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혼상제[冠婚喪祭] 중에서 장례(상례)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엄숙한 사태에 직면하여 그 사자를 정중히 모시는 절차인 만큼 가장 중요한 예법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우리와 유구한 역사를 함께 공유한 같은 민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북한은 장례절차가 우리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체제에서 60년간 떨어져 지낸 결과 몇몇 부분에서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북한의 장례는 우리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알아볼까요?
북한에서 전통주의적 요소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부분이 바로 장례문화입니다. 북한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상주의 직장에 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거주지 인민반을 통해 이웃에도 알립니다. 이어 인근 병원 또는 진료소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 받아 동(리)사무소에 신고합니다. 그러면 동(리)사무소에서 장례보조금과 약간의 식량과 술 등이 나온다고 하네요. 직계 존속이 사망했을 경우에는 현금(일반 노동자 평균월급의 1/10수준)과 쌀 한 말, 술 5∼6병이 특별 배급됩니다.
초상이 나면 가장의 소속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와 염습에서부터 입관·운구·매장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장례를 책임지고 맡아 치러줍니다. 과거에는 시·군 인민위원회 산하 도시경영사업소에 신청하면 관이 나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반주민들의 경우 나무판자에 시신을 뉘고 헝겊으로 싸는 것으로 관을 대신합니다. 수의는 대개 광목을 씁니다. 일부 고위층이나 돈 있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써 온 삼베로 수의를 입히기도 합니다. 빈소는 집안에서 비교적 깨끗한 곳을 골라 설치합니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은 벽 쪽을 향해 흰 천으로 두르고 상을 차린 다음 영정사진 하나 거는 것이 전부입니다. 향촉이나 지방 등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합니다. 상주는 굴건제복을 하지 않고 평상복에 검은 완장을 두르며, 여자는 머리에 흰 리본을 답니다. 빈소가 준비되면 그 때부터 문상객을 받습니다. 부의 역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문상하는 조객 가운데 일부는 남아서 상주와 함께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밤샘을 할 때는 대개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일부 주패놀이(카드놀이)를 하기도 하는데 흔한 모습은 아닙니다. 장례기일은 옛날식으로 3일장이었으나 극심한 식량난과 생활고로 인해 요즈음은 1일장으로 치르는 사례가 이제는 대다수입니다. 시신 운구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상여를 썼지만 요즈음은 소달구지나 트럭 등을 이용한다고 하네요.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이 고인을 모시는 엄숙하고 중요한 절차인 장례에까지 영향을 미친 셈입니다. 화장을 기피하고 매장을 선호하는 관념은 북한도 남한과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서도 묘지 확대로 인한 토지이용상의 문제를 고려하여 묘지의 집단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권력서열 2인자였던 조명록의 장례행렬 > 사진출처 : kr.blog.yahoo.com
북한의 또 다른 장례 특징으로 당과 군 고위간부의 장례식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고위급 인사들은 보통 '국장'과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국장은 말 그대로 나라를 위해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 죽었을 때 "국가적으로 지내는 장례"이며 사회장은 "사회적으로 지내는 장례"(조선말대사전)입니다. 특히 국장은 권력 핵심층에 한해 거행되는데 故 김일성 주석의 경우 사망일인 1994년 7월8부터 17일까지 애도기간에 이어 7월19일 국장으로 거행됐습니다. 국장은 보통 3-5일장이며 5일장을 치른 인물은 오진우 前 인민무력부장, 최광 前 인민무력부장, 서철 前 노동당 정치국 위원 등 몇몇에 불과합니다. 사회장을 치른 인물로는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 총재(2002)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여성동맹 중앙상임위 박정현 고문(1995), 김 주석과 같은 날 사망한 조명선 대장 등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고위 간부들이 사망하면 평양시 보통강구역의 고위간부 주택단지 내 서장구락부에 안치, 장례식 후 남한의 국립 현충원 격인 대성산 혁명열사릉 또는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됩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 삼촌 김철주, 작은 할아버지 김형권 등 항일투쟁에 참가한 김 위원장의 일가와 주요 항일 빨치산들이 묻혀 있으며 신미리 애국열사릉에는 일부 항일투사와 광복 후 당․ 정․ 군의 주요 인물, 과학자, 문화, 예술, 체육계 인물들이 있습니다.
작년 11월 6일 사망한 북한의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직)의 시신을 장지까지 옮기는데 북한이 자체 개발했다는 ‘승리 장갑차’가 쓰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10일 평양시내 중앙노동자회관에서 영결식이 끝난 뒤 조명록의 유해는 장갑차에 실린 채 도심을 관통해 약 10㎞ 떨어진 `애국열사릉'까지 이동했고, 시민과 군인 10만여 명이 연도에서 운구 행렬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북한의 고위 군 장성 장례식에 장갑차가 동원된 것은 1995년 2월 오진우 前 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대략 군부 1인자의 장례에는 5일 국장, 장갑차 운구, 평양시내 퍼레이드 정도의 기본 격식이 갖춰지는 셈입니다. 당․ 정․ 군 고위 간부 장례식을 북한 정권이 선군정치, 선군시대 강조와 홍보에 적극 이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고인의 사망을 애도하며 그의 삶을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기억하며 기리는 과정이 되어야 할 장례식을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시킨 북한 정권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 이용웅 교수의 북한 문예 산책
‣ 연합뉴스 - 北조명록 `장갑차 운구'‥오진우 장례 `판박이'(2010년 11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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