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6일 동국대학교 사회과학관에서 아주 흥미로운 주제의 학술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학부생 정은영 기자가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바로 한국연구재단의 일반공동연구과제 '무기의 사회 - 기술적 시스템을 통해 본 (탈)냉전과 분단의 위상학' 연구 수행의 일환으로 동국대학교 연구팀이 주최한 학술회의였습니다. 그 흥미로운 주제는 <북한의 핵무기 패러다임과 정치경제적 변화>로, '북한의 핵무기를 개발, 고도화하려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대외관계 및 정세에 대한 인식 패러다임, 국내 정치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입니다. 기존 북한 핵무기 관련 논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거시적인 시각과 패러다임을 제시하여 보다 흥미롭고 유익한 학술회의였습니다.
학술회의에는 북한학에 정통하신 많은 전문가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는 "무기체계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의 시각을, 북한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자리가 될 것이며 최근 도발과도 관련하여 핵무기 고도화를 통한 북한 체제 내적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핵심 주제가 될 것"이라며 학술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북한 핵무기 체계가 내부 정치관계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 공부해봅시다.
△ 사회중인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북한 핵무기 체계의 정치경제>
본격적인 학술회의는 홍민 통일연구원 박사의 '북한 핵무기체계의 정치경제' 발제로 시작되었습니다. 북한 핵에 대한 문제 인식은 대부분 외교 안보적 차원으로 다루어졌고 이를 어떻게 제어하고 기획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북한핵에 대한 문제인식을 보다 확장하여, 과연 핵을 가진 북한과 핵을 갖지 않은 북한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핵을 보유한 국가로서 내적 변화를 모색하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기존의 무기체계 생산 조달‧유지‧관리와 같은 인프라와 관련한 체계뿐만 아니라 확장하여, 무기체계를 하나의 사회 정치적 시스템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 발제 중인 홍민 박사
핵무기는 냉전시스템에 의존적인 체계였으나 탈냉전 이후 체제유지의 시스템으로 하나의 모멘텀을 가지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모멘텀은 해당 시스템에 이해관계를 가진 조직과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하고 시스템의 관성이 다양한 이해관계의 사회-기술적 체계를 통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냉전이라고 하지만 핵무기를 기반으로 했던 냉전시스템의 모멘텀은 강하게 아직도 세계와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체제지속을 위한 북한의 핵무기 기술시스템의 건설은 냉전체제에 의존하여 구축되었던 기존 시스템(수령-당-국가체계-계획경제)의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대외적인 위협에 대한 방어, 체제지속, 협상능력을 최대화하는데 목표가 주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핵무기 시스템의 경우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따라 '기술스타일'이 달라지는데, 북한의 경우 수령이라는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한 당-국가체계를 근간으로 합니다. 국내적 정치논쟁, 법적 규제와 절차, 국민 여론, 막대한 재원의 마련 절차 등을 생략하거나 보다 압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집니다.
북한의 핵무장화, 핵무기 고도화는 결정적 문제 또는 역(逆)돌출부들이 산재합니다. 핵무기 개발‧실험‧보유‧유지를 위한 자원 제약과 경제적 어려움이 산재해 결국 사회의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희생을 통해 자원 추출 구조를 만들어내고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원배분체계의 재조정, 시장 허용을 통한 시장경제의 활용, 자원 추출과 동원을 위한 억압적 통치의 강화‧지속 등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결정적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보다 결정적인 문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비핵화 압력과 고립정책은 핵무기를 기반으로 한 체제지속 시스템 건설의 대외적 역돌출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민박사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의 '핵무기체계'를 정의했습니다.
① 전통적인 군사 기술적 차원의 무기체계 개념
② 사회경제적 인프라와 네트워크 차원의 무기체계 개념
- 군사기술적인 무기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경제적 인프라와 네트워크의 측면을 포함하여 정의
③ 세계관 및 인식체계, 의지와 신념으로서의 무기체계 개념
- 국가 내부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세계관, 인식체계, 사고관, 의지 및 신념 등의 변화는 총체적으로 국가의 행위능력을 변화시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고도화는 이미 내부적으로 정책담론, 정치, 경제, 사회 등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향후 중장기적으로 더욱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에 걸맞은 대외관계의 재설정을 주장하는 한편, 여러 분야의 정책 및 노선의 재조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체제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핵무기가 체제 전반에 미치고 있는 영향과 향후 가져 올 변화의 관점에서 수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고도화가 군사노선 및 무기체계, 이데올로기 및 담론, 통치체제 및 권력정치, 경제정책 및 구조, 시장화, 사회통제 및 일상생활 등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통해 심층적인 이해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며 홍민 박사는 여섯 가지 연구문제를 제시했습니다.
(1)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고도화에 따른 대외관계 및 정세인식 변화
(2) 핵무기 개발‧고도화에 따른 대내적 통치담론의 변화 여부 및 전망
(3) 핵‧경제 병진노선의 전략적 함의와 실재
(4) 핵무기 개발‧고도화에 따른 자원배분체계의 변화 여부 및 향후 전망
(5) 핵무기 개발‧고도화와 시장경제(또는 시장화)의 관계
(6) 핵무기 개발‧고도화가 권력정치 및 군사전략에 미치는 변화
북한의 핵무장 또는 핵무기 고도화가 군사전략 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군사 관련 동향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은 최근 "당의 5대 훈련방침, 4대 훈련원칙, 4대 전략적 노선을 전투훈련 강화 지침으로 삼아 훈련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선대의 연속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내용적으로 강조점이 이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제시한 '군력강화를 위한 4대 전략적 노선'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기존 보병과 전투훈련 중심에서 '전법'이나 '다병종'과 같은 전술‧전략 및 군사조직체계의 변화 등을 강조합니다. '다병종'은 기존의 육군, 공군, 해군 등의 군종에 '전략군'이 추가된 점, 육군‧공군‧해군‧전략군 등이 과거와 같이 독립적으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이들을 연계하는 새로운 병종(혼종적 성격)의 필요성, 투발수단의 다양화, 보병 중심에서 기동성을 갖는 기동부대의 화력 필요성 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군종', '다병종', '다종화' 등 최근 북한의 군사 관련 언급은 과거 전통적인 군사조직 및 전략적 편성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합니다. 북한은 "미국의 핵전쟁 연습에 대처하는 훈련에는 보다 다종화된 핵억제력을 각이한 중장거리 목표들에 대해 각이한 타격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여러 가지 형태의 훈련들이 포함되게 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다종화된 핵억제력은 중장거리 목표들에 대한 타격력을 세분화하고 정밀화하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또한 2015년 4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김정은의 영도에 의해 국방위주의 국가관리체계가 빛나게 계승됨으로써 국가건설 역사가 변함없이 흐르게 되었"음을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김정은의 군단장 직접 지휘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김정은은 김정일 군부를 지휘할 때처럼 비화전화를 통해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등 군부 핵심간부 및 군단장, 훈련소장 등 주요 지휘관들을 직접 지휘합니다. 비화전화는 '1석전화'로 통용되며 김정은이 필요시 간부들에게 직접 지시하고 직접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군단장에 대한 직접 지휘체계를 강조하는 부분은 군벌 형성을 억제하면서 군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2012년 7월부터 육군‧해군‧공군을 제외한 군단급 이상 부대의 '사령부' 명칭 사용을 금지하면서 호칭 격하를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호위사령부 → 호위국, 보위사령부 → 보위국, 전략로켓사령부 → 전략군, 포병사령부 → 화력지휘국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됩니다. 기존 '사령부' 명칭을 '국'으로 호칭 격하를 한 배경에는 군사조직의 지휘체계를 보다 위계적으로 재정비하는 한편, 군벌 형성 억제, 군부에 대한 통제력 강화의 측면으로 해석됩니다. 충성심 유도 및 군권 장악 차원의 일환으로 잦은 군 수뇌부 교체, 군내 긴장감 조성 및 분위기 쇄신을 도모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대남비난 강화, 군사도발 움직임을 남북관계 차원뿐만 아니라 무기체계 및 군사전략의 변화, 김정은의 군대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군사조직 변화 차원에서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는 핵무장화, 핵무기 고도화, 핵무기체계에 맞는 군사조직 개편, 핵보유 패러다임에 입각한 전략 변화 등의 차원에서 접근이 요구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조치들은 크게는 김정은의 군대 장악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조치인 것과 동시에 핵무기체계에 맞는 조직 효율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략과 조직을 실험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며, 대남 도발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군 지휘계통과 현장 차원에서는 이런 변화 압력에 부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과잉된 충성심 경쟁 차원의 군사적 움직임도 가능합니다.
또한 홍민 박사는 핵경제병진노선이 인민생활과 경제부문에 관심을 돌리는 역할에 그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회의적인 의견을 표명하며 엄밀하게 논의해보아야 함을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비용으로 개선되지 않는 유지 관리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정권에 들어 시장에 관대하고 이를 활용하여 제도적 보장을 이루려는 등, 국가가 시장 의존적으로 운용되는 부분들이 인민생활을 시장경제에 맡기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장 경제가 핵을 보유하고 새로운 제도적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시장화를 확산하는 환경을 만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시장이라는 영역을 통해 군사 부문 비용을 유지하고 확대하며 특구지역, 관광시장 붐 조성 부문의 재정적 사업을 연관시키는 것이 아닌지, 문제의식을 던지고 토론하는 자리였으면 한다."며 발제를 마쳤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홍민 박사의 <북한 핵무기 체계의 정치경제>발제로 공부해보았습니다. 홍민 박사님의 강의 발제는 북한학 학부생으로서 항상 새로운 느낌을 받고 유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보람찹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주요 발제와 주요 토론 내용을 함께 공부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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