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위해 노력한 학자 및 교수이신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 교수는 지난 6월 7일 고별강연을 마무리로 정년퇴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강의를 잊지 못하는 졸업생, 또는 그의 연구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그의 기념 특강 및 좌담회가 지난 6월 24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렸습니다.
<문정인 교수>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급 논문이 40여 편, 700편 이상의 언론 칼럼, 전 세계를 돌아다닌 명문대 초청강연,
동북아 평화번영 정책을 입안하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보좌한 이력,
학문으로 보나 현실 참여로 보나 대학 교수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47&aid=0002117833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
-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
- 영문 계간지 <Global Asia> 편집인
- 미국 듀크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겸임교수
- 전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장
한반도평화포럼 6월 월례토론회 자리에서 문정인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특강 및 좌담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제9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손효정, 선정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처음 장내에 들어오신 문정인 교수는 생각보다 호탕하고 쾌할한 성격이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신중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지킨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1부 특강이 시작되었습니다.
* 이하 내용은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65세는 아직 청년 나이인데 고별강연과 특강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얼마 전까지 중국 회의에 참가하고 왔다.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6자회담은 죽었고 비핵화 하려는 협상은 이제 끝이 났다.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고 남측과의 태도가 너무 날이 섰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행보를 보이지 않으면 절대 협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북한이 도발하려면 강력한 응징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더라. 갈길은 멀고 상황의 악화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우리측 분위기가 참 애매했다. 북측 사람들과 웃으면서 얘기하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마치 70년도로 돌아간 느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북한 관계에 반전이 있을까 싶다.
정상회담 두번 다 갔던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느꼈던 '평화가 올 것 같은 흥분'을 뇌리에 깊게 박아놨었는데 이틀전 삼일전 상황을 보니, 이렇게 상황이 악화됐구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싸우는 구나, 생각이 들어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건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중국해, 중국 대만갈등 등. 동아시아 전체적인 혼란에 대한 이야기이다.
1) 리얼리즘(현실주의)의 문제 현실주의라 하는 것은, 국가를 각자의 생존을 위해 군사력을 증가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우는 주체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진짜 현실은 현실주의와 다르다. 영국의 존 버튼 교수가 말하기를 국제정치의 참모습은 개인이 중심이 되고 단체가 중심이 되고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고, 그렇게 '거미줄처럼 얽혀진' 구조로 이뤄진다고 했다.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실제 현실 속에서는 미국 사람, 중국 사람과 만나서 얼마든지 화해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고 평화를 꿈꿀 수 있다. 지금의 현실주의에서는 그렇지 않다. 현실주의는 가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구공 모형도 현실이랑은 거리가 멀다. 하지만 만들어진 현실을 진짜 현실이라 보고 외교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뭔가 잘못됐다고 본다. 국제정치를 새롭게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2) 상식의 실종 국가와 사람 사이의 관계는 상식에 의해 결정된다. 남북관계 보면 상식이 실종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은 상대가 있다. 흡수통일 한다더라도 상대가 있다. 북측이랑 얘기하고 상대를 인정해야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우리만의 조건을 만들고 거기에 상대가 따라와주길 기다리는 건 상식이 아니다. 비핵화도 마찬가지이다. 8~30개 핵탄도가 있다고 파악되는데, 그걸 다 파괴해야 협상하겠다고 통보하는 건 상식이 아니다. 서로 조정을 하고 합의를 해야지. 심지어 우리는 우리와 동포이고 같이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낼 북에 대한 인도적 차원도 하고 있지 않다.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실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통일도 과정이고 평화도 과정이다. 평화라는 건 한 순간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어떠한 조치를 통해 주어지는 결론이라는 것처럼 받아들이면 안 된다. 기본이 없는 상식을 갖고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건 국제관계를 더욱 힘들게 한다.
3) 숙명론 한반도의 운명은 주변 국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숙명론. 4강에 의해 우리나라가 결정될것이라는 숙명론이 우리나라에 깊게 박혀있다. 왜 우리는 숙명론의 포로가 됐을까. 미국이나 중국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세력전이론'도 마찬가지이다. 패권국의 권력 신장 속도는 완만하고 도전국은 빨라진다. 그렇게 되다가 서로 힘이 비슷해지면 전쟁이 일어난다. 세력이 전이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간의 세력전이 현상을 보며 전쟁이 일어날 거라 예측한다. 하지만 이것도 숙명론으로 바라본 것일 뿐, 분명히 전쟁 말고 평화적으로도 나아갈 수도 있다. 관찰 포인트에 따라 국제 관계를 충분히 바꿀 수 있는데, 우리는 숙명론에 빠져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없을거라 생각한다. 탈피해야 한다.
4) 도덕적 일방주의 남은 평화, 북은 악마, 미국은 모든 보편적 규범과 도덕을 지키는 국가라고 규정하는 것. 북한이 다 잘못이고 우리는 잘못한게 없다고 여기는 것. 한국과 미국에서 이러한 일방주의가 상당히 강하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힘들어진다. 사실상 북한과 얘기할 근거조차 없어진다. 어린아이가 울거나 불평을 하면 다 이유가 있을텐데 그걸 잘 들어보면 좋을텐데, 나쁜 짓만 하는 애라고 도덕적 판단을 해버리면 그 판단을 다시 깨버리기가 참 힘들다. |
2부에서는 정세현 한반도 평화포럼 공동대표의 사회 아래 동아시아 정세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한 좌담이 이어졌습니다.
20대 대학생부터 초로의 교수, 언론인까지 다양한 분들이 깊이 있는 질문으로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요.
문정인 교수는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했습니다.
많은 질문 중 몇 가지를 선별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Q. 1부에서 상식이 실종된 외교가 안타깝다고 지적하셨는데 보편적인 '상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문정인 교수(이하 문) : 제가 말하는 상식은 일련의 원칙이나 규범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그런 규범 말이죠. UN이 어떤 국가의 국민들을 인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웨스트팔리아 체제를 어기고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예입니다. ( ※ 웨스트팔리아 체제는 한 나라의 주권을 인정해 제3권력이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반대로 중국이 주장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중국에게만 적용가능한 것입니다. 상식의 보편주의적 특성에 맞지 않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미사일을 쏘면서 힘을 과시하는 국가를 규탄하는 것도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규범과 상식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Q. 브렉시트로 동아시아 지역의 미미하지만 존재했던 지역 통합 운동이 힘을 잃은 것 같습니다.
문 : 저도 브렉시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웃음)
그렇지만 동북아도 공동체를 꾸리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안보 공동체와 경제 공동체가 그것입니다. 경제 공동체는 무관세, 자유 시장, 경제 연맹, 통화 동맹 등의 단계로 하나의 경제적인 통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한˙중˙일 자유시장 논의는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보 공동체입니다. 안보 공동체는 1. 집단 방위 체제와 2. 공동 안보 공동체로 나뉠 수 있습니다.
집단 방위 체제는 NATO와 한미 연합 등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동맹입니다. 동맹은 불안정한 국제 질서를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모든 공동체가 하나의 안보 공동체에 속하는 공동 안보 공동체의 대표적인 예로는 유엔 헌장이 있습니다. 이 체제에는 적이 없습니다. 하나의 침략국이 생기면 모든 국가가 나서서 응징하게 되죠. 이것이 공동 안보, 즉 지속 가능한 안보입니다. 집단 안전 보장 체제를 만드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가 되겠죠.
Q. 미-중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미국의 패권국 지위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기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문 : 경제 분야에서는 일정 부분 세력전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방 분야에서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제패를 위한 국방력은 소위 항공모함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로 판단된다고 합니다. 미국의 항공모함은 규모와 개수에서 모두 중국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2023년까지 항공모함 3척 건조를 목표로 하지만 그마저도 중형급입니다. 아직은 미국의 국방력에 맞서지 못하는 규모죠.
그렇기에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는 미중간 전략적 균형상태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패권국으로서의 기반을 잘 다져왔기 때문에 중국과 다릅니다. 하지만 이것도 다변적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그 예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일명 양다리 전략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문 : 대부분의 국민들은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 해결하자는 의견인 것 같습니다. 가까운 나라와는 벽을 세우고 먼 나라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자는 주장도 있고, 소수의 중국편승론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동아시아 자체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나 매우 현실가능성이 낮습니다.
저는 대세를 따라 미중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점을 찾지만,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미국에 베팅하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Q. 남북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지금, 그래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지금 이 시점에서 대화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 : 이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매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이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이 북핵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3 No More이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No More(핵탄두 개수 증가 방지), No Better(핵탄두 경량화, 고도화 방지), No Export(제3국에의 수출 방지) 무엇보다도 이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죠. 북핵 문제 유관 국가들과 신뢰가 쌓이기 전에 이 원칙이 지켜져서 북한이 핵을 사용할 일이 없다면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금 현 상태를 인정하고 여기서 더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대화를 하며 신뢰를 쌓는다면 그 후에 완전한 핵무기 해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우리가 현실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거대한 세력들이 구조를 형성해서, 그 구조 자체가 행위자에게 현실을 착각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별 행위자가 이 구조가 만든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 : 그것이 구조가 가지고 있는 관념적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위자가 모여서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지 구조 속에서 개인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민사회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진 구조는 그 자체로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 열풍만 보아도 알 수 있죠. 현실을 현실로 인지할 수 있게끔 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우리나라에 필요한 자세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 :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중심이며 우리가 주인이라고 하는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미국에 17년을 살면서 미국이 참으로 강한 국가라고 생각해 왔지만, 대한민국 지도자와 국민들의 주체적인 힘을 갖는다면 다른 강대국의 입맛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못할 것입니다. 통일은 우리가 노력하면 만들 수 있습니다.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숙명론에 빠져서 우리 스스로 통일을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시간여의 특강은 열띤 질문과 답변으로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짧은 강연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미래에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문정인 교수는 저술 활동에 힘을 써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밝혀 나갈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혜안을 많은 분들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손효정, 선정안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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