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북한의 핵, 그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북한은 진정한 보유국일까?

2013년 2월 12일 오전 11시 57분, 대한민국의 설 연휴가 끝난 직후 북한은 남한과 미국, 중국 및 여러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차 핵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이날 북한이 실험한 핵무기는 7KT(킬로톤)대 파괴력을 갖추었으며 핵실험 직후 진도 4.9의 인공지진이 관측되었다고 국방부는 밝혔습니다. 과거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파괴력이 20KT임을 감안하면 북한의 의도인 ‘동북아시아 지역 긴장 조성’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6자회담 불참과 동시에 이루어진 핵실험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완전히 불이행하는 처사로 여겨졌는데, 이번 기사에는 그 의미를 담아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위해 그간 걸어온 길과 현재의 핵 보유 능력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핵무기 개발의 기반 조성 (해방 직후 ~ 1980년대)

 해방 후 북한은 과학 기술자 양성을 위해 1947년 ‘북조선중앙연구소’라는 최초의 과학·기술 종합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하지만 불충분한 자원과 국내외 어려운 경제 상황 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성장을 겪다가 남한의 과학자들을 월북시키며 1952년 최고 과학 연구기관인 ‘과학 아카데미’ (지금의 국가과학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월북한 과학자들 중 도상록 교수는 핵 개발의 중추적인 임무를 담당하며 당시 소련 등 여러 공산국가들과 협력하여 영변 근처에 원자로를 설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고, 첫 원자로인 영변 1호기를 건설하여 처음 가동하기까지 약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은 이러한 원자로가 순수하게 전력생산용이라고 주장하였고 핵확산금지조약(NPT)도 가입하며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핵사용을 보고하게 됩니다.

 

남북 비핵화 선언과 NPT 탈퇴 (1990~ 2005)

1990년대에 들어서며 구 소련과 함께 추진하던 경수로 사업이 소련 해체 후 들어선 러시아 정권과의 마찰로 인해 엎어지면서, 북한의 핵 개발은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추어 1991년 남한과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에 합의하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보고서 검토 및 사찰을 시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이 제출한 보고서와 실제 사찰내용이 일치하지 않았고, IAEA는 이러한 사실에 관하여 북한에 해명을 요구하였으며 북한은 이를 거절하는 동시에 NPT 탈퇴를 선언합니다. 우리는 이를 ‘제1차 북핵 위기’라 부릅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북한이 한발 유보하여 NPT 탈퇴를 철회하고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를 건설하는 사업도 활기를 띠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핵무기 생산용 원자로를 계속해서 설치하고 있다는 미국의 의심에 대응하여 모든 핵무기 사찰단을 추방하는 동시에 고농축우라늄을 생산을 시도합니다. 이를 ‘제2차 북핵 위기’라 부릅니다. 그 후 2003년에 NPT를 탈퇴하며 사실상 핵무기를 생산하겠다는 의도를 국제사회에 내비칩니다.


핵무기 개발 선언과 핵실험 (2005년 이후)

북한은 2005년 2월 국가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 개를 인출하는 작업 또한 완료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9.19 공동성명이나 2.13 합의와 같은 국제사회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1차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이러한 위협을 타개하고자 10.3 합의와 같은 평화선언을 유도했으나 북한은 합의에 참여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지속적으로 핵 관련 실험 및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배제되었습니다. 특히, 북한은 파키스탄과 미사일 및 핵 관련 기술을 맞교환하고 이러한 와중에도 핵무기를 위한 고농축우라늄 생산 과정을 부정하던 북한은 2010년에 이르러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공식적으로 영변 핵단지 시설을 공개하며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핵개발 진행 정도를 공표하였습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어디까지 진척되었을까?

북한의 핵 관련 시설들은 주로 영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통일부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까지 핵 관련 시설 20여 곳이 파악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많은 실험용 경수로를 개발하는 등 2013년에 이르러서는 더 많은 핵시설이 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가장 중요한 핵무기는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자료로 예측해 볼 때, 플루토늄 40kg 정도로 핵무기 1개당 약 6kg의 플루토늄이 사용된다는 가정 하에 최대 7개까지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전망과 미래는?

북한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자주적 성격의 개발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이루어진 미국과의 경제 관련 협상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 핵무기 발언을 보면 정치적인 목적이 전혀 없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동안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투자한 비용 또한 천문학적인 금액이고 이렇게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이상 쉽게 핵무기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핵무기에서 비롯된 무수한 비극과 참담한 사건들을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핵 발전은 인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것이지 정치적 목적이나 살상의 무기로 쓰여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핵 기술’을 대결구도 속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봐야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통일은 우리 앞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와 있지 않을까요?

------------------------------------------------------------------------------------------------------

참고문헌 : 북한동향 - 베일에 싸인 북한의 핵개발 역사 (2013, 국방과 기술 / 최현호)

사진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08896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35258