '전쟁포로(아마도 북베트남군 포로)가 미군 전투헬기에서 미군으로부터 떠밀려서 땅으로 떨어져 죽게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포로를 탑승시키고 있는 미군 전투헬기에서 미군이 전쟁포로를 밖으로 밀어서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사진으로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사진속의 북베트남포로는 헬기로부터 떨어졌을 것이며, 아마도 땅에 닿는 순간 즉사했을 것임은 충분히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미군의 잔혹함과 비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소 잔인한 사진일지도 모르겠지만, 꼭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은 일본제국주의 역사와 그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현 정권에 대해서 비난합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잔혹하고 폭력적인 행위는 일본군이 우리 독립군과 전투할 때, 그리고 중일전쟁 때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등에서의 일본군 행위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하지만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해서 그와 유사한 행위에 대해서 비난받지 않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당한게 아니라 베트남이 당한 것이기때문에 전혀 신경 쓸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똑같이 비난하고 분노하며, 애도해야할 일입니다.

 

지금부터는 3층 전시관입니다. 3층 전시관에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화생방전, 생화학전의 모습과 그것으로 인해 피해받는 사람들,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외에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 중 일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일부분의 국가에는 우리나라 국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화학전술은 제 1차 세계 대전에 처음으로 전투의 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비신사적인 생화학전투를 금지하기로 결의(제네바 의정서)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의정서는 큰 협력을 얻어내지 못했고, 1차 대전이후의 중일전쟁에서도 일본군은 중국군을 대상으로 생화학전술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일명 '마루타부대'라고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일본관동군 731부대' 역시 생화학전술을 위한 부대였습니다. 이후 걸프전쟁을 계기로 1993년에 다시 생화학전을 국제적으로 금지하고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제네바에서 많은 국가들이 생화학전투를 금지하는 협약에 동의하였습니다. 상단의 사진은 화학성분의 물질을 살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숲에 뿌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고엽제인 것 같습니다. 하단의 사진은 생화학전에 대비중인 미군의 모습입니다. 방독면을 쓰고 있는 미군의 모습인데, 방독면을 보급받지 못한 수 많은 베트남 병사들, 그리고 보급조차 받을 수 없는 민간인들은 생화학전투에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국군도 아직까지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네이팜탄과 고엽제를 통해서 베트남의 정글과 늪지대를 인위적으로 없애버린 모습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미군은 북베트남 베트콩의 늪지대에서의 게릴라전과 늪지대 때문에 병사들과 기갑전력들의 저하된 기동력 때문에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그 해결방안으로 숲들을 다 없애버리는 방법을 택했고, 그 수단은 수 없이 투하하고 살포하는 네이팜탄과 고엽제였습니다.

생화학전투의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베트남 사람들인데, 어느 누구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피해는 죽음과 다를 것이 없는 피해였습니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외국군대들의 부대마크들 입니다. 사진의 3시 방향쪽에 보시면 국군 부대의 부대마크가 있습니다.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입니다. 현재 맹호부대는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으로 개편되었고, 백마부대는 여전히 국군 9사단으로 유지해 있습니다. 대다수의 부대마크들은 미군부대이고 그 외에 호주와 필리핀, 태국 등도 있습니다.

1층, 2층 그리고 3층의 전시물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이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하얀색의 두 소녀 조각상이 웃으며 줄넘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전의 전시물들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평화로운 모습이라 그 대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의 평화에 대한 갈망역시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아직도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만해도 호치민 전쟁박물관은 베트남 공산군의 위용과 무위를 자랑하기 위한 기념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관에 전시된 여러 외국군대들의 탱크와 대포, 전투기를 볼 때만 해도 그러한 생각은 변함 없었습니다. 외관에 전시된 그것들은 자신들이 적으로부터 노획한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보면서 생긴 저의 편견도 한 몫하였을 것입니다. 공산당은 언제나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고, 우월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은 1층에 들어서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고, 전시된 사진 몇 장을 보는 그 순간부터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관람객들은 숙연한 모습으로 전시물들을 관람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조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게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모든 전시물들은 미군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전쟁 그 자체를 원망하는 듯 했습니다. 제가 사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미군들 중에 실종된 병사의 사진 포스터도 전시되어 있었고, 생화학전에 희생된 미군의 모습도 담겨 있었습니다. 전쟁의 피해자는 전쟁 참가국 모두 였던 것입니다.

호치민 전쟁박물관에 다녀온 뒤로 평화통일에 대해서 다시 한 번더 간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베트남보다 더 일찍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동족끼리 총칼을 겨누며, 외국군대까지 끌어오면서까지 서로를 더욱 더 증오하고 죽이려는 그러한 비극을 다시 가져올 가치는 전혀 없습니다. 현재 통일된 베트남은 정말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나라의 위치가 더운 곳에 위치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통일로 가져온 국내적 평화와 여유로움 덕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제가 베트남에서 기차를 몇 번 타게 되었는데, 한 번은 약 2시간 정도 연착되는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발칵 뒤집힐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잘 사람은 자고, 가족끼리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길거리의 강아지들도 고양이들도 느긋하게 길바닥에 엎드려 자고있는 모습을 너무 자연스럽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견학으로 저는 더욱 더 통일이라는 민족의 지향점과 그리고 그 지향점에 평화롭게 달려가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간절함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9기 노도희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