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 과학자란 나라의 경제적 발전과 과학 기술 발전에 뛰어난 공헌을 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인민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과학 연구 기관에서 15년 이상 일하면서 특출한 과학 연구 성과와 과학 서적들을 많이 내고, 우수한 과학자ㆍ기술자를 길러 낸 사람에게 준다고 합니다. 북한의 대표적인 인민 과학자가 누구인지 한번 알아볼까요?
(1) 리승기
1905년 10월 1일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와 마쓰야마고등학교를 거친 후, 1928년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공업화학과에 입학하여 합성섬유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1936년부터는 이 대학에서 화학섬유연구소 강사로 재직하였으며 이후 교토 대학에서 조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1939년 합성섬유 제1호를 완성하여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공학박사가 되었습니다. 8·15광복 후 서울대학교 제 2대 공대학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0년 7월 가족, 제자등과 함께 월북하였습니다.
리승기 박사는 일본에서의 연구경험을 토대로 논문 〈비날론섬유의 연구와 그 공업화〉를 발표하여 인민상을 받았습니다. 석탄에서 뽑아내는 합성섬유인 비날론을 개발함으로써 북한의 섬유부족문제를 해결하였으며, 그 공로로 김일성상을 받았습니다. 1961년부터 35년 동안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북한의 화학공업과 경공업을 일으키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1962년 레닌상을 수상하고, 1968년 북한에서 처음으로 소련과학원 명예원사 칭호를 받았습니다. 1996년 사망하여 평양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습니다. 저서로 자서전인 《어느 조선 과학자의 수기》가 있습니다.
비날론은 조선인인 리승기 박사가 개발했고 질감이 조선의 전통 옷인 면과 비슷하며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회석, 석탄을 원료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공업화와 체제 건설의 역사와 나란히 서술되고 있습니다. 1961년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리 박사는 최고 권력자나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자도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병으로 드러누웠을 때 김일성이 그에게 100년 된 산삼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한 북한 정권의 대우는 극진했습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광복 이후 남한에서 과학자를 우대했다면 리 박사가 서울대 응용화학과에서 길러낸 제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월북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미군정이 한국을 일본의 영토로 간주해 서울대의 학제개편을 미국식으로 강요한 탓에 담양으로 낙향했을 때도 “아편쟁이가 아편을 잊지 못하듯 비날론을 잊을 수 없었다.” 고 회고했다합니다.
비날론의 창시자 리승기 박사 <출처 : 민족21>
(2) 도상록
함경남도 함흥 출생인 도상록 교수는 일본 도쿄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뒤 개성 송도중학교 교원 시절에는 '헬륨수소 분자의 양자역학적 취급' '수소 가스의 양자역학적 이론'이란 논문 두 편을 미국 학술지에 발표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어 중국 창춘(長春)공업대학, 서울대에서 근무했습니다. 1946년 5월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월북 뒤에도 그는 핵물리학 분야 등에서 14개의 새로운 과목을 개척하고 4만 쪽에 가까운 교재를 직접 집필하는 등 왕성한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북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도 교수는 원자력 이론서 30여 권을 집필하고 핵 가속장치를 개발해 김일성대학에 설치하는 등 북한 핵개발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80년 10월 노동당 제6차 대회 당시 도 교수를 당대회 대표(대의원에 해당)로 임명했습니다. 83년에는 '인민과학자' 칭호와 김정일 명의의 표창장까지 주면서 격려했습니다.
도 교수가 노환으로 교단에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자 김정일은 대학교수직을 유지한 채 자택에서 핵 관련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조치했습니다. 1903년생인 도 교수는 90년 87세로 사망했는데요. 그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습니다. 또 조선혁명박물관에 도상록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의 업적을 기리도록 했습니다. 김일성도 생전 도 교수에게 '원사' 칭호를 주고 김일성 훈장을 수여하는 등 각별히 챙겼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원사란 과학 분야 발전에 공헌한 원로 학자에게 주는 최고의 명예 칭호입니다. 2000년 통일부 보고서는 도상록 교수를 '북한의 핵 과학 아버지'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북한 핵 이론의 선구자, 도상록 교수 <출처 : 연합뉴스>
북한이 자랑하는 인민과학자들의 생애에서 남북한 분단의 역사가 투영돼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합니다. 체제경쟁의 도구로 남과 북의 훌륭한 과학자들이 알게 모르게 이용되었다는 느낌은 비단 저만의 느낌일까요? 남북한 과학자들이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함께 연구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참고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숨겨진 북한의 최고 과학자, 리승기’ ‣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북한 최고의 과학자 리승기’ ‣ 열린백과 오픈토리 ‣ 연합뉴스 2006년 10월 24일자 <北核사태> 리승기, 도상록 등 월북과학자가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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