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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미래 길잡이/현장과 사람

북한이탈주민 가정의 정착을 위한 징검다리, <남북통일대안학교> 방문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공동기사로 인사드리는 明남매입니다.

6월23일 화요일, 아주 무더웠던 여름날, 8기 김명종 기자와 신명선 기자는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남북통일대안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저희는 이곳을 <고양평화통일특별시 선포식 http://blog.unikorea.go.kr/5070> 행사에서 알게 되었는데요. 당시에 이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이 한복을 이쁘게 입고 나와 북한 음식을 팔고 학교 홍보활동을 하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ㅎㅎ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학생들과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학교에 대해 더 자세히 취재해 보기 위해 저희가 직접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저희는 남북통일대안학교에서 해맑지만 아직 탈북과정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선생님, 그리고 삶을 온전히 이 학교에 쏟아 부으신 교장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감동적인 교장선생님과의 인터뷰도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남북통일대안학교 전경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남북통일대안학교 전경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남북통일대안학교 전경입니다!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3호선 원당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또 걸어야 찾을 수 있습니다. 학교가 꽁꽁 숨겨져 있어서 근처에서 삼십분 동안 헤맸답니다ㅠㅠ 두 기자는 더위 먹을뻔 했다는 후문이..

 


 

△남북통일대안학교의 교육방침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남북통일대안학교의 교육방침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남북통일대안학교의 학습 목표 입니다;)


 

△남북통일대안학교의 일과표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남북통일대안학교의 일과표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남북통일대안학교의 일과표 입니다. 이 학교는 정규학교가 아니라 대안학교입니다. 때문에 재학생들이 정규 학교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에 이 학교로 다시 오게 됩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생업을 위해 아이들의 방과 후 시간에도 출근 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북통일대안학교는 기숙형으로 운영되며 그 부모님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남북통일대안학교의 학교생활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남북통일대안학교의 학교생활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재학생들의 여러 활동사진들을 인쇄하여 한 벽면에 붙여 놓으신 모습입니다. 선생님들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여기까지 훅~ 느껴지죠? 방문해서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더더욱 귀엽고 깜찍한 모습을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남북통일대안학교의 교실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남북통일대안학교의 교실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여기는 남북통일대안학교의 교실입니다. 초중등부 친구들이 귀교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약간 휑~한 느낌이네요.


△종이접기 놀이중인 학생들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종이접기 놀이중인 학생들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유치부 아이들이 자유롭게 종이접기와 그림그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멍~ 때리고 있는 친구도 보이고 각자 하고 싶은 활동을 골라서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죠?ㅎㅎ

 

△율동수업중인 학생들 학생들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율동수업중인 학생들 학생들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아이들이 저~쪽 구석에 위치한 전자 피아노에서 나온 노래에 맞춰서 정해진 율동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희가 옆에서 지켜봤는데 율동실력이 아주 수준급이였답니다ㅎㅎ

  위의 여러 사진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아직 정규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유아-초등부 아이들입니다. 겉보기에는 천진난만한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지만, 이 아이들은 대다수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아이들로, 부모의 사랑만 받아도 모자라는 어린 나이에 너무 험한 일들을 많이 겪은 아이들입니다. 그렇기에 욕설 등 말을 거칠게 하는 아이들도 얼마 전까진 많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복지관 같은 곳에서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돕기위한 자원봉사자들이 자주 방문하여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돕고 있다고 합니다.

 유아-초등부 아이들은 남북통일대안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남북통일대안학교는 아이들이 한국사회에 동화되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남북통일대안학교 교장선생님과의 인터뷰!

 △남북통일대안학교 김윤희 교장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남북통일대안학교 김윤희 교장_이미지출처 : 김명종기자

 

신명선: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종:

. 먼저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혼자 살아가기도 힘드신데... 이렇게 아이들 위해서 학교를 세우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윤희 교장:

제가 한국에 온지도 2년이 지났지만, 저는 한국에 대해서 잘 몰라요. 제가 지금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긴 하지만, 교육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도, 이렇다 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어요. 그러나 저희 오빠나 아버지가 모두 교육을 잘 받은 인텔리(지식인,고학력자)였고, 북에서 아버지가 명예교장을 14년 정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장교출신으로 제대해서, 남한으로 말하면 구청에서 일하다가 탈북 했거든요. 이때까지 내가 나서 자라서 한 것과 배운 것이라곤 북한에 대한 지식밖에 없다보니까..교육에 대해서 이렇다 할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그러던 중 손녀와 함께 저보다 먼저 탈북한 딸이 있었어요. 제가 그 이후에 나와서 남한에서 딸이랑 산지 한 달 만에 27살의 젊은 딸이 세탁소 같은 곳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죽었어요. 딸이 죽고 나서 저한테 남은 건 손녀와 제 둘째 딸 이였죠. 너무 막막한 거예요. 나는 50이 넘어서 취업하기도 힘들고 어린아이들은 둘이나 있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와 어린 손녀와 딸 때문에 제약이 많았어요. 일하려고 보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하교하고 저는 또 아이들을 챙겨야하고 균형이 맞지 않아 일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손녀들이 크는 동안 컴퓨터 학원, 자유시민대학, 직업상담사, 수선학원 등에 다니면서 취직을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막상 취업을 하려고 보니 어떤 곳에 취직해야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딘가에서 초청강의문의가 오면 강연하고, 강연 비를 생계비로 해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남북통일중앙연합지회장이라는 사람이 저한테 이런 일(북한이탈주민자녀를 위한 교육)을 함께 해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저는 거기에 동의 했고, 팀장으로 일하다가 자유시민대학 동문 회장으로도 일하게 되었어요. 제가 동문회장을 맡고 있다보니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학생들은 젊은 사람들, 어르신들, 중년분 등 다양한 연령대거든요. 그런데 그 학생들을 만나보면 다하나같이 말하는 게 남한 사회에서 정착을 하려니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북한 같은 경우에는 간부 자녀밖에 못가기는 하지만 주 탁아소, 주유치원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일주일동안 이곳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일을 하다가 금요일 날 아이들을 데려오는 학교예요. 주말사이에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가 또 보내면 되고 이런 시스템이 있으면 애기 엄마들도 남한에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시설이 찾기 어려워 애기 엄마들은 일하기도 힘들고, 잘살자고 왔는데 마음과 여건들이 안 맞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토의 끝에 이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설립을 위한 준비를 하는데 돈이 문제인 거예요. 다들 하고 싶다고는 하는데 경제적 문제에서는 다 뒷걸음질 치더군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던 사람들이랑 이 학교 선생님들이랑 토의 끝에 저희끼리 조금씩 투자해서 학교 임대료, 인테리어비등을 다 저희가 투자했죠. 그때까지는 저희가 학교를 세워야한다는 목표가 있으니까 얼마가 들던지 간에 설립하자는 생각 뿐 이었는데 학교를 설립하고 한두 달 정도 운영하고 나니까 경제적인 문제가 너무 시급 한 거예요. 지원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서 만들기는 했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더라구요. 정말 처음에는 아이들 먹을 쌀도 지원이 안 들어와서 저희 끼리 몽땅 사비를 털어서 마련했어요. 그저 남은 것은 빚이었어요. 그렇게 초창기 보다는 낫지만 6개월이라는 기간을 지내왔어요.

심지어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제가 시에 지원요청을 해보려고 시장님을 만나러 갔는데 시장님 만나는 과정도 생각보다 되게 복잡 했어요. 상담도 3~4번을 해야 하고.. 그래서 제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직원에게 '사람이 잘못되어서 구렁텅이에 들어가기 전에 건져주어야하는 것 아닌가, 우리(남북통일 대안학교)가 이럴 때 우리 조금만 이끌어주고 도와주어야하는 것 아니냐..' 우리 손 좀 끌어달라고 펑펑 울면서 얘기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현재 지원된 건 없어요.

 

김명종:

안타깝네요.. 고양시랑은 그런 상황이고..혹시 통일부에서는 지원이 없나요?

 

김윤희 교장:

예전에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이런 기관을 설립했다고 하면 지원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한두 달 운영하고 지원금을 받은 후 그만두는 북한 이탈 주민들이 많아서 일 년 이상은 운영을 하고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한지 등을 살펴본 후에 조금 예산을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정기간동안 운영을 잘해왔으니 지원을 받고서도 운영을 잘해가겠구나' 싶으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는 아마 올해 12월부터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학교를 운영하니까 책임감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파도 앉을자리 없고 누울 자리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고 사실은 많이 힘듭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어린 손녀가 있잖아요. 이 학교일을 안 할 때는 내가 훌륭하게 키우지 못할 바에는 입양을 보낼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입양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다가 내가 일단 이 일을 하는 이상 손녀를 입양 보내지 않겠다. 내손에서 내 학교에서 할머니가 해줄 수 있는 만큼 제 딸(둘째)하고 키워볼 생각 이예요. 딸과 제 손녀를 볼 때마다 의지가 생기고 힘이 생겨요. 빚은 졌지만 살면서 갚아 가면 되고..그래도 어렵긴 어려워요.(웃음)

 

김명종:

그럼 지금 학교에 선생님은 몇 분이 계세요?

 

김윤희 교장:

저까지 네 분 있습니다.

 

김명종:

 과외 하러 오는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오나요?

 

김윤희 교장:

 최근에는 메르스 때문에 못 오고 있지만, 하루에 한명씩은 꼭 와요. 토요일은 외고 학생들이 와서 자원 봉사를 해주고 있고, 대학생들도 오고, 복지관에서도 오시고.. 우리 애들이 상처를 가진 애들이 많기 때문에 복지관에서 심리치료나 미술치료 등을 특히 더 지원해주고 있어요.

 

신명선 :

아무쪼록 이 학교가 널리 알려져서 교장 선생님의 훌륭하신 뜻에 날개를 달았으면 합니다. 저희도 기사 잘 써서 보탬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明남매가 다녀온 [남북통일대안학교] 와 열정적이고 희생적인 교장 선생님과의 인터뷰, 저희 두 기자는 느낀점이 많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한국에 오신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때에 첫째 따님을 사고로 잃고, 학교설립의 마음을 굳히신 교장 선생님의 사연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현재 새터민 대상 학교가, 정규학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이런 대안학교는 상대적으로 인지도도 낮고 환경도 매우 열악합니다. 정부 및 민간에서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의 손길을 뻗어주길 바랍니다. 정규교과과정을 제공하는 학교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학교에 들어가기 버거운 학생들을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남북통일대안학교] 같은 학교들이니 말입니다.

김명종 기자가 속한 8기 기자단 기사1부는 수도권 곳곳의 새터민 대상 학교들을 찾아다닐 계획이 있습니다. 어린나이에 대한민국으로 와서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질서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꾸준히 취재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明남매는 더 좋은 기사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남북통일대안학교 홈페이지 http://www.대안학교.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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